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화요일 밤, TV에는 '긴급 속보' 자막이 떴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한파'에서 '계엄'으로 바뀌었다. SNS 타임라인은 '계엄이 뭐예요?' '어디 전쟁 났어?' '실화냐?'는 반응으로 요동쳤다.
윤 대통령은 역사 속 박제됐던 '비상계엄'을 1979년 이후 무려 45년 만에 꺼내 들었다.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친위 쿠데타'로 불리는 1972년 10월 유신 이후 5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54일 만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기소됐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최초로 '피고인' 신분으로 전환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지금도 지지자들 사이에 살아 있다. 서울서부지법이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1월 19일, 그의 극렬 지지자들은 폭도가 돼 법원 청사를 넘어들어가 폭동을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사법부 테러를 가했다. 민주주의 권력을 삼분하는 최후의 근간이 수십 명의 폭도에 의해 무너지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오히려 치솟는 불가사의한 일이 현실화하는 요즘이다.
21세기 최고의 정치적 격동기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1월 19일 법원 폭동 사태 및 1월 26일 윤 대통령이 구속기소되기까지 일지를 정리했다.
12월 3일 그날 6시간
윤 대통령은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오후 10시 30분 10여 명의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해 서버를 촬영하고 당직자 휴대전화를 압수했으며, 추가 병력 100여 명이 3시간 20여분 동안 선관위를 점거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주변에는 경찰 기동대가 배치됐으며 오후 11시 4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오후 11시쯤 우원식 국회의장이 1미터(m) 높이의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수많은 국회의원이 불법적인 계엄령 해제를 위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 당직자들은 장애물을 쌓아 계엄군의 의사당 진입을 막았다.
오후 11시 23분 비상계엄 포고령 1호가 공포됐다. 15분여 뒤 경찰이 국회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이윽고 오후 11시 40분쯤에는 계엄군이 헬기 등으로 국회 경내에 진입해 국회 본청 출입문을 봉쇄했다.
윤 대통령은 12월 4일 오전 0시 30분쯤 계엄군에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오전 0시 45분 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2층 사무실 창문을 깨고 본청에 난입했다.
오전 0시 47분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본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오전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에 비상계엄은 약 2시간 40분 만에 무효가 됐다.
오전 1시 15분 국회 본청에 난입했던 계엄군이 물러갔다.
오전 1시 59분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과 국방부에 계엄 해제 요구 통지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0분쯤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 '탄핵' 열흘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6개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 바로 다음날인 12월 4일 오후 2시 40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어 5일 0시 48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7일 오전 10시 계엄 사태 이후 첫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 회피하지 않겠다", "제2의 계엄과 같은 일은 결코 없다",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국회는 12월 7일 오후 9시 27분 대통령 탄핵안 1차 표결을 진행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투표 참여를 거부해 정족수 부결로 불성립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12일 오전 사전 녹화된 29분가량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이번 비상 조치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와 국헌을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드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국회는 12월 14일 오후 5시 탄핵안을 재표결했다. 국민의힘은 1차 표결 당시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해 비난받자, 이번에는 당론 지정을 포기했다. 이에 재표결 결과, 재적 300명 중 204명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이날 오후 6시 15분 국회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 접수됐으며, 사건번호는 '2024헌나8'로 정해졌다.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의 '몸 풀기' 한 달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12월 8일 계엄 사태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긴급 체포하고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16일, 21일 세 차례의 검찰 소환 조사에 불응했다. 검찰 출석 요구서에는 윤 대통령 혐의로 '내란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적시됐다.
공조수사본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방부 조사본부 등)도 윤 대통령에게 18일, 25일, 29일 세 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 역시 불응했다. 공수처 검사 명의로 작성된 출석 요구서에는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적시됐다.
헌재는 윤 대통령의 잇단 문서 수취 거부에 '송달 간주'를 결정하고, 12월 27일 첫 변론준비기일을 시작으로 탄핵심판 절차에 들어갔다.
법원(서울서부지법)은 12월 31일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 체포 영장 및 관저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공수처와 대통령의 '추격전' 보름
1월 3일 아침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를 처음 시도했다.
