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러시아와 밀착해 '정면돌파'?…남북관계 개선 없이 경제발전 어려워

[현안진단] 노동당 창건 80주년, 김정은 정권의 딜레마와 진정한 '정면돌파전'

북한 '지방발전 20×10 정책' 성과의 의문

설을 이틀 앞둔 지난 1월 27일,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참석 하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0차 비서국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남포시 온천군과 자강도 우시군에서 발생한 '특대사건'을 다루었다.

비서국 확대회의에 따르면, 온천군에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군당 전원회의 준비와 진행을 소홀하게 한 뒤 40여 명의 당·행정 간부들이 '집단적인 음주불량행위'를 벌였으며, 김 위원장은 이를 '엄중한 당규율 위반 및 도덕문화 문란죄'로, 노동당 규율노선에 대한 '공개적 부정'으로 간주했다. 비서국 확대회의는 남포시 온천군당위원회를 해산하고, '특대사건 가담자들'에 대한 엄정한 처리안을 선포했다.

북한 매체는 "군 안의 수십 명에 달하는 당, 행정책임일군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가 그러한 부정행위를 감행한 망동은 일찌기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지방 행사에서 음주를 동반한 회식은 흔히 있는 일이며 통상적인 관례라는 점에서 의문이 있다.

또한 비서국 확대회의는 자강도 우시군 농업감찰기관 감찰원들이 "법권을 악용하여 지역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재산을 마구 침해"하는 '특대형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을 해산하고 우시군 당위원회 책임비서와 우시군 농업감찰기관 감찰원들에 대한 엄정한 처리안을 선포했다.

우시군 농업감찰기관 전체가 처벌을 받았다면 개인 비리라고 볼 수 없다. 북한에서는 중앙에서 지시가 하달될 경우, 보통 해당 지역 자체로 목표를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주민의 세외부담, 충성자금 상납, 노동력 동원 등의 방식을 활용한다. 따라서 비서국 확대회의가 강조한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의 '특대형범죄행위'는 바로 이 같은 관행을 둘러싼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온천군과 우시군은 이번 비서국 확대회의 개최 직전 김정은 정권이 2024년 내내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과물인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을 화려하게 개최했던 곳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은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10년 동안 북한 지방의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온천군과 우시군의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은 각각 1월 21일과 27일 <노동신문> 1면을 장식했다. 특히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처벌을 받은 우시군 군당책임비서는 <노동신문> 준공식 기사에 사진까지 실렸던 인물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과인 지방공업공장 완공을 위해 노력했던 두 지역의 간부들이 준공식 직후 집단적 처벌을 받았다면, 김정은 정권의 지방발전정책 자체의 후유증으로 볼 소지가 있다.

김 위원장은 지방공업공장이 원료를 자체적으로 조달해 운영할 것을 강조했지만, 준공식을 마친 대부분의 공장에서 플라스틱 제품과 의류 제조시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플라스틱 제품과 의류의 원료를 지방에서 자체 조달하는데는 구조적으로 제약이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월 19일 자 보도를 통해 올해 초 준공식을 진행한 북한 지방공업공장들에서 열이 감지되지 않는다며, 미가동 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방공업공장 준공식이 '보여주기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김 위원장은 2월 6일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 현장인 강동군 병원과 종합봉사소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올해 용강군과 구성시에도 병원을 시범 건설하고 내년부터 매년 20개 시·군씩 병원을 동시에 건설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2020년 3월 17일 김 위원장 참석 하에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을 개최하고, 같은 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 지방 곳곳에 병원을 건설해 운영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구상일 뿐이며, 김정은 정권의 정책적 혼선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 위원장은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당 창건 80돌을 맞게 되는 2025년의 벽두에 당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데 보다 주력"해야 한다며, '저격전',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강력히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천명했다. 올해 내내 강도 높은 기강잡기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번 온천군과 우시군의 주요 간부들에 대한 처벌이 비현실적인 지방발전정책 실패에 대한 희생양 찾기이자, 새로운 공포정치의 시작일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지난해 1월 1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시정연설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하강의 늪에 빠진 경제난

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무기를 공급하고 인민군을 파병하는 등 2024년 북·러 관계는 급격하게 밀착하는 양상을 보였다. 러시아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러시아에 입국한 북한 주민은 1만 3221명으로 2023년 1117명의 약 12배에 달했다. 입국 목적은 '교육'이 788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사업'(3098명)이 뒤를 이었다. 교육 목적의 경우 북한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유학생 비자로 노동자를 불법 파견했을 개연성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인은 6469명으로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관광객은 약 2000명이고 사업 목적 방문자는 약 1500명으로 집계되었다.

