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한국 사회의 커다란 과제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수긍할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도 돌봄의 위기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자주 접한다. 최근에는 저출생 대책으로 지자체에서 24시간 아이 돌봄 사업을 추진하는데 신청자가 없다는 소식. 반면, 정부가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해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하고 대상자도 선정했지만 4달째 서비스를 기다리기만 하는 사례, 그리고 민간 부문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전하는 뉴스. 앞으로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지만, 처우가 좋지 않아 요양보호사가 크게 부족해질 전망이며 지역 간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기사 등이 있었다. 다양한 돌봄 현장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지만, 어디 이뿐일까. 아마 많은 사람에게 돌봄은 단지 뉴스 속 남의 일이 아니라 생생하게 체험하는 현실이다. 그중에는 수치화 되거나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들 외에 짐작조차 못 한 숨죽인 고통들이 있을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상황이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돌봄 서비스 제공(장애인, 아동, 노인, 환자 등)이 모두 시장에 내팽개쳐져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한 사회서비스원 중에는 폐지되거나 통합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영리기업들은 고령화 및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 보장하는 시장을 발판 삼아 새 먹거리를 찾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보험개혁회의에서 보험사가 재가요양기관을 설립하도록 허용했고, 점차 공공의 책임이 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역할이 늘어날 전망이다. 보험료를 올리거나 예산을 더 투입하지 않으면서 돌봄 수요를 관리하기 원하는 국가나, 노동자 처우 개선을 기피하는 기업은 또다시 돌봄을 이주 여성에게 떠넘길 궁리를 하고, AI 등 새로운 기술에 사활을 건다.
금융 자본은 돌봄의 시장화를 넘어 금융화를 노린다. 돌봄 제공 체계에서 금융적 동기, 금융 시장, 금융 기관의 역할이 커지면, 돌봄의 본질은 사라지고 투자와 거래, 투기는 늘어난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확보하는 정당한 수익보다는 주주들의 관심에 따라 직원을 줄이고 기관을 매각하는 것을 비롯해 단기적 수익에 더 치중한다. 더불어 시장점유율이 증가함에 따라 금융 자본들의 복지 서비스 제공에 관한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강화된다.
흘러가는 상황이 이러하다면 그야말로 '개혁'이라 부를만한 구조적 변화가 아니고서는 앞으로도 돌봄과 관련된 고통을 줄이는 것이 요원해 보인다. 의료 개혁 등 지금 정부가 언급하는 4대 개혁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구조적으로 경제적 동기 및 상품화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돌봄을 중심에 두는 개혁이어야 한다. 기존과 같이 수익과 자본 축적을 위해 돌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고, 돌봄이 가능한 사회를 위해 기존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방안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볼 수는 있다. 먼저 돌봄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언급하는 국가 책임 강화가 변화의 중요한 통로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돌봄 노동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돌봄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돌봄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앞서 24시간 아이 돌봄을 제공하는 사업보다는,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부모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앞장서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소득도 같이 줄어든다면 돌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우므로, 그에 걸맞은 소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몇몇 국가에서는 본인이 아플 때뿐만 아니라, 가족을 간병할 때도 상병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참고해 볼만 하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조차 가족돌봄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시범사업을 마치고 2025년에 시행한다던 상병수당 제도는 조용히 연기돼 언제 도입될지 모르는 한국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책은 개혁을 위한 주요한 수단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문화, 규범, 태도, 인식의 중요성도 크다. 가정에서도, 시장에서도 돌봄을 대부분 여성의 몫으로 만들어버리는 젠더 규범은 돌봄을 중심에 둔 개혁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다. 시민 모두가 함께 돌봄을 책임지는 것이 공정한 것이며, 돌봄 실천이 돌봄을 하는 사람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준다면 더욱 그러하다. 덧붙여, 돌봄의 탈 가족, 탈 시장을 가능하게 만들 새로운 돌봄 관계의 구축도 강조한다. 경제적 교환이나 혈연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공감과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거나 타임뱅크 운동('모든' 사람이 능력을 가지고 있고, 모두의 시간과 노동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전제하에 상호 호혜적 봉사가 이뤄지는 일련의 체계)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상상과 실천이 가능하다.
이러한 개혁은 누가 할 수 있는가? 일단 정부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현 체제에서 이득을 얻고 있으면서, 정치적 부담을 키우지 않도록 시민들의 요구를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인 정부가 이런 개혁을 추진할 리 없다.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돌봄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촉진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요구하며 담론을 확장하고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마침 '국제 돌봄의 날(10월 29일)'을 맞이해 오늘(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돌봄주간으로 지정하고 토론회, 영화 상영회, 증언대회, 행진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돌봄과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지고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지며 돌봄 개혁으로 한 걸음 가까워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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