이날 오전 7시 19분 공수처와 경찰 체포조 150명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오전 8시 2분 공수처는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시작해 바리케이트·차벽 등 경호처의 저지선을 뚫고 관저 앞 150미터(m)까지 접근했으나 경호처 직원들의 인간벽에 막혔다.
오후 1시 30분 공수처는 영장 집행 시작 5시간 30분 만에 집행을 중지했다.
1월 15일 새벽 공수처가 2차 윤 대통령 체포 집행에 나섰다.
오전 4시 20분 1차때 보다 8배 이상 늘어난 약 1000여 명이 윤 대통령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체포조는 오전 7시 30분쯤 경호처 차벽을 우회해 관저 경내로 진입했으며 오전 8시쯤에는 관저 철문 앞 초소를 통과했다.
오전 10시 33분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집행했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체포됐다.
오전 11시 공수처는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영상조사실에서 윤 대통령 조사를 시작했다. 이날 공수처 조사는 10시간 40분가량 진행됐으나, 윤 대통령은 묵비권을 행사한 채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체포된 뒤 사전 준비한 영상 메시지를 내고 "수사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서 국민을 기만하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며 수사기관의 공식 수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 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며 계엄 선포로 인한 탄핵심판도 부정했다.
1월 16일 법원(서울중앙지법)은 전날 윤 대통령이 낸 체포적부심사 청구를 기각했다.
1월 17일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계속해서 조사에 불응하자 법원(서부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1월 18일 오후 2시 윤 대통령은 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비상계엄이 정당하며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월 19일 오전 2시 59분 서부지법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폭도들의 법원 폭동·사법 부정 1박2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18~19일 구속영장 심사 법원인 서부지법과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담을 넘고 집기를 파손하는 등 사법부 결정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1월 18일 오후 4시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서부지법 앞 집회에 참석해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서울구치소로 들어가 강제로라도 대통령을 모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경찰 비공식 추산 4만4000명 운집)
1월 18일 오후 6시 50분 영장심사 참석 후 복귀하던 공수처 차량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훼손됐다. 경찰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10여 명을 체포했다.
1월 19일 오전 3시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들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서부지법 담을 넘었다.
오전 3시 21분 지지자들은 경찰 방패 등으로 서부지법 정문과 유리창 깨고 법원 건물 안으로 진입, 민원실과 영장판사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CCTV·컴퓨터 등 사무 집기를 파손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수색했고 법원에 방화를 시도했다.
오전 3시 32분 경찰이 법원 건물 안 지지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시작해 오전 5시 15분 지지자들을 건물 안에서 몰아냈다.
오전 7시 28분 지지자 대부분이 해산했으나 일부는 경찰과 대치를 이어갔다.
같은 날 오후 윤 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헌재 쪽으로 이동해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재동초등학교 인근에서 미신고 불법 집회를 열었다.(경찰 비공식 추산 1300명)
오후 2시 20분쯤 헌재 인근에서 남성 1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오후 3시 30분 헌재 담을 넘어 경내 진입을 시도한 남성 1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오후 4시 50분 헌재 인근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일명 '빠루'를 지닌 남성이 흉기 은닉 휴대 등 혐의로 체포됐다.
1.19 법원 폭동 사태로 총 90명이 체포됐으며, 이들 중 56명이 구속됐다. 서부지법 판사실 출입문을 손괴하고 침입한 혐의를 받는 40대 남성(사랑의교회 특임 전도사·유튜브 채널 운영자)도 구속됐다.
법원과 헌재의 시간
윤 대통령은 결국 1월 26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현직 대통령 최초로 '피고인' 신분이 된 그는 구속 상태로 1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제 윤 대통령 앞에 놓인 것은 법원과 헌재의 시간이다. 그는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계엄 사태 이후 조사 불응과 관저 칩거처럼 버티기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최근 헌재 변론기일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기 정당화에 적극 임할 것인가.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지금 중요한 것은 사법 절차 순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치적 내전이 확대 심화하느냐 아니냐"라면서 "법원과 헌재에 응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평화적 쇄신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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