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장돌뱅이'들의 헌법 모독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홍준표 대구시장은 12·3 내란 사태 뒤 일찌감치 대선 출마 뜻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면서도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했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냉소가 나왔다. "탄핵에 반대한다더니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것 같다." 대선에 나갈지 묻는 기자 질문에 이런 답변도 했다. "나간다.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장에 안 가겠나."

장돌뱅이는 물건을 팔기 위해 떠도는 사람이다. 대구에서 장이 열리면 대구로, 서울에서 장이 서면 서울로 달려간다. 4년장이든, 5년장이든, 장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모이면 달려간다. 홍 시장이 스스로 장돌뱅이라고 말한 것은 자조나 자기비하가 아니다. 나름의 유머로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비유한 것이다.

홍 시장뿐 아니다. 선출직 권력을 좇는 이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정치판 장돌뱅이다. 대선장, 총선장, 지방선거장, 보궐선거장, 어디든 자기 물건을 팔만한 장터가 열리면 달려간다. 이미지와 유창한 화술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정책과 비전의 보따리를 풀어 물건을 판다. 이것이 정치인의 업이고 숙명이다.

저잣거리 장돌뱅이에게도 '상도의'는 있다. 그들의 도리는 정직한 물건을 파는 것이다. 정치판도 다를 바 없다. 물건을 파는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정치의 상도의는 '헌법'이다. 헌법을 존중하는 마음이 무너지면 장터의 의미는 사라지고, 장돌뱅이들이 설 땅도 흔들린다.

대통령이 된 자는 취임식에서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이 선서는 오래도록 의례적 절차의 하나쯤으로 여겨졌다. 선서는 지나가는 말이었고, 식순의 한 조각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내란으로 바뀌었다. 취임 선서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국민과의 무거운 약속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헌법을 준수하고"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식민지의 고통,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스며 있고, 민주주의의 뜨거운 날들이 녹아 있다. 그것은 피로 쓰인 문장이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한 문장에 응축돼 있다. 헌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그 시간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것은 대통령 직무의 시작이자 끝이다. 윤석열은 이를 배반했다.

홍준표 시장은 비상계엄 사태를 "경솔한 한밤중의 해프닝"이라고 표현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계엄 옹호와 탄핵 반대의 선봉에 서면서 갑자기 여권의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그동안 대선 후보 명단에도 없던 사람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지만 우왕좌왕 갈지자 행보를 보면 오십보백보다.

이런 사람들이 대선에서 승리해 취임식 선서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그들은 무슨 염치와 체면으로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헌법 준수 서약을 어느 누가 곧이 믿을 수 있는가. 비상계엄 사태를 "한밤중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의식구조에서 비상계엄의 공포는 일상화된다. 야당이 눈에 거스르면 계엄을 선포하고, 헌법기관에 얼마든지 무장 군인들을 들여보낼 수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 모독당'을 넘어 '헌법 파괴당'이 됐다.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를 모두 때려부수자"는 발언이 스스럼 없이 나온다. 3·1절 탄핵 반대 집회에서 서천호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그 자리에는 나경원, 추경호, 김기현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37명이 모여 있었다. 누구도 놀라지 않았고, 누구도 막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개인 발언'이라며 아무런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주의의 뼈대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 기둥을 부수고, 보루를 무너뜨리자고 외친다. 헌법의 가치, 헌정 질서를 파괴하자는 노골적 선동이다. 그것은 독이 든 씨앗이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울 때 대한민국은 어떤 세상이 될까.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태연스럽게 애국, 국가의 미래를 소리 높이 외친다. 헌법을 더럽힌 손으로 국기를 흔들고, 법질서를 짓밟은 입으로 나라의 앞날을 논한다.

내란의 홍수가 휩쓸고 간 이 나라는 모든 게 쑥대밭이 됐다. 장터도 진흙투성이다. 그 장터에 상도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장돌뱅이들이 물건을 팔겠다며 천을 펼칠 채비를 하고 있다.

헌법을 모독하는 자가 헌법을 지킨다고 맹세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헌정 질서 파괴를 부추기는 자가 법질서 준수를 국민한테 요구하는 것은 양심불량 몰염치다. 스스로 무너진 사람이 어떻게 국가를 바로 세울 수 있는가. 나라의 기둥과 보루를 무너뜨리려는 정당이 어떻게 국가의 미래를 열 수 있는가. 불가하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대구 달서구 2.28민주운동기념탑에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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