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사고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인간의 삶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지난 12월 29일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공항에 동체착륙을 시도하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탑승자 모두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탄핵정국으로 혼란이 가득한 가운데 일어난 사고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고 현장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함께 울며 새해를 맞았다.

세계 최고의 항공 교통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율로 보자면 항공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지만 국내외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항공사고는 비행기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간은 이 같은 사고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2024년 12월 29일로 돌아가 보자. 방콕을 출발한 비행기는 순항 끝에 오전 8시 54분 무안 국제 공항 관제탑으로부터 착륙 허가를 받고 01번 활주로로 접근 중이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조건이었다. 착륙 허가 3분 뒤 관제사는 조종사에게 조류 활동 주의 통보를 하는데 관제사의 경고 2분 만에 조종사의 비상선언과 복행이 이루어진다. 긴급 선회한 항공기는 처음 착륙 허가를 받은 활주로 반대 방향인 19번 활주로 위로 동체 착륙을 시도 했다.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던 항공기는 활주로 끝단을 지나쳤고 로컬라이저를 받치는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해 화염에 휩싸였다.

무안공항 주변은 새들의 집단적 서식처인데 새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집단 비행을 하며 먹이활동을 한다고 한다. 조류 충돌의 위험이 큰 지역이고 새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이다. 이 같은 환경이면 비행안전에 취약한 조건이기에 공항 주변 조류 활동을 더 엄중히 살피고 조류 퇴치 활동도 강화해야 했다. 하지만 알려진 무안공항의 조류 퇴치 관련 장비나 인력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에 현격히 모자랐다.

항공기 엔진에 새들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는 아주 드문 일이 아니고 년간 발생 건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항공기 운항 횟수가 늘면 늘수록 조류 충돌 사고는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열차도 드물지 않게 주행 중 새들과 충돌하는데 갑자기 굉음이 들리면서 전면 유리창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 날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온전치가 않다. 기관차에는 새들과 부딪혀 주행에 영향을 받을 만큼 훼손될 것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여객기에는 보통 2개 이상의 엔진이 있어 하나의 엔진에 이상이 있어도 남은 엔진으로 충분히 비행이 가능하다고 항공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모든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면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2216편이 그랬듯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수백 수천마리의 새들이 군집 비행하는 상공을 비행기가 통과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두 엔진 중 한 쪽 엔진만 문제가 생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49일째인 15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분향소에서 열린 49재 합동위령제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류 충돌로 인한 불시착의 상징적 사례는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2009년 1월 15일 발생한 US에어웨이 1549편 사고이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불과 2분 만에 날아든 새 떼에 엔진 두 개가 모두 기능을 잃었다. 기장으로부터 메이데이 선언을 수신한 관제사는 회항 요청을 받고 공항 활주로를 긴급히 비운다. 1549편 기장은 동력을 잃은 비행기가 활공 중인 상황에서 회항을 하거나 관제사로부터 추가로 제안받은 인근의 공항들로 기수를 돌릴 경우 선회에 따른 운동에너지 상실로 추락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기장은 가까운 허드슨 강으로 기수를 돌렸고 물 위로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강 위에 안착한 1549편은 비상문을 열고 구명보트를 전개했고 허드슨 강변에 있던 예인선과 요트 등 많은 배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비행기 동체를 향해 몰려왔다. 조종사의 침착한 대응과 판단, 노련함이 탑승자 155명의 생명을 구했다.

다큐멘타리나 영화제작자 또는 언론에서 US에어웨이 1549편을 기적이라 칭송하는 것은 과하지 않다. 그러나 사고를 분석하거나 안전 체계를 고민하는 기관이나 사람은 기적을 기적으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 사고 전문가들은 기적은 일종의 경고로 봐야 한다고 한다. 사실 기적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일 경우가 허다하다. 두 개의 엔진 중 하나만 작동되어도 정상 운항이 가능하다는 말은 모든 엔진이 불능 상태에 빠지는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무안공항측은 새들의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관리했어야 한다. 새들의 활동이 고조되는 시간대에 조류 퇴치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고 가능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제주항공 2216편은 엔진 불능 상태가 되었지만 조종사들의 노력으로 19번 활주로 위로 동체 착륙을 시도 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시도되는 착륙 방식이지만 활주 길이만 확보된다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비상시에는 활주로 오버런이 발생할 수 있기에 활주로 연장선에 장애물을 설치 하지 않는 것도 안전 설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안공항 19번 활주로 너머에는 콘크리트 벽이 버티고 있었다.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선에 설치된 로컬라이저 지지대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설명은 무책임하다. 국토부 장관은 콘크리트 벽이 법령이나 규정 위반은 아니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말은 국민에게 억울한 일이 있으면 속으로 삭이라는 말과 같이 들린다.

항공안전을 책임지는 주무 부서가 다양한 사고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그 결과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심스럽게 하는 태도이다. 사고는 구멍 난 치즈 이론으로 설명하곤 한다.

비록 완벽에 가까운 기능을 갖췄다 하더라도 시스템에 연관된 모든 독립체는 완전할 수 없다. 철도의 예를 들자면 선로 검측 장치나 열차의 구동장치, 자동정지장치, 신호장치, 숙련된 기관사와 관제사가 각각의 치즈와 같다. 임의로 구멍이 난 치즈 덩어리들을 붙이게 되면 그 구멍들이 일렬로 관통될 확률은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다. 설혹 시스템의 일부에 문제가 생길지라도 이 모든 안전시스템 중에 하나가 정상 작동된다면 사고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고 방지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치즈에 난 구멍들이 서로 일치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필자가 지난 2018년 강릉선 KTX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살펴본 것도 겹겹이 쌓여있는 치즈를 관통한 구멍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였다.

사고 예방은 안전시스템이 서로 중첩되고 보완되게 하면서 가능한 많은 플랜B들을 상정하는 것이며 이것이 우연히 해제되거나 무력화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은 사고를 줄이기 위한 플랜B가 아니라 사고를 키운 장애물이었다. 이 같은 설비가 그동안 전국의 여러 공항에 아무 문제 제기 없이 설비되었다는 것 자체가 국토부 항공 안전 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49일째인 15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분향소에서 열린 49재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항공 사고를 통해 드러난 문제는 명확하다. 조류 퇴치를 포함해 안전을 위한 인력 확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장비나 인력에 대한 투자는 비용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공항의 수익과 무관하게 반드시 지켜야 할 필수적 요건들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법과 규정으로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국토부는 항공기 정비에 필요한 안전 인력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정비 주기 및 시간은 준수되고 있는지도 상시적으로 감시 감독해야 한다. 서류상 기준에 맞게 제출된 인력과 실제 정비에 임하는 인력의 차이는 없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항공사들이 수익과 안전을 저울질 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공항 설비들이 비상 상황에서 흉기가 될 여지가 없는지 조사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면 현재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공항 건설 계획들이 타당한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새로 추진 되는 공항들 대부분은 새들의 서식지와 겹치고 있다. 공항이 건설되고 주변이 개발된다. 거대한 주차장과 호텔, 리조트와 골프장들이 들어서기도 한다. 새들의 서식지는 줄어들고 그만큼 새들의 밀집도는 증가한다. 당연히 조류 충돌 사고 확률은 더 커지게 된다.

기후위기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적지 않은 국가들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항공을 친환경적인 철도 같은 교통수단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발을 맞추기는커녕 개발을 못 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선거 때마다 들썩이는 공항 건설론과 이에 편승하는 국토부의 항공 정책은 임박한 대선을 앞두고 진심으로 걱정된다.

인간이 안전한 삶을 영위하며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혜를 모으는 일은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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