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왜 지속되어야 하는가?

[기고] 서울대 경제학부는 공적인 학문연구와 교육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2008년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의 명맥이 끊긴 이래로 힘겹게 개설을 유지해 왔던 관련 교과목들이 급기야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진보적 관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그 학문적 가치에 동의하는 많은 진보적 교수-연구자들이 서명을 통해 강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관련 교과목들의 중요성을 알게 된 학부생들도 이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학사위원회가 강좌 개설을 폐지하려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강좌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사실 특정 강좌의 수요가 줄어드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취업을 위해 선호하는 전공이었다. 그런데 경영학, 회계학과 같은 실용 학문들이 점차 영역을 넓히면서 경제학 자체도 위축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학은 기업들이 원하는 주류경제학 중심의 실용적 교과목들을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운영하면서 취업 잘 되는 학과로 살아남으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학생 수요의 원리에 기대어 학과를 운영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무전공 입학을 확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장래에는 경영학이나 회계학으로 몰려가는 학생들의 수요에 발맞춰 경제학 자체의 쇠락을 받아들이고 또 경제학과의 폐지도 받아들일 것인가? 기업의 인력 수요나 학생들의 취업 요구에 맞춰 경제학과를 유지하고 또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면, 온갖 수식으로 가득 찬 경제학 강의들을 들어야 한다고 말할 근거가 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학문연구와 교육의 장으로서의 대학교, 공적인 학문연구와 교육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교육기관으로서 서울대학교의 위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목적은 단지 기업이나 학생들의 취업 수요에 맞추는 데에만 있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 사회 전체 경제의 작동을 이해함으로써 장차 한국 경제의 운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데 있다. 기업의 이익이나 취업이라는 실용에 갇혀있지 않은,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지닌 학자나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이라는 학문과 경제학과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다. 대학교에 다양한 시각과 영역의 경제학을 연구한 교수-연구자들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경제학 전문 인력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는 더더구나 그러해야 한다.

학문과 교육의 발전을 대학생들의 수강 수요에 맡기겠다는 생각은 이러한 궁극적 목적과 역할을 방기하고 또 포기함을 의미한다. 지금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겠지만, 이것은 언제 '경제학 전체'가 될지 모를 일이다. 경제학과 학부생들의 수요에 경제학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좌는 단지 학부생들의 수요에 따라 폐지되어도 좋을 강좌들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이 설명해 주지 못하는 세계적, 거시적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노동 가치 이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폐기할 수 있는 이론들이 아닌 것이다. 경제행위자들의 합리적 선택이나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주목하는 주류경제학 이론들은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또 불황이 생겨나게 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든 한국 경제든 이러한 거시적 경제 현실을 누가 설명해 주어야 하는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노동 관계를 왜 단순히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계약 관계로 볼 수 없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하면, 또 이러한 불평등한 분배 관계가 어떤 경제적 효과들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거시적인 사회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과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시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의의가 크다. 말하자면 당장 학생들이 수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 학문적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또 이러한 기준으로 학문의 중요성을 판단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며, 학생들이 당장에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장차 그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좌의 개설을 ‘학생들의 수요’를 근거로 폐지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는 경제학을 배운 취업생을 키우는 대학이 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 사회를 넘어 세계사회 자본주의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고 사회 운영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를 키우는 대학이 되려는 것인지를 가름하는 분기점에 서 있는 셈이다. 이들의 결정이 한국 사회 경제학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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