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통화를 통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관세협상을 진행해 나가자고 요청했다. 관세 협상을 성과로 내세우려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사퇴하고 협상을 사실상 책임져야 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까지 사임하면서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6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과 통화를 갖고, 한미동맹 발전 방안 및 경제협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는 통화에서 조 장관이 "최근 한미 통상당국 간 관세 협의가 상호 호혜적인(win-win)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하고, 다만 한국 내 대선 정국 등을 감안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협의를 해나가자고 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조 장관은 한미 통상 협의 시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갖는 차별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루비오 장관의 관심과 역할을 당부했으며, 루비오 장관도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외교부는 "조 장관은 미국이 한국의 정치적 전환기 동안 흔들림 없는 지지를 발신해준 데 사의를 표하고, 6.3 대선 이후 한국의 신정부가 빠르게 안착하고 한미간 협력의 성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대선 직후 조속한 한미 정상 통화 성사 등을 위해 루비오 장관의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하여 미국으로서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는 관세 협상 속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스콧 베센트 국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주도하는 무역협상에 따라 공동의 경제 및 국가 안보 목표를 중심으로 한미 동맹 현대화에 진전을 이루고, 역내 공동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무부는 양 장관이 "강력한 연합방위태세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상호 안보 증진을 통해 대한민국을 방어한다는 한미 동맹의 근본적인 사명을 확인했다"며 "루비오 장관은 미국의 모든 군사력을 활용하여 대한민국에 확장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한국 측에서 선거 때문에 관세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한 전 총리가 관세 협상을 본인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베센트 장관은 한국이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7월 초까지 미국과 포괄적인 관세 협상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싶다. 우리가 회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들 정부가 선거 전에 무역 협상의 틀을 마련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실제로는 협상 테이블에 나와 이를 마무리하고, 이후 돌아가서 선거 운동을 벌이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이같은 의도는 4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 이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4월 21일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통상협의'를 가진다고 밝히면서 협상에 속도를 냈다.
한 대행은 특히 자신과 트럼프의 통화 이후 "미 측의 요청으로 이번 주 양국의 경제, 통상 장관이 만나 협의에 착수하게 됐다"며 본인의 통화가 미국과 협상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협상에 나선 최상목 부총리는 25일 미국과 통상협의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밝히며 한 전 총리와 다소 다른 구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 실제 한미 양측은 이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이후 한 전 총리는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며 1일 사의를 표명했고 최 부총리 역시 같은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 직전에 사의를 표명하며 물러났다. 그의 사의를 이날 24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유지했던 한 전 총리가 수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이를 관리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이 본인 정치를 위해 직을 내던지고, 미국과 관세 협상을 주도해야 하는 경제부총리마저 이를 책임지지 않고 떠나면서 당장 미국과 관세 협의는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새 정부와 협상하자"라는 것 외에 외교부가 미국에 달리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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