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기업, 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5.24조치 15년 넘을 줄 몰랐다"

험난했던 대북사업 "잊어버리고 싶다"는 남북 경협 1세대들

"5.24 조치가 15년 넘게 지속될지 몰랐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끝났지만, 이제 우리는 물러나고 다음 세대가 이어갔으면 한다."

북한과 의류 등 임가공 사업을 했던 (사)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정태원 공동대표는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5.24 조치 15주년을 맞이해 열린 남북 경협 피해기업들의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지원 및 청산을 요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경협단체연합회가 주최하고 (사)금강산기업협회, (사)금강산투자기업협회, (사)남북경제협력연구소, (사)남북경제협력협회, (사)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5.24조치 15주년 남북경협 피해기업들의 청산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정부는 남북경협 투자자산을 즉각 청산하고 국회는 남북경협기업 피해보상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5.24 조치는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이명박 정부가 실시했다. 그해 3월 26일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판단한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남북 경협 및 교류 등을 중단시켰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 일정한 경제 교류를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남북 간 경제 교류를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조치가 북한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도로 실시됐다. 그런데 이로 인해 북한뿐만 아니라 북한과 사업을 진행하던 남한의 업체들에게도 상당한 타격이 가해졌고, 이에 다음해인 2011년 일부 유연화 조치가 취해졌으나 기업들은 이전처럼 북한과 경제 교류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들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과 2010년 5.24 조치,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남북 경제협력이 중단되던 사건들을 언급하며 "길게는 17년, 짧게는 9년의 세월이 경과하는 동안 기업들은 문을 닫고, 가족은 해체되고, 관계자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심지어는 유명을 달리하신 분도 계신다"고 토로했다.

최요식 (사)한반도교역투자협의회 상임위원장은 "(정부가) 조금만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라는 게 15년, 17년이 됐다. 지금까지 기다렸더니 거지 신세가 됐다"며 "병든 사람도 많고 다른데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마무리가 안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북투자 자산 90% 보상과 대출 및 관련이자, 채무 조정, 피해보상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중대사에 따라 결정되는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으로 발생한 기업의 피해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하는 것이 정당하고 타당한 의무 아닌가"라며 "고정자산의 45%(2018년 지원)를 끝으로 현재까지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18년 지원 시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의 경우 보험가입업체는 90%, 미가입 업체는 45%를 지급했다. 금강산 (및 내륙기업) 업체들은 (사업) 시작 시점 때 보험제도가 없었는데도 미가입 업체로 간주하여 45%를 지급했다"며 "실질적으로는 자산 감가삼각 등으로 투자액 대비 20% 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개성공단 진출 기업에는 투자 확인 금액대비 77.8%의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5.24조치로 인해 경협이 금지된 기업에는 투자 확인 금액 대비 34.1%, 금강산지구 관련 기업들에는 6.3%만 지급됐다면서 "영업 외적 요인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손실을 본 기업들에게 특별지원은커녕 마이너스 지원으로, 실사과정에서도 개인들의 재산을 무 자르듯 마구 잘라버리는 불공정한 지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성공단 투자자산 지원 대책과 형평성에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이다. 금강산 기업들은 재개되면 반환해야 하는 지원금이여서 재개되기만 15년, 17년 기다렸다"며 "더 이상은 안된다.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모든 것을 청산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업인들의 의견은 더 이상의 기대와 회복의 길이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무책임으로 너무나 험난했던 대북사업을 이제는 잊어버리고 싶다. 5.24조치로 인해 피해를 본 기업들과 금강산 관광 지구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기업의 자기 자본과 개인 은행 신용대출 등으로 투자했던 피해자들"이라고 말했다.

▲ 21일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남북경협단체연합회가 주최하고 (사)금강산기업협회, (사)금강산투자기업협회, (사)남북경제협력연구소, (사)남북경제협력협회, (사)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5.24조치 15주년 남북경협 피해기업들의 청산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프레시안(이재호)

이들은 지원을 위한 특별법 입법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천재지변의 홍수나 화재, 코로나-19 창궐 등도 특별법으로 모두 보상하고 있고 주택 전세 보증금 사기사건의 피해자, 경제 상황으로 손실을 본 소상공인들의 영업손실 대출 등도 특별법으로 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업의 영업 외적으로, 정부의 잘못으로 기업이 손실을 보았다면 당연히 정부가 입법조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5.24 조치 15년, 금강산 (관광 중단) 17년의 피해를 본 뒤 노숙자 신세가 된 경협기업인들에게 조금이 나마 보탬이 되고 부채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세상을 살다가 여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간곡히 청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특별법의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나 이미 상당 액수가 지원됐다는 점,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입법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는 지난 2022년 5월 26일 헌법재판소가 5.24 조치 손실 보상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사건(2016헌마95)에서 "재산상 손실의 위험성이 이미 예상된 상황에서 발생한 재산상 손실에 대해 헌법 해석상으로 어떠한 보상입법의 의무가 도출된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린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통일부는 그간 피해지원금(투자·유동자산)·특별대출·기업운영경비 등 명목으로 총 9065억 원을 지원해왔다고 밝혔다. 이 중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아닌 기업들에 대해서는 3984억 원의 피해를 확인했고 여기에서 2290억 원을 지원했다.

▲ 21일 열린 '5.24조치 15주년 남북경협 피해기업들의 청산촉구 기자회견'에서 최요식 (사)한반도교역투자협의회 상임위원장(맨 왼쪽)과 김기창 (사)한반도교역투자연합회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기업인들이 통일부 직원(오른쪽)에게 기자회견문 및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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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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