중국·러시아 비판 사라진 나토 정상회의, 李 실용외교 공간 넓어졌다

[현안진단] 제35차 헤이그 나토 정상회담의 주요 내용과 전략적 함의

2025년 6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35차 나토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주제는 나토의 국방 역량 강화 차원에서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 원칙을 재설정하는 문제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나토의 방위비 분담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부터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에 첨예한 논쟁의 핵심이었다.

헤이그 정상회담의 특징과 주요 내용

나토 정상들이 합의하여 채택한 정상 선언문을 통해 이번 회담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번 정상 선언문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정상 선언문(2022년 마드리드, 2023년 빌뉴스, 2024년 워싱턴 정상회담)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 특이점은 이번에 채택한 정상 선언문 자체가 매우 짧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회원국의 조약 제5조 준수 의무 확인과 나토의 새로운 방위비 분담 원칙, 그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의 나토+I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방위 산업 협력 증진이라는 딱 3가지 주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담 진행 당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스라엘·이란 전쟁 문제도 언급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도 언급이 없었다.

두 번째 특이점은 2019년 런던 나토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상 선언문에 공식 언급되어 온 중국 문제가 이번에는 빠졌다는 점이다. 마드리드 정상회담부터 중국에 대한 나토의 인식은 체제 도전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정적 조력자 그리고 안보 위협자,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해 왔다. 지난 3월 '잠정 국방 전략지침'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기준 위협으로 규정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정상 선언문에 중국에 대한 나토의 언급이 없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내용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 명시된 집단 방위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했다. 둘째, 이번 회담의 핵심 주제인 새로운 방위비 분담 원칙을 정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는 정상 선언문에 방위비 분담 원칙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즉, 러시아가 유럽 대서양 안보에 가하는 장기적 위협과 지속적인 테러 위협에 직면하여, 북대서양조약 제3조에 따라 나토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핵심 국방 요건과 국방 및 안보 관련 지출에 GDP의 5%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투자는 억제와 방어, 위기 예방 및 관리, 협력 안보라는 동맹의 세 가지 핵심 임무에 따라 필요한 병력, 역량, 자원, 인프라, 전투 준비 태세, 회복력을 확보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GDP 5% 약속은 국방 투자의 두 가지 필수 범주로 구성한다는 점에도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2035년까지 GDP의 3.5%는 핵심 국방 요구 사항에 할당하여 나토의 역량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하고, 동맹국들은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점진적인 경로를 보여주는 신뢰할만한 연간 계획을 제출하는 데에도 합의했다.

아울러 GDP의 1.5%는 핵심 인프라 보호, 네트워크 방어, 민간 대비 태세와 회복력 보장, 혁신 촉진 그리고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데 할당한다. 이 계획에 따른 지출 궤적과 균형은 전략적 환경과 업데이트된 역량 목표에 비추어 2029년에 검토될 것이다.

또한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위 및 방위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도 동맹국의 국방비 지출 목록에 포함한다는 점에도 합의했다.

▲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토 홈페이지 갈무리.

유럽 안보의 유럽화 준비

나토의 근본 원칙인 집단 방위에 대한 약속 다짐과 새로운 방위비 분담 원칙으로 GDP 5% 합의를 도출한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내용이 갖는 전략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럽 동맹국들은 그동안 나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나 발언, 입장 등을 고려하면 유럽 방위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하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동맹의 법적 토대인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 명백히 동맹의 근본 임무인 집단 방위 의무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동맹국은 이를 재보장 받기 위한 마음에서 선언문 첫 번째에 이를 확인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새로운 방위비 분담 원칙으로 GDP 5% 합의 도출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유럽 동맹국의 실천 의지에 여전히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지난 2014년 웨일즈 나토 정상회담에서 동맹국들은 2024년까지 GDP 2%를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긴 회원국은 24개국에 불과했다.

