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의 요건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연세대 박사과정 전원 장학금 지급 방침을 보고

연세대학교가 올해 2학기부터 모든 계열 박사과정생 전원에 정액 장학금을 지급한다. 학생들이 학문과 연구에 몰입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국내에서 처음 시행하는 이 장학금은 많은 규제와 부족한 예산으로 위기가 깊어 가는 대학 생태계에서 오래간만에 들리는 반가운 소식이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대학의 연구 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에게는 대학원 교육이 매력 있는 선택지라고 보기 어렵다. 평균 4~5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학위 취득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이 기간 유실 임금도 만만치 않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경제 환경도 학위 취득 이후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어 학위 취득을 망설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이 배출하는 박사 수는 큰 폭으로 증가해 왔다. 1990년 2481명이던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2010년 최초로 1만 명을 넘어서더니 지난해 1만8714명에 이르렀다.

문제는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 순위에 집착하는 한국 대학의 풍토에서 대학원 교육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정착되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대학원은 학부 등록금 동결의 재정적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대학원 교육은 '학위 세탁'이나 '학위 장사'가 행해지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한 젊은이가 대학원 교육을 선택하는 순간 직업으로서 학자의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그렇다면 학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자부심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물론 해당 학문 분야에 관한 전문성이겠지만, 직업인으로서 보수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보수는 공부하는 동안 장학금이나 생활비 형태로 주어질 것이고, 졸업 후에는 그가 활동하는 학교나 연구소 등의 직장에서 주어질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만으로는 직업학자에게 충분한 보수가 주어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장래가 불확실한 연구자에게 선뜻 자금을 투자할 기업이나 독지가는 많지 않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특히 한국과 같이 이미 선진국에 들어선 나라에 있어 대학원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국가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이 반드시 필요하고 육성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정한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무엇보다 모든 대학이 수준 높은 대학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몇 개의 과학기술(IST) 대학을 제외한다면 연구중심 대학이라고 할 만한 대학이 보이지 않는다. 종합대학 중 대학원 중심대학이라고 할 만한 대학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학을 제외하면 대학원생이 30%를 넘는 기관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주요 대학의 대학원생 비율ⓒ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국내 대학 대학원생 비율ⓒ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중심대학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학부보다 대학원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학원생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에게 검색을 시켜서 세계 유명대학의 대학원생과 학부생 수를 구해보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외국의 연구중심 대학에는 대학원생이 학부생보다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 대학의 대학원생 비중을 구해보니, 대학원생 비중이 절반을 넘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대학원생에는 특수대학원 소속이 포함돼 있으며 석사과정생이 박사과정생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대학원생 비중이 1/3을 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학원생의 비중이 20% 미만인 대학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연구 중심 대학을 추구한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대학원에 대한 지원은 충분한 규모를 가진 대학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대학원에 대한 대표적인 재정지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BK21도 지원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사업단 단위에 대한 사전 평가를 바탕으로 한 지원에서부터 대학원생 수에 기반해 지원하고 세부사항은 기관의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더욱 학부 입학 서열을 중심으로 한 경쟁에서 벗어나 더 나은 연구 성과를 위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연구 부문 재정지원이 일정한 규모와 질을 갖춘 대학원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춘 대학이 학부생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생을 늘리는 유인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대학이라는 기관 전체가 쓸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는 한, 학부 정원 감축이 없이 대학원생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대학원생 비중의 확대는 학부생 축소와 대학원생 증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식이라야 한다. 과다한 학부 정원 감축 없는 연구중심대학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 하버드 대학교 전경. ⓒ하버드 대학교 홈페이지 갈무리.

마지막으로 한가지 짚어두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내에 연구중심대학이 있더라도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장래의 학자에 대한 지원은 미래에 대한 중요한 투자다. 따라서 연구중심대학의 형성을 위한 지원은 학생에 대한 직접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장래의 학자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장래의 학자에게 금전적인 유인도 제공돼야 한다. 최소한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하는 동안 지금보다는 확대된 충분한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은 연구 후속 세대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기관에서 교육받느냐보다는 누가 어떤 연구자로 양성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관보다는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학생 개인에 대한 지원도 기초학문 연구자일수록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책 방향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서도 학문 분야별 차이를 존중하는 세밀함 또한 필요하다. 예컨대 본격적인 연구중심대학이 아니더라도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기여가 큰 소규모 대학원 교육에 대한 지원도 소홀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흔히 대학 생태계라는 표현을 하지만, 생태계의 핵심 가치가 다양성에 있다는 사실은 무시되곤 한다. 학부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 내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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