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도 더 희생될 수 없다" 남미에도 '강남역 사건' 있었다

#Ni una menos 운동과 아르헨티나의 페미니즘

이 글에서는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면서 최근의 이슈인 "한 여성도 더 희생될 수 없다"(#Ni una menos)운동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에서 1983년까지 극우 군부통치를 겪었다. 이에 저항한 것은 여성이었다. 바로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다. 나이가 많은 그녀들은 현재는 할머니가 되어 손자, 손녀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과거에는 군부독재정권에 의한 강제실종에 항의했지만 최근에는 페미니즘 운동의 시위 현장의 맨 앞줄에서 젊은 여자들과 함께 "임신중절(Aborto)의 합법화"를 외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여성투표권, 독재반대 등 정치적 이슈를 거쳐 집안에서의 여성 폭력 문제 등에 집중하다가 오늘날 임신중절 합법화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인 밀레이는 임신중절(Aborto)에 반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 역사에서 매우 선구적인(첫 번째) 지식인이었던 엘비라 로뻬스(Elvira Lopez, 1871-1956)가 박사학위논문으로 쓴 <아르헨티나의 페미니즘운동>(El Movimiento feminista en Argentina)(2009/1901)을 보면,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프랑스의 푸르동(PROUDHON)은 지독한 안티 페미니스트였음을 알 수 있다. 푸르동은 여러 가지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아예 여자는 영혼이 없다고 까지 생각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정숙한 아내와 어머니가 이상이었다. 19세기 말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외에도 엘비라에 의하면, 19세기 후반인 1880년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정부는 여성이 모든 민사소송에서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고, 1900년에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변호사로서 법정에 올랐다.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에 대한 도라 바랑코스의 설명에 의하면, 1951년에 여성투표권이 인정 되었으며, 특히 여성의 정치적 인정의 이슈에 대해 투쟁하엿다. 이 같은 여성의 권리 신장은 에비타를 중심으로 한 페론주의(Peronismo)의 확장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여성의원들에 대해 최소 30%를 인정하는 법률이 1991년에 통과되었으므로 벌써 약 30년이 되었다.

"한 여성도 더 희생될 수 없다"(#Ni una menos)운동은 2015년 아르헨티나의 어느 여성과 남성이 사귀다가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된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미 전역에서 일어난 #Ni una menos 운동 이미지

2015년 5월 9일에 산타페에서 14세의 치아라 빠에스(Chiara Paez)란 여성이 임신 중이었는데 16세의 남자친구인 마누엘 만시야(Manuel Mansilla)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들불처럼 광범하게 확산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만이 아니었다. 실종된 여성이 반나체로 쓰레기봉투 안에서 스타킹이 입에 물린 채 발견되었다.

여성 폭력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고 인터넷(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투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으로 조직화되고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아주 놀라웠고 거의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참여했고 참여방식도 노래,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했다. 특히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 서명 등의 방식이 활용되었고 이 집단 서명은 관계당국에 제출되었다. 그리하여 #Ni una menos Argentina, Uruguay, Mexico, Ecuador, Peru, Costa Rica 등으로 라틴아메리카로 이후에 유럽 및 전 세계로 널리 퍼져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2008년에는 매 40시간마다 여성 한명이 2014년에는 매 30시간마다 한명이 살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른다.

2015년 6월에 아르헨티나 약 240곳에서 약 40만 명이상의 여성들이 항의시위에 참여했다. 처음 시위는 2015년 6월 3일에 아르헨티나의 약 80곳 도시에서 일어났다. 물리적 거리는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항상 시위가 자주 열리는 의회 앞 광장에서였다. 그리고 피해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등의 반동적 움직임은 오히려 집단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인터넷 이용은 나이가 젊을수록 더 잘하므로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참여가 장려되었다.

오랫동안 국가가 방치하고 응답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여성 살해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젠더 차별도 변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국가에 대한 그녀들의 요구를 제시하는 전략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단순히 분노만이 아니라 여성차별과 폭력이 조금씩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또한 공동 조직 등 연대와 협력이 원활했던 점도 강조할만하다. 우루과이와 칠레 등 이웃나라의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협력도 쉽게 받아들였다. 브라질과 멕시코의 연대도 중요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마치 한 나라처럼 움직인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미국과 무려 57개국의 나라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들이 항의시위를 잘 한다. 그러나 대중의 요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국가기관(정부 당국자)에 문서로 제시하여 시위의 요구를 구체화시켜 제도변화(입법 등)로 나아가는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잘 한다. "한 여성도 더 희생될 수 없다"(#Ni una menosArgentina)운동의 전국적인 성공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공공적 문제의 해결을 길거리에서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는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인 베로니카 가고(Veronica Gago)를 소개하고 싶다. 그녀는 1976년생으로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가이며 정치학자다. 저서 중에 <신자유주의적 이성. 바로크경제와 대중적 실용성>(La razón neoliberal. Economías barrocas y pragmática popular, 2015), <페미니즘의 힘>(La Potencia feminista, 2019)등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완성된, 하나로 정의되는 실재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을 조합하여 시민을 소비자로 획일화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므로 이에 대해 대중이 투쟁하고 갈등을 벌려 그 기획을 깨트려야 한다는 것이 베로니카의 좌파적 관점이다.

베로니카의 상기 저서(2015) 중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언제 대중이 약해지는가? 대중의 요구들이 (…) 흩어질 때다. 이것은 등가적 연쇄의 논리를 약화시킨다. 대중의 해체는 개인적 요구들이 지배체계에 의해 (개별적으로 격파되어) 흡수됨을 말한다. 따라서 그 요구들은 다른 요구들과 함께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 능력이 사라진다. 라클라우가 데카르트주의를 분석하면서 말하길, 대중의 해체를 원하는 "사장"은 "대중"의 위기 덕분에 산다, 즉 대중이 적의 정체성 때문이든 또는 자신의 "글로벌한" 정체성 때문이든 총체화(집합)시키는 능력의 위기를 보일 때 (대중은 해체된다)"(2015, 294).

사자 앞에서 서로 다른 개체인 얼룩말들이 '차이'를 넘어 한데 합치는 능력을 보이면, 아무리 사자라도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를 페미니즘 운동에 적용해 보면, 페미니즘들 사이에서 서로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사회운동들과도 전략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런 연대를 라틴아메리카 대중이 잘 한다는 주장이다. 베로니카는 "한 여성도 더 희생될 수 없다"(#Ni una menos)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참고 문헌

헨리 벨트마이어 & 제임스 페트라스(2012), <라틴아메리카 문제와 전망>, 부산 외대, 이담 북스.

Carlos M. Rama & Angel J. Cappelletti(ed. et.al.), (1990), El Anarquismo en America Latina, Caracas: Biblioteca Ayacucho.

Barrancos, Dora(2014), "Los caminos del feminismo en la Argentina: Historia y Derivas", www. vocesenelfenix.com.

Gago, Veronica(2015), La razón neoliberal. Economías barrocas y pragmática popular, Buenos Aires: Tinta Limón / Traficantes de Sueños.

Korol, Claudia (2002), "La Izquierda Argentina y su larga marcha", Alternativa, no.15, Santiago: ICAL.

Laclau, Ernesto(2005), La razon populista, Buenos Aires: Cfe

Santos, Boaventura De Souza (2016), Epistemologies of the South, New York: Routledge.

Virginia Lopez, Elvira (2009/1901), El Movimiento feminista en Argentina, Buenos Aires: Ediciones Biblioteca Nacional.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