이번 정상 선언문에 동맹국의 방위비 실천 현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연간 계획서와 중간 검토 과정을 명기한 건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구심을 반영한 조치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전략적 함의는 국방 투자 계획의 주요 내용과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정상회담 직전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세계는 더 강한 나토를 요구한다: 동맹 투자 계획)을 통해 새로운 국방 투자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뤼테 사무총장이 밝힌 주요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상 선언문에서 밝힌 대로 GDP 3.5%에 해당하는 첫 번째 지출 부분은 핵심적인 국방 요건에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맹국들이 제공해야 하는 병력과 역량을 규정하고 동맹국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수를 5배로 늘려야 한다. 현재 나토 회원국들은 공중, 미사일, 드론 방어 체계가 부족한 상태이고, 수천 대의 장갑차와 탱크, 수백만 발의 포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나토는 물류, 공급, 운송 및 의료 지원과 같은 지원 능력을 두 배로 늘려야 하며, 동맹국들은 더 많은 전함, 항공기, 드론 및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 아울러 나토는 사이버 및 우주 영역에 더 많은 지출을 하고, 혁신을 강화하고, 방위 부문에 신기술을 통합하는 능력을 가속화하여 기술적 우위를 강화해야 한다.

뤼테 사무총장이 언급한 두 번째 부분은 인프라를 포함한 국방 및 보안 관련 투자를 지원하는 업무와 직결된다. 나토는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병력을 이동시키기 위해 군대를 이동시킬 수 있는 민간 수송망이 필요하다. 나토의 목표는 이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지만, 만약 필요할 경우 도로, 철도, 항만 등은 병력과 탄약, 물자 수송의 원활한 흐름을 제공하는 핵심 동맥이 되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은 '유럽 안보의 유럽화'를 줄곧 주장해 왔다. 미국은 나토에서 탈퇴하지 않더라도 동맹 관여를 줄이겠다며 유럽 동맹국의 적극적 역할을 압박했다. 따라서 뤼테 사무총장이 언급한 국방 투자 계획의 주요 내용은 현재 나토 유럽 동맹국들이 필요로 하는 군사 자산의 항목들이다.

이번 국방 투자 계획은 나토에서 유럽 안보 기둥을 강화하여 유럽이 적극적으로 동맹 임무를 책임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향후 10년 동안 GDP 5% 원칙과 유럽 동맹국들이 필요로 하는 주요 군사 항목에 대한 국방 투자로 나토의 유럽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겠다는 함의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나토에서 유럽 안보 기둥이 발전하고 강화된다면 향후 유럽 동맹국이 나토를 주도하며 유럽 방위의 실질적 책임자인 유럽 연합군 최고 사령관(SACER)의 지위도 유럽인이 맡는 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동맹 탄생 이후 현재까지 유럽 연합군 최고 사령관의 지위는 언제나 미국인 4성 장군이 맡아 왔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에서 유럽 대서양 안보와 인도 태평양 안보의 지리적·전략적 연결성을 강조하는 나토+IP4와의 안보 협력 강화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과 호주 정상이 불참함에 따라 그 의미는 반감되었다. 정상 선언문에는 파트너와의 방위 산업 협력을 증진한다고만 짧게 언급되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공간 확장

헤이그 나토 정상회담이 이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에 던져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에게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은 정해진 절차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전략적 사고에 따른 대응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이번 정상 선언문에 중국 문제나 러시아 비판 등이 생략된 점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펼칠 우리의 외교 공간이 좁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변화된 환경에 신중하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우리의 자율적 외교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 변화된 국제 정세에 신중하면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국익 중심 실용 외교'가 전개될 수 있는 외교 공간을 확장할 기회의 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적 편협함에 갇혀 정상외교를 재단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나토 정상회의에서 계속 강조되어 온 중국 문제가 빠진 정상 선언문이 던져주는 시사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복합적이고 힘든 국제 정세에 직면하여 우리 앞에 전개될 도전 국면을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각주구검(刻舟求檢)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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