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돌아왔다.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두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미국의 적대국뿐 아니라 많은 우방국이나 동맹국들이 곧 드러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많은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안보 과제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다. 당선 이후 트럼프는 키스 켈로그 전 육군 중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로 임명해 전쟁의 조기 종식을 밀어붙일 태세다.
그러나 전쟁의 조기종식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유럽의 전략과 셈법은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문제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 국가 간에 지루한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 도출이 쉽지 않은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러시아, 유럽이 생각하는 종전 협상의 윤곽
지난 대선 경선 때부터 일관되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강조해 온 트럼프 당선인이 종전 협상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 측이 생각하는 다양한 협상 전략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젤렌스키가 협상에 나오도록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대폭 줄이는 것이며, 러시아의 푸틴이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리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 외교·안보팀이 생각하는 종전 협상의 대체적인 윤곽은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선을 동결하여 전황의 현실을 인정한다. 둘째, 우크라이나는 한동안(일부 보도에서는 최하 20년 동안) 나토 회원국이 될 수 없다. 셋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 사이에 유럽 국가들이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넷째,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과 관련해서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재건 지원, 공식적 중립국 또는 군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까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있을 수 없고 러시아는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또한 나토의 우크라이나 주둔도 허용할 수 없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황의 현실 인정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80% 이상을 점령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그리고 70% 이상을 점령한 자포리자와 헤르손의 4개 점령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다. 다만 분할 점령과 관련해서 일부 협상이 가능하다.
셋째, 향후 우크라이나의 군대 재건과 관련해서는 군대 규모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종전 협상의 밑그림을 품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최근 들어 자국의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 한 종전 협상에 나설 생각이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편, 트럼프의 종전 협상 압박을 받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은 마지못해 종전 협상을 준비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를 강조한다. 12월 19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이사회에 초청받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은 나토 가입이라는 점을 재차 언급했다.
유럽 정상들도 우크라이나와 유럽 없는 평화협상은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조치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의 입장과 관계없이 추진될 수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종전 협상을 경계해서 나온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우려와 안보 불안감
트럼프와 러시아,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종전 협상 윤곽을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생각처럼 전쟁의 조기 종식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해 당사국 간에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완전한 종전과 전후 포괄적인 평화협정을 산출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 전쟁 당시 전쟁 이해 당사국들은 1953년 7월 정전 협정을 도출하기 위해 근 2년에 걸쳐 500회를 상회하는 기나긴 협상 과정을 거쳤다. 1300km가 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접경 거리, 트럼프와 러시아 그리고 유럽 국가들이 종전 협상에 대해 동상이몽인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는 종전 협상은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거나 성과가 도출되더라도 잠정적인 군사적 휴전이라는 매우 제한적인 결과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배제하는 트럼프 측의 종전 구상은 러시아에 유리하고, 자국의 안전보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영토와 평화를 맞교환하는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가 수용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안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나토 가입의 문을 두드리는 조지아나 몰도바 등 국경 인접 지역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여 푸틴이 2021년 12월 미국과 나토에 제안한 협상 내용의 상당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자국 영토의 20% 이상을 내어줄 수밖에 없고 종전 이후 안전보장 문제도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2024년 7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대한 나토의 다양한 조치와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를 자신의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우려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의 종전 구상과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국가 간에 주기적인 동맹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당선인,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 압박
전후 평화 정착을 위한 평화협정 타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문제로 유럽 동맹국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트럼프 당선인은 종전 협상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것인가? 어떤 전략적 목적이 숨어 있는가?
트럼프 당선인이 종전 협상을 강하게 추진하는 이면에는 좁게는 나토의 개혁과 넓게는 유럽 안보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기적으로 미국의 나토 탈퇴와 유럽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을 언급해 왔다.
미국이 나토 핵전략을 책임지고 있고 미국의 4성 장군이 유럽 동맹군의 최고사령관을 맡는 현재의 나토 군사전략과 지휘체계를 고려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나토 탈퇴는 현실성이 없는 엄포용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의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걸 누차 강조해 왔다. 지난 2019년 런던 정상회담 때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동맹국의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지키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서는 조약 제5조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소위 차등적 동맹 보호를 강조해 왔다. 즉, 유럽 동맹국이 최소 2%의 방위비 분담 원칙을 준수해야 동맹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선 이후 트럼프는 2%를 넘어 3%, 나아가 5% 분담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차등적 동맹 정책은 그 실현 여부를 떠나 유럽 동맹국들이 나토 내에서 유럽의 안보 기둥을 튼튼하게 구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분업 도모
유럽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은 동맹의 임무와 역할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에 전략적 분업을 도모할 수 있다. 지난 냉전 시대 미국은 안보를, 유럽은 경제를 책임지는 전략적 분업을 경험한 바 있다. 이제 러시아의 위협과 중국의 영향력 확장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이 유럽 안보를 책임지고 미국은 중국 봉쇄를 위해 인도-태평양 안보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전략적 분업은 트럼프의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하지 않더라도 유럽 안보에 덜 관여하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외정책 기조와도 부합한다. 따라서 트럼프 당선인이 주장하는 유럽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과 동맹의 전략적 분업은 다가오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안보 정책의 큰 흐름이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러한 전략적 의도는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에서 유럽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트럼프의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서 이스라엘 모델을 지양하고 유럽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만약 유럽 동맹국의 수용과 트럼프 당선인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이는 나토 내에서 유럽 동맹국의 군사력 강화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유럽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주둔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내는 안보 방파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이 강화될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유럽 군대의 주둔을 허용하기는 어렵지만 주둔한 유럽 군대를 공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나토와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탄핵 국면 신속한 매듭은 자강력 강화와 한미동맹 협력의 첫걸음
동맹의 보편적 가치보다는 거래적이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안보정책과 동맹정책은, 미국의 동맹국에 안보 우려와 동맹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강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의도치 않은 순기능을 낳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주는 역설적 교훈은 한 나라의 안보가 먼저 자강을 튼튼하게 다진 토대 위에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과 한미동맹에 대한 거래적 접근에 너무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키우면서 동맹국 미국과 안보협력을 확충할 수 있는 전략적 설계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 20일 정도만 지나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다. 탄핵 국면으로 혼란스럽고 외교가 상실된 한국의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거래를 중시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과의 갈등도 불사하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자강력을 키우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탄핵 국면은 신속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안보와 외교는 물론 모든 영역에서 불확실성의 제거와 지속성의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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