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는 책

[최재천의 책갈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1, 2

몇 번 시도만의 성공인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늘 추천을 했다. 그때마다 구입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놓는 자리에 두곤 했지만 왠지 미루어졌다. 책은 다른 사람 손에 들려있곤 했다. 이번 여름 다시 구입했다. 이번엔 끝냈다. 낮은 수준의 소감은 이렇다. 그래서 다들 그토록 강력하게 이 책을 추천했던 모양이다.

책은 신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든다. 삶과 종교가 한 묶음이다. 로마 시대와 20세기를 종횡무진 교행한다.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뒤섞어버린다. 누가 소설가고 누가 하드리아누스인지 모르겠다. 감동의 경지는 오랜만에 맛보는 미주보다 뛰어나다.

본문만큼이나 의미있는 ‘창작노트’의 한 대목이 작품을 요약한다.

"내(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1927년경 밑줄을 많이 긋고 많이 읽었던 플로베르의 서한집 한 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다시 발견했다 :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는, 이교의 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 인간 홀로 존재했던 유일한 시대였다.' 내 삶의 한 큰 부분이 이 홀로 있는, 하기야 모든 것과 결부되어 있는, 인간을 정의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데 흘러가게 될 것이었다."

이것이 창작의 단서이자 소설의 끝이다. 상상력의 뿌리이고 고증에 근거한 고고학적 복원이다.

한 인간의, 한 시대의 독백이자 철학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회상한다. "나는 단순히, 인간이었기에 신이었다." 그렇다고 반신반인은 아니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은 채 만개하기 전이었고, 그렇다고 유일신이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는 아직 멀었다. 그렇다면 이때의 인간은, 이때의 황제는 어떤 도덕적 좌표를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갔을까. 저 하늘의 별이었을까, 마음속의 도덕률이었을까, 방황이었을까, 혼돈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 또한 자연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마지막은 죽음이어야 한다.

"조그만 나의 영혼,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맞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젠 못하리니, 한순간 더 우리 함께 낯익은 강변들과, 아마도 우리가 이젠 다시 보지 못할 사물들을 둘러보자……. 두 눈을 뜬 채 죽음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자……."

문학과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드린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1, 2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글, 곽광수 번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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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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