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폭주하는 남성성'을 수행하는 구사대

[인권의 바람] 현대차의 울산 이수기업 투쟁문화제 폭력 행사를 돌아보다

덩치가 큰 남성들이 몰려와 그중 한 남성이 여성 한 명의 머리채를 잡더니 들어 올려 던진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여성은 화단에 머리와 팔이 부딪친다. 여성들은 목을 졸리기도 했다. 여기저기 항의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회색 옷을 단일하게 입은 남성들은 아랑곳 않고 사람들을 몰아붙인다. 움직일 공간조차 없어지도록 힘을 과시하듯 밀어댄다. 이 모든 것이 대낮에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재벌 대기업, 현대자동차 앞이다.

이 폭력은 지난달 18일 울산 현대차 1차 하청기업 이수기업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해고 200일 투쟁 문화제를 하던 중 발생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해고된 하청노동자들이 문화제를 시작하며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집회 대오 뒤에서 순식간에 200명이 넘는 남성들이 몰려왔다. 소위 구사대(회사를 구하기 위하여 모인 집단이란 뜻으로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직원이나 경비용역 등을 일컫는 말)로 지칭되는 사람들이다.

집회 참여자들은 집회신고를 한 집회 장소에서 문화제를 평화롭게 진행 중이었음에도 구사대에게 폭력을 당했다. 집회는 헌법과 집시법이 보장하는 것으로 부당하게 해고한 현대자동차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 것이기에 해고자들은 현대자동차 앞에서 신고하고 진행한 것이라 법적 문제도 없었다. 심지어 폭력이 행사되는 그 시간, 그 장소에 경찰이 있었지만, 그저 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울산에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의 공장들이 넘쳐난다지만 그렇다고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

참담하게도 울산에서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초법적 면책특권이 주어진 양 행동한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등에서도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구사대 폭력은 비일비재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 집회 참가자들에게 몰려드는 구사대ⓒ이수기업대책위

여성에게 집중된 폭력과 폭주하는 남성성

구사대의 폭력은 여성으로 보이는 참가자들에게 집중됐다. 우르르 몰려온 그들은 여성으로 보이는 참가자들에게 몸을 밀착하기도 하고, 가슴을 누르는 등 성추행도 했다. 주먹으로 눈을 가격당한 여성 조합원이 바닥에 쓰러졌음에도 계속 여성 조합원을 깔아뭉개고 이를 저지하려는 다른 참가자들의 손을 가격했다. 남성 참가자들이 여성들을 빼려고 하자 현대차 구사대가 포위해 몸을 더 밀착시켰다. 흉부 압박, 뇌진탕, 호흡곤란, 손가락 골절, 다리 부당 등이라는 참가자들의 피해 목록은 폭력의 강도를 말해준다. 30여 명이 다쳤고, 10명이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였다.

여성 참가자에 대한 폭력이 단지 참가자 중 여성이거나 여성으로 보이는 '2030 패싱 여성'들이 많았기에 여성에게 폭력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아니 의도적으로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퀴어들의 연대를 막겠다는 의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나아가 여성혐오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곡된 남성성을 무기 삼아 벌어진 폭력이고, 현대차 경비대들의 왜곡된 남성성을 사용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경비대라는 특수한 직종의 남성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과도하고 왜곡된 남성성이다. 이들에게 물리적 행사를 권유하고 장려함으로써 남자다움을 인정받는다고 교육하고, 폭력을 증오의 대상에게 표출하도록 한다.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은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 남성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구사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모습ⓒ이수기업대책위

이미 우리는 폭주하는 남성성을 지난 서부지법 습격 사태에서 이미 보았다. 3시간 동안 국가기관인 법원은 부숴지며 무법지대가 됐다. 당시 '신남성연대'를 비롯한 극우 유튜버와 극우세력의 목표는 차은경 판사였다.

신자유주의 극우 파시즘이 추구하는 질서, 추구하는 사회란 무엇인가. 정상가족주의가 기본이 되는 국가와 가정에 대한 충성, 국가와 기업이 한 몸으로 인정되는 사회, 즉 기업이 잘되면 나라도 잘된다는 식의 왜곡된 정의, 따라서 기업주의 마음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노동자들은 자동으로 질서를 해치는 적이 된다. 더구나 이러한 질서를 거부하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순종적인 여성성을 체화하지 않았기에 더 손쉽게 분노의 대상이 된다. 이들에 대한 공격은 정당화된다. 이렇게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민혐오 등 소수자혐오와 착종하여 폭력은 더욱 힘을 얻는다. 젊은 경비대의 여성혐오 정서는 폭력의 윤활유가 된다.

이번 현대차의 구사대 폭력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기업의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폭력이다. 이수기업은 현대자동차 1차 하청업체다. 지난해 9월30일 이수기업은 노동자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2003년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건설 이후 현대차는 사내 1차 하청업체 폐업 시 업체명과 사장만 바꾼 채, 하청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용을 승계하지 않았다. 파견법과 대법원의 판결로 확인됐듯이 제조업체에서의 파견은 불법파견이기에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던 역사와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을 은폐해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 전략 실현에 걸리적거리는 비정규직 이수기업 해고자들과 연대자들에 대한 폭력이 강도 높은 이유다.

▲구사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모습ⓒ이수기업대책위

기업의 폭력을 방관하는 국가

구사대의 폭력은 한 번만 행사된 것이 아니었다. 문화제를 끝내고 노숙 농성을 준비하던 중 현대차 구사대가 앰프를 강탈하려 했고 이에 대항하자 폭력이 행사됐다. 자정에도 퇴근 선전전을 준비하는 집회 대오에 대한 폭력이 있었다. 폭행은 현행범 체포 요건이지만 경찰은 단 한 명도 체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의하는 집회참가자만 연행했다. 국가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비용역의 폭력에 대한 방관은 울산이수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D타워 앞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의 농성 천막을 철거할 때도 철거용역업체의 폭력은 심각했다. 커터칼까지 쓰며 천막을 부수려다 조합원의 손가락 혈관이 절단시키기도 했다. 심각한 폭력이었지만 경찰은 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마트노조를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했다.

계속되는 기업의 구사대 폭력을 방관하는 경찰, 경찰이 최소한의 중립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현실, 기업의 사병처럼 기업의 지시만을 따르는 경찰을 마주하며, 우리는 그 고리를 끊어야 민주주의와 인권이 가능함을 절감한다. 이후 실행되어야 할 경찰개혁의 방향에는 반드시 기업과의 결탁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