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가 10일 새벽 정당 역사상 유례없는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 계엄사령관은 권성동 원내대표가 맡았다. 권 사령관은 계엄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계엄포고령 제1호>
국민의힘 내부에서 암약해온 좌익세력의 당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당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음 사항을 포고한다.
1) 김문수 대선 후보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
2)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한덕수로 교체한다.
3) 대선과 관련된 모든 당내 활동은 전면적으로 계엄사의 통제 하에 둔다.
4) 당의 혼란을 조장하거나 질서에 이견을 제기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5) 계엄사의 지시에 불응하거나 포고령을 위반하는 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계엄사 관계자는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의 대선 국면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명백한 국민의힘 위기다. 민주당과 교전 상태에서 당의 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있고, 당 지도부의 행정·사법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당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이번 조처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닌 당 지도부의 통치 행위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애초 계엄령을 조기 발동해 김문수 후보를 B1 벙커에 강제 구금해 사태를 일거에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기미를 눈치챈 김 후보가 기습적인 기자회견 등으로 선제방어에 나서고 '합법적 대선 후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정면으로 맞서면서 계엄령 발동 시기가 다소 늦춰졌다.
국민의힘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김문수 후보 지지자들은 "불법 계엄 철폐"를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계엄령 포고를 무시하고 중앙선관위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등록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내전의 전선이 '계엄군 대 김문수' 일 대 일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한동훈 사단'은 계엄군 편입을 거부한 채 실리를 탐색 중이다. 홍준표, 안철수 등 경선 패배자들도 일제히 계엄을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사분오열돼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상의 이야기는 단순한 풍자나 패러디가 아니다. 전당대회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선 후보를 우격다짐으로 끌어내리고 다른 후보로 교체하는 것은 '계엄' '쿠데타' 등의 단어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윤석열 쿠데타'가 헌법과 법률을 짓밟으며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처럼, 국민의힘 비상계엄 역시 헌법(당헌)과 법률(당규)을 제멋대로 해석해 정당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짓밟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령 발동의 근거로 제시한 '계엄법'은 당헌 74조 2항("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의와 최고위원회(비상대책위)의 의결로 정한다")이다. 계엄사는 "당원 투표 결과 '후보 등록 전 단일화' 요구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으며, 후보 적합도 조사(당원투표 50%+일반국민 여론조사 50%)에서 한덕수 후보가 우세했다"는 점을 '상당한 사유'로 내세웠다. 이 정도의 허술한 주장이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외부인사로 교체할 '상당한 이유'가 될 수 없음은 상식에 속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비대위가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것도 초현실적이다.
비대위가 후보 교체 근거로 내세운 '후보 적합도 조사'의 구체적인 수치도 공개되지 않았다. '정당 또는 후보자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해선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따라서다. 유권자들이 전혀 모르는 '깜깜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는 조사 문항 구성, 표본 선정, 질문 방식 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두 후보 중 누가 경쟁력이 더 있다고 보느냐"(경쟁력 조사)와 "두 후보 중 누구를 선호하느냐"(지지도 조사) 등 질문 내용에 따라 조사의 풍향이 바뀐다. 두 후보자 중 누구 이름을 먼저 말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특히 일반 국민 상대 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을지 말지는 늘 첨예한 쟁점이었다. 실제로 9일 밤 김문수-한덕수 후보 양쪽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것도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여론조사 문항 구성과 질문 등을 모두 한덕수 후보에게 유리하게 짰을 것이다. 만약 김문수 후보 쪽이 주장하는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라면 최근의 지지도 추세를 볼 때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는 양쪽이 합의한 방식대로 진행하는 게 불변의 원칙인 것이다. 국민의힘 계엄사는 어둠 속에서 조사를 밀어붙였고, 그 조사로 후보를 갈아치웠다. 정치적, 도의적, 법률적 모든 면에서 눈곱만큼의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행태다.
'계엄의 수혜자'는 이번에도 한덕수
한덕수 후보는 '윤석열 쿠데타의 최대 수혜자'다. 내란의 공범 혐의를 짊어진 채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올랐다. 불타버린 헌정 질서의 잿더미 위에서 뜻하지 않은 복록을 누렸다면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소임이라도 충실히 했어야 옳다. 그런데 '임시 심판'을 맡겨놓았더니 갑자기 대선 운동장 한복판에 선수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의힘 계엄령 열차에 무임승차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한덕수 후보의 대선 출마와 후보 단일화 싸움 과정은 그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손해는 한 톨도 감수하지 않고 이익만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고 오직 얻고자만 했다. 그가 진정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입당해 경선에 참여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권한대행의 자리에 남아 '사전선거운동'을 했다. 경선 불참 이유를 "통상 압박 대처" 등으로 둘러댔지만 궁색한 말장난일 뿐이었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가 제공하는 온갖 특혜의 단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챙겼다. 어차피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끝나면 꽃가마가 준비돼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계엄사가 제공한 가마를 타고 '계엄령 후보'가 됐다.
더욱 알량해진 국민의힘 후보 자리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키려고…." 권성동 원내대표가 김문수 후보를 비판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알량하다'는 말은 '시시하고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향한 매우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다. 자기네 손으로 뽑은 대선 후보 자리를 '알량하다'고 했으니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는 김문수-한덕수 후보 중 누가 최종 후보가 됐든 애초부터 참으로 작고 초라한 자리였다. 이번 대선의 시대 정신은 분명하다. '내란의 구조적 청산을 통한 진정한 민주 국가 재건'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후보 단일화 논쟁은 처음부터 시대정신과는 동떨어진 내란의 유령들끼리 벌인 난투극이었다.
대선 후보 단일화 성공 신화를 쏘아올린 2002년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감동과 재미가 듬뿍 담긴 '웰 메이드 정치 드라마'였다. 기존의 정치 질서와 확연히 다른 새로운 정치 이미지, 진보-보수가 손잡은 국민 통합, 끝까지 결말을 점칠 수 없는 긴장감과 극적 반전 등으로 유권자를 열광시켰다. 그런데 김문수-한덕수 후보 단일화 논쟁은 처음부터 모든 게 정반대였다. 내란 옹호의 선봉에 선 덕분에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극우파와, 내란죄 피의자 신분에 있는 '내란 정권 총리'의 진흙탕 싸움은 아무런 감동도 희망도 주지 못하는 '그들만의 싸움'이었다.
'막장 치정극'으로 시작한 국민의힘 후보 단일화는 결국 '막장 범죄물'로 막을 내렸다. 정치적 정당성, 도의적 무게, 법의 단단함 등 모든 면에서 김문수 후보보다 더 떨어지는 한덕수 후보가 승리자가 됐다. '더 알량한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가 된 것이다.
이 계엄령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중앙선관위 후보 등록을 둘러싼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싸움의 난장판은 대선 기간 내내 계속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 내란'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의힘 계엄도 '실패한 쿠데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을 우롱하는 계엄령이 성공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가혹한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란 옹호'로 시작해 '자체 내란'으로 이어진 국민의힘 여정은 이제 비극적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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