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유족은 산 자의 죽음 막기 위해 오늘도 싸운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 ⑦ 참사 후 이주노동자 사망 더 증가… "가끔 추모하고 결국 변명했던 정부, 너희가 죽였다"

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가끔 추모하고, 가끔 분노하다 결국 변명으로 침묵했던 너희가 나를 죽였다.'

아리셀 참사가 발생하고 대구의 한 시인이 쓴 추모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지난해 폭염과 물 폭탄 같은 폭우 속에 시작된 아리셀 피해자 유족과 대책위의 투쟁은 윤석열 내란과 탄핵 국면에서도 진행됐고, 올해 4월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 직전까지 피해자 유족들은 에스코넥 농성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형사재판, 집단 민사소송으로 법률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내란과 탄핵 국면에서 우리는 광주항쟁의 죽음이 산 자를 구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야기해 왔다. 산재 사망 투쟁은 그 정신과 흐름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래서 4.28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의 날의 슬로건은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최대의 집단 산재 참사이자 23명의 노동자의 죽음은 아직 '산 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1년이 지났지만,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1주기를 계기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이 다시 논의되고 추진돼야 한다. 가끔 추모하고, 가끔 분노하다 결국 변명으로 침묵하기만 한다면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없기에.

참사 후 더 증가한 이주노동자·작은 사업장 사망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 중 이주노동자는 20명에 달한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4.6%로 매년 10% 내외였으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으로 좁히면 7명 사망으로 제조업에서는 24.1%에 달한다. 50인 미만 제조업에서는 전체 19명이 사망했고,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2%가 증가했다.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오히려 죽음은 더 증가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나마, 참사 이후 이주노동자 비율이 얼마인가를 발표했다는 것만 달라졌다.

▲2025년 1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 통계. ⓒ고용노동부

정부 재탕, 삼탕, 맹탕 대책 집행 실적도 없어

사망이 증가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재발 방지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리셀 참사 이후 정부는 8월과 9월에 합동 대책을 발표했다. 8월 발표 대책은 '작은 사업장 안전, 이주노동자 안전대책'이었다. 그러나 스마트 안전 장비 확산, 노동자의 안전 수칙만 강조하는 4대 금지 캠페인같이, 참사 전부터 정부가 추진 중이던 대책이 80%를 넘었다. 이주노동자 안전교육도 '현장에서 진행하는 모국어 교육'이 아니라 대상 확대 중심이어서 '재탕 삼탕 맹탕 대책'으로 지탄받았다.

그러나 그 맹탕 대책마저 집행 실적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화재 감지 경보설비지원은 0건이다. 경보 대피설비 지원은 8개 사업장, 소화설비 지원은 18개 사업장이다. 비자별로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안전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연구용역과 간담회로 그쳤고, 이주노동자 교육자료 1~2쪽을 끼워 넣거나,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게 전부였다. 외국인 안전 리더 양성은 47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사업 실적은 제시되지 않았다. 안전보건 통역사 제도는 아직 연구용역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앞두고 진행된 공동안전보건관리자 사업은 시범사업처럼 운영되더니, 2025년도에는 예산 전액이 삭감됐다. 중소 영세기업에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으로의 전환을 정부가 포기한 것이다. 9월에 발표한 전지 산업 안전대책은 집행 실적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에스코넥 불법파견·쪼개기 경영 외면한 정부

참사 이후 정부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불법파견 감독을 했다. 229개 사업장 감독에서 190개 사업장이 법을 위반했고, 불법 파견이 적발됐다. 그러나 컨설팅과 파견 확대라는 황당한 주장이 이어졌다. 아리셀과 똑같이 파견업체가 에스코넥 사업장에 사무실을 두고 운영됐지만, 에스코넥은 면죄부를 받았다. 에스코넥은 아리셀 주식의 90%를 소유하고, 이사회도 구성하고, 재정도 지원하고, 회계장부 작성도 에스코넥 담당자가 했지만, 노동부와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참사에서 드러난 위험성 평가제도의 현실은 비참했다. 아리셀은 복사 붙이기로 위험성 평가를 하고도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됐고, 산재보험료 감면을 받았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도 실시하지 않았고, 부적절한 실시에 대한 처벌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원래도 당연했던 '국적과 상관없이 '라는 중언부언 고시 규정만 개정했다. 화재 대피 교육은 정기안전교육의 여러 주제 중의 하나로 추가됐다. 할지 말지는 사업주의 선택이다. 23명 노동자의 죽음에 이은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고 궁색하다.

