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트럼프가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더욱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가 글로벌 경제와 외교에 폭탄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한 달 반 동안 트럼프 정부가 보여준 행보는 충격적이다. 대선 기간 트럼프가 언급했던 불법 이민자 추방부터 관세 인상과 연방정부 인력감축, 두 개의 전쟁 종식 등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파나마운하 운영권 반환 요구, 그린란드 획득 의지 표명에 이어 가자지구 '점령·소유'까지 거론하면서 '신확장주의' 논란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행적은 가히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트럼프의 등장과 극우 정치세력의 약진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로 규정하며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제외시켰다. 유럽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대해 유럽의 대부분은 미국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 아래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과 유럽의 안보 문제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전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 의지를 보이는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과 더불어 극우 정치 세력이 국제적으로 급격히 약진하고 있는 현상도 충격적이다. 이 현상은 유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15개국에서 극우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며, 유례없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은 각각의 의석수를 늘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극우 정당인 '유럽보수개혁당(ECR)'은 83석을, '전체성 및 민주주의(ID)'가 58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기에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의 15석과 헝가리 시민동맹(Fidesz-KDNP) 11석을 모두 합치면 총 167석이다. 이들이 단일 정치 그룹을 형성할 경우 유럽사회민주당을 밀어내고 유럽의회 내 제2당으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선거 결과는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치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히, 프랑스의 국민연합(RN)과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이 각각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특정 국가에서는 극우 정당이 주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에서도 AfD이 제2당으로 부상해 역사적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캠페인 구호를 차용하여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극우 세력이 세계적으로 결속력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부상하는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 실업, 자국 중심주의 및 이민자 문제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유권자들은 경제 불황과 사회적 소외감 속에서 극우 정당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극우 정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우 세력의 확산은 정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친미 반공을 내세우며 사회 지도층을 형성해 왔던 기득권 세력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동안 뉴라이트로 포장한 세력들이 대놓고 한미일 동맹을 외치며 반중 친일 행보를 하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의 극우 세력이 있다.
12.3 내란과 극우 세력의 전면적 등장
우리나라에서 극우 세력의 전면적 등장은 보수세력의 쇠퇴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2016. 4. 13)가 그 분기점이 되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었다. 4.13 총선 이전까지는 보수진영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으나 이후는 보수와 진보 진영이 박빙 상태로 변화된 것이다. 이 두 세력 간의 균형을 중도 표심이 결정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21대 총선(2020. 4. 20)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어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103석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22대 총선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70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진보당 3석 등을 차지했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승패를 가른 것이다. 야권의 압승으로 여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윤석열 정부는 이전의 정책 기조를 모두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부정선거론을 띄우며 민심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했고, 친위쿠데타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같은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영구집권을 꿈꾸었지만, 2시간 반 만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함으로써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시민이 계엄군보다도 먼저 국회에 도착해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고, 계엄에 대비한 야권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국회 복귀로 초동 진압을 했다. 그 과정에서 양심에 따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해태한 참 군인들의 역할도 컸다. 이 모든 것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라고 한 역사의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도 극우 내란 세력은 아스팔트 극우 폭도들을 방패막이로 삼고 준동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방법원을 침탈하는 난동을 부렸고, 윤석열을 파면하면 "헌법재판소는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 협박한다. "탄핵이 인용되면 한강이 피로 물드는 내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도 등장하고 있다.
국민주권을 선언하는 '더불어파티'의 시작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2월 22일) 경기도 광명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더불어파티'라는 이름으로 지역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시민운동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더불어파티는 지난 1년 동안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천 활동과 회의를 진행하면서 '지역으로부터의 정치혁신'을 만들려 노력해 왔다.
해방 후 8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분단과 외세를 등에 업은 적폐 카르텔의 횡포 속에서도 남다른 저항정신으로 민주주의를 키워왔다.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민주화운동, 촛불혁명, 최근 12.3 비상계엄 해제와 윤석열 파면 국면에서 보여준 응원봉 항쟁 등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변혁의 동력이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12.3 내란이 발생한 지 90여 일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크게 성장했다. 이날 우리 국민은 45년 전, 까마득히 멀어진 일로만 여겨졌던 비상계엄을 느닷없이 겪게 되었다. 비상계엄 후 계속되는 내란사태는 시련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각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린 적폐들의 실체가 얼마나 무섭고, 무모한지도 똑똑히 볼 수는 기회이기도 했다.
