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개신교 대중운동이 만든 '윤석열 대통령의 나라'

[인권으로 읽는 세상] 헌정 파괴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세울 때

한국사회가 사실상 내전 상태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극우 정치 DNA를 전면화한 국민의힘 지지율은 비상계엄 전의 30%대로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상승세다. 윤석열은 체포·구속되었지만 직전까지도 체포를 철회하고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도 40%를 뛰어넘었다. 대통령과 권한대행 탄핵 국면을 지나 조기 대선 전망 속에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커졌고, '이재명은 안 된다'고 여기는 보수층이 결집한 결과라는 진단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보수층 결집을 주도한 것이 12.3 내란을 '적법한 통치행위'이자 '평화적 계엄'이라고 주장하는 윤석열의 정치력은 아니다. 윤석열의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체포 영장 집행 저지에 나선 국민의힘 혹은 '보수의 저력' 또한 아니다. 이는 오히려 2025년의 극우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소위 '보수 대 진보'라는 정치 지형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극우 대중운동의 급진전

"윤 계엄선포가 실패했냐고? 이제 우리는 완전히 이겼습니다."

윤석열 지지자들을 향한 전광훈의 단언처럼 비상계엄 종결이 극우 세력의 위축 혹은 소멸로 귀결되지 않고 '성공'으로 여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침내 극우가 보수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힘을 합쳐달라"던 박근혜의 옥중 서신은 사멸의 길을 벗어나기 위한 보수의 분투에 파묻혔다. 하지만 애국시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거나 '청년'들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윤석열의 반복된 메시지는 극우 대중을 완연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시켰다.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전광훈 앞에서 90도로 인사하는 윤상현 의원, '백골단'을 자처하는 극우 청년들을 등장시킨 김민전 의원의 모습은 경악할 만하지만, 이 또한 일부 보수 정치인의 일탈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의 쇄신과 재구축'이라는 과제 앞에 구심을 잃은 보수가 극우 세력에 흡수·종속되어 가는 과정의 단면이다. 최근의 여론 변화를 단순한 '보수의 결집'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조차 불사하겠다는 일념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극우 행동주의 아래 다수의 보수 세력 및 대중이 접합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보수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고 해서 극우의 영향력을 그저 민주주의 규범의 왜곡 혹은 하향조정으로만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현재의 극우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한 축인 '국민 주권'과 자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축인 '공공성'의 원리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정치세력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반사회적 행위와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극우 정치를 실천한 결과가 서울서부지법 난입이다. 언론은 윤석열의 선동에 주목하지만, 바로 그 선동을 명분으로 결집하는 대중 세력없이 선동은 사회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 '윤석열의 마지막 발악'은 체포나 구속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극우 대중운동의 행동주의와 동원력, 극단주의 이념에 대한 충성도에 의존한다. 20%대의 보수정당 지지도를 30%대로 끌어올리며 지배적인 여론을 흔들고 있는 극우는 이제 한국사회의 기초 설정값이 됐다. '확장 가능성 없음'이라는 과거의 진단 또한 유효하지 않다. 이는 윤석열 퇴진 광장 안팎에서 민주주의 전망을 새롭게 쓰고자 분투하는 한국사회 앞에 성큼 다가온 또 다른 민주주의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지 이틀째인 16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태극기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풀뿌리 대중운동, 극우의 생존과 확장 경로

윤석열의 만행은 윤석열과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나라의 결과이듯, 현재 주류 보수정당의 정치를 잠식한 듯한 극우의 전면화 역시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무력화되어 온 과정의 결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윤석열 퇴진을 반대하는 극우 대중집회의 상징이 2016~17년 박근혜 퇴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태극기, 성조기, 찬송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2016~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보수는 치명타를 입었지만, 대표적 극우 세력인 '태극기 부대'의 가시화는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정치외교학자 채장수의 지적처럼 태극기는 87년 민주화 이후로 전례가 없었던 민간의 자발적·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이면서, 실용·절충을 중시하는 일반 보수보다 '좀 더 근본적이고 비타협적인 수구진영'이 중심에 선 우파운동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노인 알바'나 '광신도 집단', '수구 꼴통'과 같은 사회적 인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태극기 극우의 낡은 반공냉전 이념과 권위주의 체제를 향한 맹신은 주류 질서를 재편하지 못하고 주변화·고립화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금 국가주의와 권위주의가 광장과 거리로 새롭게 소환되며 더 강고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무엇일까. 그 핵심에는 바로 극우 개신교 대중운동이 있다.

