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린츠'에서 익숙한 완주로…이정의 사진전 ‘린츠 8561 완주’

[전시] 오스트리아 린츠와 완주, 8561km를 '사진으로 잇다'… 4월 15일까지 완주 누에아트홀 전시

▲완주군 누에아트홀 2전시실. 한쪽 벽면에는 오스트리아 린츠의 골목이, 맞은편에는 완주의 시골 마을이 담긴 사진이 병치돼 있다. ⓒ프레시안(양승수)


“이건 완주고, 저건 린츠겠죠?”


완주 누에아트홀 2전시실. 벽면에 나란히 걸린 두 장의 사진 앞에서 관람객이 조심스레 입을 뗀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뾰족한 첨탑의 교회와 곡선을 품은 기와지붕, 도심 골목과 시골 들녘은 병치되며 서로의 경계를 흐린다.

이정의 작가의 사진전 ‘린츠 8561 완주 – 낯섦과 익숙함’은 그렇게 시작된다.

지난 2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이방인으로 머물던 시간과 고향인 완주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두 도시 사이의 물리적 거리인 8561km를 제목에 담았지만, 사진 안에서는 그 거리가 무색하다.

오스트리아 린츠 예술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정의 작가는 귀국 후 완주에서 진행된 ‘한 달 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고향에서의 낯섦과 새로운 친밀함을 동시에 발견하게 됐다.

“린츠에서 보낸 시간은 꽤 길었어요.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애썼고, 도시 구석구석을 수없이 걸으며 사진을 찍었죠. 지도교수는 제가 린츠 토박이보다 그곳을 더 잘 안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제 고향을 담은 사진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낯섦과 익숙함, 그 사이의 풍경

직접 전시장을 찾은 기자도 혼란을 겪었다. 린츠에서 찍은 줄 알았던 사진이 완주였고, 완주라 믿었던 풍경은 린츠였다.

이정의 작가는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했어요. 교회와 절, 첨탑과 지붕, 도시와 시골이 언뜻 닮아 있거든요. 익숙함과 낯섦은 상대적인 감각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린츠 예술대학교에서 ‘린츠는 변한다’는 주제로 수백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찍었지만, 정작 고향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완주의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그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린츠는 낯설었기에 열정적으로 찍었고, 고향은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쳤죠. 그런데 막상 카메라를 들고 보니 완주도 낯설게 느껴졌어요.”

전시장에는 정면 구도의 사진들이 조용히 관람객을 맞이한다. 거리 한복판에 선 듯한, 혹은 오래된 골목을 응시하는 듯한 장면들이다. 장식 없는 직선적인 시선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정면 사진은 기교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집중이 필요한 방식이에요. 순간을 정확히 마주봐야 하거든요.”

▲이정의 작가는 린츠와 완주를 형태 중심으로 분류해 사진을 나열했다. 유럽의 고딕 양식 첨탑과 한국의 기와지붕, 대도시와 농촌의 골목, 종교 시설 등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도 묘한 유사성을 드러낸다. ⓒ프레시안(양승수)


“나는 내 고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관람객들은 사진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선다. 도시를 설명하는 지도나 해설은 없다. 대신 낯선 풍경에서 익숙함을, 익숙한 장소에서 낯섦을 느끼게 된다.

그 사이에는 이정의 작가의 질문이 있다.“내가 더 잘 아는 곳은 린츠일까, 완주일까?”

이 질문 앞에서 관객은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내 고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게 낯선 도시는 어디일까?”


이번 전시는 단지 두 도시의 풍경을 비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정체성에 대한 성찰, 이방인으로서의 감정, 그리고 고향에 대한 애틋한 복귀를 담아낸 하나의 서사다.

린츠에서 타지인으로 지냈던 시간, 그리고 고향에서도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 이정의 작가의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어쩌면 ‘제2의 고향’이란 개념 자체가 이질적이고도 애매한 감정들로 채워진 풍경인지도 모른다.

사진전 ‘린츠 8561 완주 – 낯섦과 익숙함’은 4월 15일까지 완주 누에아트홀에서 열린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는 없다. 한적한 전시실에서 나란히 걸린 린츠와 완주의 풍경을 통해, 관람객은 저마다의 ‘고향’을 다시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이정의 작가가 완주 누에아트홀 전시실에서 린츠와 완주의 풍경을 병치한 사진 앞에 서서, 관람객에게 작품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양승수)


<작가 소개>

이정의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린츠 예술대학교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변산반도 격포에 위치한 스튜디오 ‘린츠’를 운영하며 전시, 강의, 촬영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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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수

전북취재본부 양승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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