내란사태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숙제를 부여받았다. 조기 대선을 통해 탄생하는 새로운 정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며, 헌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 동시에 민주제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민주정치교육, 읍면동 단위의 지방자치제도 등 새로운 민주주의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개혁, 지역으로부터의 혁신이다. 민주제의 확립은 헌법을 바꾸고, 제도를 갖춘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의식이 변하고 삶 속에서 민주제를 정착시켜야 비로소 새로운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의 시작은 지역이라는 작은 단위에서부터 민주제에 대한 경험과 실천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방 후 제헌의회에서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방자치의 단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1948년 읍·면·동 단위로 규정된 기초 단위가 지금은 시·군·구로 되어 있어 주민 자치의 영역이 아닌 정치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읍·면·동 단위의 지방자치 회복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읍·면·동의 작은 단위를 중심으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생활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더불어파티는 한국 정치의 폐단을 극복하고 시민과 당원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대중정치시민운동으로 기획되었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폭발한 당원민주주의와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열망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모아졌다. 더불어파티가 지향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어떻게 국민주권 민주제도를 마련할 것인가?
첫째는 시민이 직접 만드는 지역혁신정치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 헌정사를 돌아보면 이 조항이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번 12.3 내란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헌법 정신과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현실 권력과 민낯을 보았고, 내란세력에 동조하는 정당, 종교, 언론, 그리고 폭동세력도 확인했다.
한국사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위기에 처해있고,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이 주권의식을 확고히 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는 총선 과정을 통해 시민의 강한 주권의식을 확인했고, 시민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와 사회대개혁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다시 위기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둘째는 정당민주주의 실현과 연대다. 더불어파티는 정당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부재한 우리 사회는 정치 혐오의식이 매우 강하다. 정당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하는 정당도 거의 없다. 진보를 내세우는 정당들조차도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에서부터 정당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역에서부터 기존 관행에 대한 견제와 협력을 해 나가야 한다. 중앙정당의 하향식 낙점이 아니라 주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제도를 이뤄낼 것이다.
셋째는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축제' 같은 정치실현이다. '파티(party)'는 정당 혹은 정치조직이라는 말로 사용되지만 축제라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란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즐기는 축제와 같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근본적 원인은 시민을 정치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과 제도, 문화에 있다. 이를 극복하여 시민에게 정치가 곧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넷째는 집단지성이 작동할 수 있는 시민정치플랫폼의 개발이다. 온라인이 생활의 한 축이 된 지금 정치도 온·오프에서 동시에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편리하게 정보를 받고, 함께 결정해야 할 사항을 온·오프에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온·오프에서 생활과 정치에 대해 집단지성을 모으는 시민정치플랫폼을 개발하고 확산해야 할 이유다.

정당공천개혁이 그 출발점
한국 사회의 정치판은 중앙, 엘리트 중심의 대의정치로 짜여 있다. 이번 내란사태는 소위 엘리트 정치의 폐해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이 정치기득권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실 정치, 언론들은 지금도 정치 불신을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수구·보수 정당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당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대부분의 정당은 시민과 함께 정치적 과제를 발굴하고, 성취하려는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다. 중앙의 소수 기획자들이 과제를 던지고, 지역은 이를 수행하는 하부 기관일 뿐이었다. 정당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려면 후보자부터 100% 지역당원들과 시민이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의 광명은 대표적인 낙하산 공천지역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능력과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중앙당에 의해 보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광명더불어파티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부터 새로운 정치혁신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시민 누구나 광명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후보자들은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내놓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정책을 실현해나갈 리더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중앙이 지역을 지배하고, 기득권층이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지금의 정치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길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위험한 상황을 잘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새로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더 큰 위험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12.3 내란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는 더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졌었다. 만약 내란이 성공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십 년 후퇴했을 것이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살리려면 기존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어렵다. 시민의 집단지성을 모아야 하고,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도 중앙과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마치 3.1운동이 전국민 운동이 되었던 것처럼. 추락하던 대한민국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지금,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혁신의 작은 깃발을 올린 광명 더불어파티라의 실험은 그래서 의미 있다. 더불어파티는 국민주권의 시대를 선언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