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항상 변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쓰던 말은 지금 다른 의미를 나타낼 때가 많다. 예전에는 ‘쪼다’, ‘머저리’ 등의 단어를 참 많이 썼는데, 지금 아이들은 ‘쪼다’라는 단어는 아예 쓰지 않는다. 사어(死語)가 된 것이다. ‘머저리’는 남·북한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기도 한다. 남한에서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지만, 북한에서는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쓴다. ‘꼰대’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해 왔는데, 지금은 고집불통의 늙은이(?)에게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노인들 스스로 꼰대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원래 꼰대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Conde’에서 유래했다. ‘백작伯爵(다섯 등급으로 나눈 귀족의 작위 가운데 셋째 작위)’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그 나라에서도 백작들이 백성들 세금 뜯어내느라 엄청 핍박을 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는 ‘뒤마’의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라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한 높은 벼슬아치인 백작이 백성들의 눈에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금을 뜯어내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좋지 않은 의미로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담임이나 부친을 ‘꼰대’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참고로 필자는 선친께서 교편 잡고 계셨던 관계로 꼰대라는 표현을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꼰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은어로 나타나 있다. 표준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통용하고 있으니 이것도 곧 표준어의 대열에 등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부친(아버지)’를 이르는 말
(기본의미)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위와 같이 은어이기는 하지만 별로 좋은 의미로 쓰는 용어는 아니다. 다만 노인들이 스스로를 ‘꼰대’라고 일컫는 것은 자조적이거나 스스로 고집이 센 늙은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필자도 퇴직하였으니 이제는 꼰대의 대열에 들어간 셈이다. 젊은이들의 노래를 이해하기 힘들고, 지하철을 타면 앉을 곳을 먼저 찾으니 꼰대가 된 것은 맞다. 꼰대의 입장이 되고 나서 삶을 살펴본다. 고혈압, 고지혈, 당뇨 경계선, 역류성 식도염, 족저근막염, 만성 어지럼증, 발뒤꿈치 갈라짐, 요추 3,4번 협착(만성 허리통증으로 늘 고생한다), 목 디스크 증상(허리가 아파서 컴퓨터 책상을 서서 하는 것으로 교체했더니 이제는 목 디스크 증상이 나타나서 어깨가 아프다) 등등 아픈 곳이 셀 수도 없이 많다.(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고염식하는 선배를 만나 소금과 물을 엄청나게 먹었더니 많은 증상이 사라졌다. 필자에게는 검증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니 믿거나 말거나……) 거기에 살은 또 왜 자꾸 찌는 것인지? 인격과 덕망이 뱃살에 모여 있나 보다. 사고방식은 여전히 현실감이 떨어지고, 남 탓만 하고, 나보다 잘난 놈이 보이면 무시하고 산다. 세월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사고방식은 만화 영화에 나온 똘똘이 스머프(1980년 대에 유행한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중 장난꾸러기)처럼 철이 없다. 육신은 현실을 따르지 못하고, 영혼은 갈수록 흐려진다. 어느 선배의 글에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더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년에는 온난화가 없어지겠지 하는 착각으로 여름을 보냈다. 쌓이는 세월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 사이버 공간에는 정보가 넘쳐나는데, 사람들은 갈수록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되어 간다.
최근에는 꼰대라는 단어도 세분화되면서 광꼰, 젊꼰 등의 신조어도 생겨났다.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제는 꼰대라는 용어가 확장되어 미친 꼰대(광꼰), 젊은 꼰대(젊꼰) 등의 단어가 나타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늘 얘기하듯이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오늘은 “꼰대짓하지 않았는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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