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이니 집이 따뜻해요'로 확인하는 에너지 복지? 조선시대도 아닌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에너지 복지' 논의, 이제는 제대로 바꾸자

철마다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한동안 잊혔다가 해당하는 철이 되면 마치 새로운 이슈인 양 튀어나오는 것들이 기후 문제에는 많다. 농작물 이름만 바꿔 반복되는 '대파 대란', '사과 대란', '배추 대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기후위기 심화에 따라 농작물 피해가 광범위해지고 있으나, 유통 구조개혁, 파종 면적 조절, 기금 확보 같은 중장기 과제는 언급만 될 뿐 큰 진전이 없다. 농작물 수입 같은 단기적 해법만 반복될 뿐이다.

에너지 분야에선 에너지 복지와 관련한 논의가 그렇다. 여름이면 '에어컨 대란', 겨울이면 '난방 대란' 같은 뉴스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뿐이다. 단기적인 해법으로 수차례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에너지바우처 증액 등이 진행되었지만,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처에 불과하다.

2004년 2월, 전기요금 미납으로 단전이 되었던 장애인 부부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자다가 화재 사고가 발생해 부부가 모두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 가구는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요금이 미납되어 단전되었고, 공교롭게도 한전에서 단전 조치를 한 그날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요금 미납 단전 유예를 확대하는 방안과 함께 중장기적인 대책으로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여론이 확산하였으나, 단전 유예 조치만 확대되고 끝났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 이어지자,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그해를 '에너지 복지 원년'으로 선언하고 2016년까지 120만 에너지 빈곤층을 해소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흐름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녹색성장을 주요 목표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 빈곤층 해소'를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의 중점사업으로 잡았다. 노무현 정부의 계획보다는 더 늦지만,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 빈곤층을 0%로 만들겠다며, 에너지 효율 제고, 기초에너지 사용권 확립, 복지 전달체계 효율화 등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까? 당장 0%로 만들겠다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뒤늦게 2022년 법 개정을 통해 에너지 이용 소외계층에 대한 실태조사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그나마 예산 편성이 늦어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어떨까? 2021년 973억 원 수준이던 에너지바우처 지원액이 국제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과 2023년 4,002억 원과 4,372억 원으로 급증했지만, 이미 받은 에너지바우처 중 사용하지 않은 미사용액 비중이 2021년 17.1%에서 2022년 33.6%, 2023년 38.6%로 급증했다. 에너지 빈곤층일수록 주택의 규모가 작고, 에너지를 비롯해 모든 자원을 아껴 쓰는 상황에서 에너지 요금만 사용하는 바우처를 늘린다고 이걸 모두 사용할 수 없다. 더 이상 단기적 요금 지원 형태만으로 에너지 빈곤층을 해소하는데 한계에 있음에도 여전히 해법은 단기적 해법에만 집중되고 있다.

2019년 국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79년 이전에 지어진 단독주택과 2013년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의 단위 면적당 난방에너지 사용량이 2.9배 차이가 난다. 1979년 이전 주택의 경우, 당시 건축법에 사실상 단열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웃풍이 심한 단독주택과 한겨울에도 별다른 난방이 필요 없는 아파트의 차이를 보는 건 흔한 일이다. 부유한 이들일수록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주거환경에 따라 에너지 효율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낮아서 때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 즉 더 많은 에너지 가격을 내고도 냉난방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앞서 국토부 자료의 2.9배 에너지 사용량 차이는 그나마 주택의 형태를 갖춘 곳들의 이야기이다. 실제 쪽방촌이나 비닐하우스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경우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수행한 2021년 에너지바우처 이용 가구에 대한 패널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바우처 이용 가구 중 37%는 집안이 추워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10여 년 전에 에너지 빈곤층 해소를 국가정책 목표로 삼았고, 4천억 원대의 에너지바우처 지원금과 6000억 원 대의 한전 요금 할인금 등 매년 1조 원 이상의 에너지 복지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에너지 복지를 둘러싼 논의는 기후위기를 맞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거 보기 힘들었던 혹한이 반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사치'처럼 치부되었던 냉방도 '필수 서비스'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혹한만큼이나 폭염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통적인 에너지원이었던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하는 과제 또한 함께 갖고 있다. 석탄과 천연가스를 퇴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탄, 도시가스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은 단기적인 상황에서는 필요하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단계적으로 이들 연료를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기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복잡한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칼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마법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 장기적이며 단계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수십년째 제자리인 에너지빈곤층의 정의부터 통계까지 기초자료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구소득의 10% 이상 에너지구입비에 사용하는 가구로 정의된 에너지 빈곤층의 정의를 소득 구간이나 주거 형태 등으로 다변화하여 실제 지원이 필요한 에너지 빈곤층의 숫자와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 효율 등급 측정조차 어려운 열악한 주거환경에 있는 이들부터 단계적으로 주거 환경에 맞춘 에너지 복지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아직도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가구 중 상당수는 단지 연탄 보일러를 다른 연료로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들에게 탈석탄과 기후위기를 근거로 난방연료 연탄을 없앤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것이다.

일반 주택의 경우에는 에너지 효율등급을 측정하고, 이를 공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유럽 많은 국가들이 주택에 에너지성능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임대할 때, 에너지효율 등급을 공개해야 하며, 일정 기준이하의 주택의 경우 벌금을 내거나 임대가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집주인에게는 단열 강화를 위한 리모델링을 유도하고, 리모델링 지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여 단계적으로 전체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러한 사업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서 에너지 가격 폭등이 일어나더라도 충격을 줄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남향이니 집이 따뜻해요' 같은 조선시대에나 나올법한 부동산 중개업자나 집주인의 말로 집의 단열이나 난방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전부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기후 재난의 정도나 빈도가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보완해야 하며, 탈화석연료·에너지 효율 강화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에너지 복지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단기적 요금 지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에너지 복지 정책을 중장기적인 에너지효율 강화, 주거환경개선, 연료 전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탄소세 도입하는 것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고 에너지 복지를 실현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한 탄 핵정국이 조만간 조기 대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언제나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는 많은 기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많은 이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이후 출범하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매번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언급되었다가 봄날의 따뜻한 기운과 함께 사라지는 단발성 '에너지 복지' 논의는 이제 끝나야 한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복지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차기 정부에서는 더 진중하게 다룰 것을 기대해 본다.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와 빌라 모습.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