'인생 선배' ' 조언자'이지 경영책임자는 아니라는 박순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재판에서 쏟아내는 아리셀의 황당무계하고 파렴치한 주장이다. 재판 초기부터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화재 사고였다''아리셀의 경영책임자는 박중언이고, 박순관에게 아리셀 경영을 보고하고 의견을 들은 것은 인생 선배, 경영 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등 황당무계한 주장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사고 원인을 기술직이었으나 현장에서 함께 사망한 고인에게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각종 불법이 난무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작두로 분리 작업을 하고, 손으로 미세발열 여부를 가리는 위험천만의 현장이 아리셀이었다. 화재 폭발 위험이나 비상 출입구 존재 자체도 모르고, 정규직만 사용할 수 있는 현장이 아리셀이었다. 그러나 온갖 법 기술이 동원되고, 거짓에 거짓을 더하는 법정에서 피해 유가족들은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도 어떤 권리도 없다. 산업재해에 대한 형사처벌에서 검사와 피고인, 그리고 변호사만이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피해 유가족이나 전문가의 참여 여부는 오로지 검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산 자의 죽음을 막도록

참사는 끝나지 않았고, 투쟁도 끝나지 않았다. 내란과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 외로운 투쟁을 전개했던 피해자 유족의 손을 굳건히 잡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투쟁에 다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년 10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한 즉각적인 대책 수립이다.

첫째, 중소 영세기업의 위험한 작업환경과 위험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 대책이 필요하다. 입국 전후로 진행하는 안전교육, 안전공단 홈페이지에만 잔뜩 쌓여있는 외국어 안전보건 교재, 안전표지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제 작업하는 현장의 위험에 대해 모국어로 안전교육이 진행돼야 하고, 이는 중소기업 자체로는 해결이 어렵다. 이주노동자가 집중 투입되는 업종, 산업단지 등을 우선으로 국적별, 작업별 집단 교육이 시행되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이주노동자 피해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제도화돼야 한다. 이주노동자 유가족은 국내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의사소통 문제로 진상규명이나, 피해보상에서 절대적인 어려움에 있다. 죽음이 은폐되고, 헐값의 보상이 반복되는 동안 대책 수립은 요원하고 이주노동자 사망은 증가할 것이다.

아리셀 참사 1년, 이주노동자 산재사망 대책은 단 한 걸음의 진전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으로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

▲지난 6월23일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가 수원지법 앞에서 참사 1주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최명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제 그만

어제도 오늘도 한국 산재 사망의 80%는 중소기업에서 발생해 왔다. 그러나 대책은 수십 년째 각종 지원사업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시행 전후로는 매년 수천억에 달한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일회성 지원은 산재 감축에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했다. 사업장 자체의 예방 체계는 없는 상태에서 각종 설비지원, 컨설팅은 안전으로 돈벌이하는 기관과 기업만 양산될 뿐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안전보건 체계 구축 의무가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제외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예외 조항이다.

매년 정부 감독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이 80%가 넘게 나온다. 법에 각종 규정이 있어도 중소기업에는 담당자가 없으니 지켜지지도 않고, 매번 몰랐다는 답변만 주구장창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사업장에도 생산 파트, 기술 파트, 재무 파트는 있다. 그런데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고, 기업 피해도 심각한데도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사람도 체계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의 안전교육이 될 리가 없고, 최소한의 대피 조치가 될 리가 없다.

모든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를 두고, 작은 사업장은 여러 사업장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공동안전보건관리자를 둬야 한다. 정부가 인건비 지원을 하고, 산업단지나 지자체가 공공성을 확보하도록 관리하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작은 사업장이라도 예방 체계를 구축해서 재해를 줄여 나가도록 하는 방안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엄정 집행이 관건

안전보건 관련 수많은 법령이 있고, 수십, 수백 개의 전문기관이 있어도 그동안 산재 사망은 줄지 않았다. 법을 위반해도 솜방망이, 꼬리 자르기 처벌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산재 사망의 실질적 감소를 위한 대책'의 분기점이다. 이에 재벌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끊임없이 저항하고, 왜곡하고, 언론과 법 기술자를 동원한 무력화에 나서고 있다. 법 취지를 몰각한 검찰의 2년 구형과 법원의 집행유예 남발은 한국 사회를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다.

군납 배터리 결과 조작, 불법파견, 산재 은폐, 무리한 인력 투입,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 각종 산안법 위반 등 23명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리셀의 범죄행위는 차고도 넘친다. 참사 이후 1년이 다 돼 이제 고통은 온전히 피해자 유족의 몫이 됐고, 사회적 관심이 멀어진 가운데 재판정에서는 김앤장의 현란한 법 기술과 천인공노할 주장이 난무한다. 엄정한 법 집행과 처벌이 되도록 온 사회가 감시하고 피해 유가족과 함께 싸워야 한다. 아리셀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죽음이 죽음을 막아내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대책위와 아리셀 가족협의회가 받고 있는 서명운동 홍보 포스터.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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