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13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 중심부를 공격해 최소 34명이 숨지고 117명이 다쳤다. 최근 이어진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을 계기로 지지부진한 휴전 협상을 중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압박을 강화할지 주목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연설을 통해 수미 지역이 러시아 탄도미사일 2발의 공격을 받았고 한 발은 대학 건물에, 다른 한 발은 길가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부상자 중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습은 종려주일(부활절을 일주일 앞둔 기념일)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쓰레기들만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며 러시아를 비판했다. 영국 BBC 방송은 사망자 중 최소 2명이 어린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BBC에 이번 공습으로 교육 기관 4곳, 카페, 상점, 아파트 5동 등 건물 20채가 파손됐고 차량 10대와 전차(트램)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수미 지역 당국자들은 폭격에 사용된 미사일에 집속탄이 탑재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폭탄 속에 다수의 소형 폭탄이 들어 있는 집속탄은 민간인 피해 가능성을 높여 집속탄금지협약(CCM)에 의해 2010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공습으로 어린이 수업을 포함해 교육 활동에 참여하거나 교회에 갔던 주민들은 다급히 대피했다. BBC는 이름만 밝힌 이 지역 주민 나탈리아가 두 번째 공습이 자신의 차를 강타했을 때 자녀 및 다른 어린이들과 대피소로 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나탈리아는 방송에 "제때 대피소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우린 차 안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주민 스비틀라나 스미르노바는 종려주일을 맞아 친구와 교회에 갔다가 공습 탓에 급히 대피했다. 그는 "공습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친구 한 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이 없다"며 "친구는 당시 아들과 함께였는데 아들도 부상을 입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공습은 지난 4일 러시아 공습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크리비리흐에서 최소 19명이 숨진 뒤 열흘도 안 돼 일어났다. 당시 탄도미사일이 놀이터 인근을 타격하며 어린이 9명이 숨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공격을 비판하며 휴전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전쟁을 러시아가 혼자 시작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인명, 국제법,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러시아 혼자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휴전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의 끔찍한 공격에 경악했다"며 "푸틴은 지금 조건 없는 완전하고 즉각적인 휴전에 동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후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견 관련 유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나라들이다.
수미 공습, 美 특사 푸틴 만나고 이틀 만…"도 넘었다"
이번 공습이 미국이 러시아에 휴전 압박을 높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 특사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민간인을 목표물로 한 러시아군의 수미 공격은 도를 넘은 것"이라며 "이는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수미 공습은 스티브 윗코프 미 중동 특사가 푸틴 대통령을 만난 지 불과 이틀 만에 이뤄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윗코프와 푸틴 대통령 회담이 "미-러시아 간 우크라전 관련 회담이 지연되고 푸틴 대통령이 광범위한 휴전을 약속하기를 꺼리며 트럼프 행정부의 초조함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미국 중재로 지난달 에너지 시설에 대한 부분 휴전에 합의했지만 양쪽 모두에서 위반 주장이 나온 상황이고 흑해 휴전엔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러시아가 농산물 수출에 대한 서방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함에 따라 발효가 미뤄지며 사실상 흐지부지된 상태다. 이 가운데 전면 휴전 협상은 발도 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스카이뉴스도 11일 회동이 트럼프 행정부가 "평화 회담에 진전이 부족한 것에 대해 점점 좌절"하고 있다는 징후라고 해석했다. 방송은 윗코프와 푸틴 대통령이 세 번째 만났지만 만난 장면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라며 해당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주도적이고 훨씬 더 느긋한 모습을 보였고 윗코프는 강한 협상가가 아닌 수줍은 남성팬처럼 보였다"며 "푸틴 대통령이 확실히 우세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는 움직여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고 무의미한 전쟁으로 죽고 있다"고 러시아를 압박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방위·보안 편집자 댄 사바흐는 "수미에서의 민간인 사망은 미 정부에 푸틴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요일(13일) 수미에서 발생한 살상과 파괴, 그리고 (11일) 윗코프와 푸틴이 악수하는 사진 사이의 불협화음은 대부분의 관찰자들에게 너무나 명백하다"며 "러시아가 민간인에 대한 낮 공격을 용인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왜 영토를 넘기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다만 백악관이 "어느 시점에" 민간인 살해를 러시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닌 "협상을 위한 진짜 압력"을 가해야 하는 사안으로 결론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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