북·러 밀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북한 내 환율 동향은 북·러 관계의 경제적 영향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4월 1달러 당 8000원 대였던 북한 원화는 지난해 연말 30000원 대에 근접했으며, 금년 2월 상순 현재 20000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 상승의 영향 등으로 북한의 물가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4월 루블화 결제에 합의한 바 있으며, 2024년 6월 18일 방북 직전 푸틴 대통령은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해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북한의 군사협력에 대해 러시아가 루블화 또는 현물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율의 상승은, 코로나 19사태 때문에 3년 반 동안 국경을 폐쇄했던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면서, 북한경제의 상대적 낙후성이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평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북·러 밀착의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러 밀착은 북·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월 3일 자 <노동신문>은 시진핑 주석의 연하장을 <노동신문> 3면에 게재했으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인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부인'으로 실명 없이 여러 정상들이 보낸 연하장 중의 하나로 보도했다. 반면 쿠바와 콩고의 경우 바로 옆에 연하장 전문을 실었다.

이 같은 사례는 북·중 관계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동안 북한은 시진핑 주석의 연하장과 친서는 <노동신문> 1면에 전문을 게재해왔으며, 지난해 말 푸틴 대통령이 보내온 축하 편지도 <노동신문> 1면에 전문을 게재했다.

북·중 관계 악화는 경제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의주와 단둥을 오가는 북한 화물열차의 물동량은 최근 크게 줄었으며, 단둥에 파견된 북한 무역대표부의 규모도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 내 북한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귀국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신규 입국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2024년 북한경제 평가 및 2025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중국 무역액이 지난해 1∼11월 19억 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러시아 파병의 후유증

2024년 6월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준 군사동맹으로 평가받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해 왔다.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군수지원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인민군 1만 1000~1만 2000여 명을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병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인민군의 러시아 파병은 김정은 정권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아직 주민들에게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러 정상과 당국은 서로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러·우 전쟁은 먼 나라의 일이며, 중국과 달리 러시아를 가까운 나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민군의 러시아 파병은 명분을 찾기 어려우며, 북한 당국이 아직까지 파병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 파병 인민군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있으며, 무제한적 소모전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랑하는 인민군 전투력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며, 쿠르스크 전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5년 2월 상순 현재 파병 인민군 병력의 25%에서 최대 50%까지 손실되었으며, 전사자도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경우 파병 인민군의 정상적 작전 수행이 어려우며, 추가로 보충병을 받거나 부대를 축소 재편해야 한다.

파병 사실을 숨기고 있는 북한 당국은 아직 전사자 통보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분 없는 러·우 전쟁에 대한 인민군 파병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거나 대규모 전사자 발생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한 내 동요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파병 인민군이 급속하게 소모되는 상황에서 추가 파병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러·우 전쟁이 조기 종료될 경우 러시아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에게 인민군의 러시아 파병은 점차 악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지난해 6월 19일 북한 수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진정한 '정면돌파전'의 길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결을 예고하고 '정면돌파전'을 선택했다. 정면돌파전의 주요 내용은 군사적으로 핵능력 고도화와 국방력 강화, 경제적으로 자력갱생, 외교적으로 신냉전 외교, 그리고 남북한 적대적 2국 관계 전환과 통일·민족개념 폐기였다.

정면돌파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이한 김정은 정권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역점을 두고 추진한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초기부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북·러 밀착의 경제적 효과는 미미하며 오히려 북·중 관계 악화를 초래해 북한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에서 '헤어질 결심'을 확고히 하고 북한 헌법에서 통일·민족 개념의 삭제를 지시했지만 이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아직 북한 주민들에게 관련 설명과 교육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재회의 신호를 발신하고 있으며, 김 위원장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다시 공개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간 빅딜 또는 스몰딜형 비핵화 합의가 도출된다 해도 어느 경우든 대한민국의 존재를 도외시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형 협상 방식을 고려할 때 북·미 협상에 뒤따르는 비용을 한국과 일본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주목해야 할 것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관계가 활성화되었던 시기의 북한경제는 큰 문제가 없었으며, 심각한 식량난을 겪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비롯한 관광산업도 우리 없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남북관계사의 교훈이다. 10여 년간 지속된 금강산관광사업으로 금강산을 방문한 193만 여명의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던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불확실성의 시대와 트럼피즘의 파고 앞에 북한의 신냉전 외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국제사회가 금지한 핵무기를 손에 쥐고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을 전쟁 관계로 전환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자문할 일이다. 노동당 창건 80주년, 사면초가에 놓인 김정은 정권이 가야할 진정한 정면돌파전의 길은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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