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역할 변경에 이어 감축까지? WSJ "주한미군 4500명 이동 검토"

미 국방부 "발표할 사항 없다"·한국 국방부 "논의한 적 없다" 일축…트럼프 고위 당국자들 감축 검토한 듯

주한미군이 북한만을 방어하는 것이 아닌 기동군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이번에는 병력 규모를 감축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에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2일(이하 현지시간)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안에 정통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을 인용,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 4500명을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신문은 이 방안이 아직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보고되지 않았으며,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고위 관계자들이 논의 중인 여러 방안 중 하나라고 두 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 관계자들은 신문에 "이 방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한 비공식 정책 검토의 일환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군 감축 논의에 대한 신문의 질의에 미 국방부 대변인은 발표할 정책 사항은 없다고 답했고, 피트 응우옌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국방부는 신문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으나, 한국 언론에 "주한미군 철수 관련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부는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전력으로 우리 군과 함께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 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미 측과 지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병력 철수 문제는 주한미군 역할 조정 문제와 연관돼 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이후 약 2만 85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전했다.

신문은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을 포함해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신문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올해 초 아시아를 처음 공식 방문했을 때 미국과 동맹국들이 억지력을 재확립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이 지역에 대한 '전례 없는' 변화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신문은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 차관은 한국이 핵무기가 필요하다면, 미군이 북한으로부터 서울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는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더 잘 맞설 수 있도록, 한국에 재래식 전력으로 더 많은 방위 부담을 지도록 오랜 기간 촉구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콜비 차관이 공직을 맡기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라며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의 큰 부담을 지는 동안 (미국이)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재편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현장 지휘관들은 병력 감축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은 "지난달 아시아 주둔 미군을 총괄하는 최고 사령관들은 병력 감축에 반대하며, 감축은 북한과의 전쟁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다른 분쟁에서 미군의 우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의회 증언에서 "군 병력 감축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감축에 반대했고 4월 10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새뮤얼 파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 역시 한국에서의 병력 감축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국 관리들은 우크라이나 내 전쟁 방향에 대한 확실성이 더 높아지고 정부가 키이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계속할지 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병력 규모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주한미군 병력 감축 여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한국군 철수를 진지하게 고려할 경우 인도-태평양 전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은 일본, 필리핀과 함께 점점 더 분쟁이 심화되는 지역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미군과의 긴밀한 공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문은 "미군의 주둔은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재발하는 전쟁뿐 아니라 남중국해 일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대만을 장악하겠다고 위협하는 공격적인 중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여겨져 왔다"며 주한미군이 단순히 북한을 방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브런슨 사령관의 지난 15일 연설과 유사한 인식을 보였다.

신문은 "한반도에서 병력을 철수하되 이 지역(인도-태평양)에 그대로 유지한다면 감축에 대한 우려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괌은 잠재적 분쟁 지역과 가깝지만 중국군의 접근이 더 어려워 미 국방부의 핵심 군사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한미군의 감축 및 이동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주한미군 감축설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어떻게 미군을 재편할 것인지와 관련한 전략 속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병력 감축이 아닌 유지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외 지역 투입'을 골자로 하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규모를 유지한 채 미국이 원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치로 인정할 경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투입될 수 있고, 이럴 경우 한국까지 전장에 끌려들어갈 수 있어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주한미군의 병력 감축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약화시킨다는 한 가지 측면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콜비 차관보가 언급한 것처럼 남한이 재래식 억지력을 더 키우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고, 이럴 경우 일부 주한미군 감축이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약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감축이 방위비 분담금과 연계된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주한미군이 '기동군'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한국을 기지처럼 활용하는 것이라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진다.

▲ 지난 2024년 3월 20일 경기도 연천군에서 실시된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육군 K1E1 전차가 한미 장병이 설치한 부교를 건너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육군 5공병여단과 5기갑여단,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장병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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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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