2000년대 이후 보수적 대중운동의 급격한 성장을 이끈 건 직접적인 사회정치 참여 노선을 택한 개신교 뉴라이트와 극우 개신교다. 이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같은 정치종교 단체나 태극기와 같은 독자적인 광장세력화, 우리공화당이나 자유통일당 같은 소수 극우 정당을 넘어서 대중조직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보수개신교의 급진화를 추동해 왔다. 사회학자 김현준은 특히 2010년대부터 '개신교 우익청년단체가 기성 우익단체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강조한다. 보수개신교와 그 하부 네트워크들이 청년을 대상으로 펼친 각종 미시 동원조직과 대중교육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극우 프레임과 지식을 재생산하고, 혐오의 정치를 대중적으로 확산해 온 결정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극우 지식이란 '동성애-공산주의-주체사상-종북'을 연결하면서도 이를 기존 우파의 핵심 가치인 '애국'과 대립되는 것으로 정렬하는 담론이다. 극우 이념은 때로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해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학부모단체로, '트루스포럼'과 같이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 네트워크 혹은 싱크탱크로, '자유마을운동'과 같이 주사파 척결을 내건 주민자치회와 같은 풀뿌리 운동으로 변모해왔다. 이렇게 극우 대중운동은 다양한 개인 및 집단을 적극적인 정치행동의 주체로 키우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애국'으로 대체해왔다. 한강진에 포진해 있었고 국회 기자회견장에 떳떳하게 등장했으며 폭력으로 법원까지 진입한 극우 청년 집단의 등장은 바로 극우 세력이 풀뿌리 조직 및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운동의 저변을 넓혀온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불평등 속의 좌절과 분노,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12.3 내란 사태 이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폭력의 구조는 물론 단일한 정치 세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극우는 민주주의 위기로 등장한 다층적인 세력을 결합시키면서 극우를 주류화하고 있고, 이는 다시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극우가 부상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요구가 좌절되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대중을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조직하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김윤철은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1990년대 한국사회의 통치 구조가 '군부독재의 억압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산업화 시기의 특성인 '민중배제적 사회경제체제'를 재생산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정권 세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들어선 정권에서는 공통적으로 노동과 평등 가치에 대한 배제가 체계적·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한국사회 '불평등 민주주의'의 주요 기점이라고 말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전면화 속에서 두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며 차별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했다. 최근의 '국가소멸' 담론은 사회재생산 전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증명한다.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방치된 불평등과 부정의는 격화된 경쟁 속에서 승자독식·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일상화했다. 이는 12.3 내란 사태 이후 탄핵 광장에 선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우리의 삶은 이미 비상계엄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불평등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좌절과 분노 또한 날것으로 드러나기 쉽다. 바로 이 좌절과 분노를 지체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해결해나가기보다, '애국시민'과 '반국가 세력'이라는 적대 구도를 만들고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면서 자신의 정권창출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 바로 윤석열의 극우 정치다. 윤석열은 한국사회에서 오랜 극우 이데올로기인 반공·반북과 함께 반노동·반노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종북·좌파' 세력에 대한 분노를 강화해왔다. 또한 여기에 여성과 페미니스트, 장애인,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에 대한 다층적인 전선을 만들면서 '외부의 적'과 구별되는 '진짜 국민'을 선택적으로 호명하고 혐오 실천을 독려했다.

비상계엄은 바로 이 적대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 파괴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극우 정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은 거대한 국가 폭력의 회귀를 용인하고 극우의 정치세력화를 가능하게 했던, 다르게 말하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토대가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한 번 대통령을 탄핵한 K-민주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의 정치 또한 불평등과 사회정의를 진전시킬 책임 앞에 멈춰서 있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을 통해 과거의 체제를 부활시키려고 하는 반동주의, 사회 변화를 위기 혹은 타락으로 간주하고 구질서를 절대적 가치로 확립하려는 근본주의, 내집단의 생존을 외집단에 대한 적대적 행동주의와 결합시키는 극단주의까지- 유연한 전략을 활용하는 오늘날의 극우 정치가 단숨에 제압되기 어렵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답이 공백으로 남은 사이 극우가 당도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민주주의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투쟁

극우는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그들만의 국민저항권'을 민주주의와 공존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지만, 법학자 정태욱이 선언하듯이 민주적 헌정질서는 근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민주적 헌정질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들의 공존 체계를 위한 것으로, 다수의 전제(專制) 정치를 배제하는 이념인 '공공성'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세력이 공격하는 것은 바로 공공성을 이루는 인간 존엄, 자유와 평등, 권력분립, 법치주의와 같은 보편적인 정치 원리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정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다. 개인화와 고립화, 적대와 양극화의 시대에 극우의 소멸 혹은 축소가 민주적 헌정질서의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오로지 민주주의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존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025년의 한국사회는 극우의 세력화가 뚜렷하지만 2025년의 응원봉 또한 2017년의 촛불과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들의 절박함은 '계엄상태의 삶'에서 사회구조의 모순을 발견한다. 그동안 정치가 거의 소멸시켜버린 보편적인 평등에 대한 열망을 읽는다. 남태령과 한강진, 전국의 퇴진 광장과 투쟁 현장들을 넘나들며 민주주의를 성찰하고 불평등에 맞서는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의 역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연되고 파괴된 민주주의의 보편적 질서, 훼손된 공동체의 정의 감각, 찢기고 분해되어 경쟁의 링 위에 던져진 이들의 연대, 이 시대에 필요한 '공존의 조건'이 바로 그 곳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퇴진과 함께 일상의 비상계엄을 해제시키기 위한 방향은 이미 공존의 조건을 다수의 의지로, 다수의 공동선으로 만들어가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 공동체의 전망을 만드는 싸움은 2017년처럼 선거에 갇힌 촛불 '이후'로 기약될 수 없다. 내란을 일으키고 동조한 세력, 내란 속에서 내전을 시작한 세력을 동시에 소멸시켜야 하는 한국사회의 과제는 2025년 광장에 서 있는 소중한 빛의 '한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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