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성립요건이 되지 않는다"
지난 17일 윤석열을 변호하는 석동현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홧김에 해보자 하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서는 계엄 선포로 국민이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내란을 일으킨 게 아니다"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나 이는 내란에 대한 그들의 협소하고 자의적인 정의에 불과하다. 이미 국회만이 아니라 민중들은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대해 '친위쿠데타'라고 정의한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보통 쿠데타는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불법적으로 찬탈한다. 그러나 이번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친위 쿠데타는 이미 정권을 잡은 개인이나 세력이 의회 권력을 무력화해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것, 기존 헌법 체제를 뒤집는 전복 행위를 일컫는다. 즉, 현직 대통령이 했으니 내란이 아니라는 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꼼수다.
헌법상 삼권분립은 행정수반인 대통령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정치질서, 헌정질서다. 윤석열의 쿠데타는 이 삼권분립에 흐트러뜨리고, 즉 의회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다.
쿠데타는 혁명과 달리 기득권세력이나 무장세력이 정권을 찬탈해 민주주의를 뒤로 돌리고, 사람들의 인권을 제한한다. 즉, 민주주의나 민의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는 당일 계엄사가 내린 포고령 1호에 극명히 나타난다. 집회 시위의 자유도, 언론 출판의 자유도 금지되며, 영장 없이 체포․구금될 수 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를 다 유린하겠다고 하고서도 어찌 헌정질서를 뒤엎으려고 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뻔뻔함에 기가 찰 뿐이다.
윤석열이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는 정치체제, 오로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치를 꿈꾸었다는 것은 그날 밤 국회에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친위 쿠데타는 진행형
윤석열 변호인이 쿠데타를 시인하고 형량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당당하게 내란이 아니라며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사회에 이들을 따르는 극우세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태극기부대라 명명되는 아스팔트 우익들,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일부 극우 종교세력들, 동성애 혐오세력들이다. 그들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에도 헌재를 압박하며 시위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사태를 직시하기보다는 여당의 지위를 잃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며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다.
어디 그뿐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무회의의 책임자인 국무총리, 즉 내란죄의 대상인 한덕수가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로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자신이 내란에 동조하지 않았다며 변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정말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했다면 국무총리직을 내놓고서라도 반대했어야 한다.
그러나 자리보전에 급급한 한 총리는 엉터리, 반민주적이고 불법적인 계엄 선포에 응했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계엄 선포에 따를 수 없다"며 12월 4일 새벽 0시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던 것과 비교된다. 권한과 책임이 큰 한덕수 총리는 도대체 무얼 했는가. 그가 내란에 가담한 범죄자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덕수 총리(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는커녕 한덕수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지 않겠다며 국정 정상화를 위한 초당적 '국정안정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내란 가담자로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된 것과 비교해도 말이 되지 않는 제안이다.
민주당이 제안한 '국정안정협의체'는 쿠데타 세력을 존치시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용적인 이유로, 국정 안정이란 말로 쿠데타 세력에게 변명의 기회를 넘어 권한을 그대로 주겠다는 것은 광장에 모인 민의에 반하는 일이다. 쿠데타 세력과 국정안정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실제 쿠데타 세력 중 한명인 한덕수 권한 대행은, 국회에서 의결한 농업4법 포함 6개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윤석열의 아바타를 자처했다.
윤석열 없는 세상의 방향을 제대로 잡자
사람들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고 윤석열 없는 세상을 외친 것은 단지 윤석열 대통령 한 명만 교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만든 극우 혐오정치를 교체하자는 요구였다. 그런 점에서 반윤석열 전선은 불안하고 민주주의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겉으로는 비슷한 요구와 지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차이 중 어떤 것이 인권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에 다가서는 것인지, 혐오정치와 절연할 수 있는 것인지, 직시하려면 경청하고 사유해야 한다. 제도권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정쟁에만 머무르지 않고 광화문과 국회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웃고 어깨를 흔들며, 응원봉을 흔들기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던 그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며 윤석열 정부가 취임 내내 국정기조로 잡았던 여성혐오 정치를 끝내자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들은 레인보우 깃발을 여의도에 휘날리며 윤석열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일부 극우 기독세력과 손잡은 혐오에 대해 비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엄 이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엄 상태였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탄압과 착취에 대해 말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입법하라고 투쟁하는 전장연은 민주당 정권이 된다고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거냐고 탄핵집회에서 호소했다. 23명이 숨지고 그중 이주노동자 18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 유족들은 시민들에게 이주노동자 산재 해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권력을 주거나 받거니 했던 거대 양당 체제로는 불가능하다. 대통령 중심 체제가 문제이니 개헌을 하자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87년 헌법 체제의 국민중심성, 성평등과 노동존중의 부족 등은 바뀌어야 하지만 마치 개헌을 하면 친위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기득권 세력에게 더 많은 권한과 목소리가 부여됐던 불평등의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국정 방향이 노동 중심이 되어야 하고,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평등정책을 수립해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부자세 감세나 금투세를 폐지하는 "국정안정"은 노동자와 서민이 바라는 윤석열 없는 세상이 아니다. 다양한 정치세력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체제, 노동권 등 아래로부터의 권리가 보장되는 법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국정'을 흔들어야 한다.
양당 체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정치감각를 흔들고 다른 세상에 대한 시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양당 체제에 길들어진 시민들은 '국민의힘이 아니면 차악이 낫지'라거나 '적어도 쿠데타는 일으키지 않지 않겠냐'며 우리 다른 세상에 대한 열망을 눌러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열망이 분출하도록 해야 한다.
그 열망을 사람들이 외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없고, 여성혐오와 성소수자혐오 등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대해 말하자. 그리고 지금과 같이 열린 시기에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위한 제안을 하고 국회가 할 수 있는 입법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을 핑계로 미뤄진 인권법안을 제정할 수 있는 적기다. 그러기 위해선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노조법 2,3조 개정이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했던 '윤석열식 국정안정'을 깨뜨려야 한다. 아래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국정을 흔들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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