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에 한국성이 없어 젊은이들 기피해…거침없이 쓰는 서예 필요"

[인터뷰] 서예가로 돌아와 개인전 여는 송하진 전 전라북도지사

'거침없이 쓴다'라는 주제로 25일부터 10월1일까지 서울 전시에 이어 다음달 11일부터 한달간 전주전을 준비하고 있는 푸른돌·취석(翠石)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

서예가로 ‘돌아온’ 송 전 지사는 퇴임 후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동안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서예에 입문한 뒤 50대 중반까지 중국서예가들의 필법을 따르는 공부를 이어왔다. 이른바 ‘법고(法古)’에 충실한 시간을 보낸 뒤 정치에 나서면서 일반인들 누구나 쉽게 서예를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한국성’이 가득 담긴 예술의 길을 모색하게 됐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서예가 송하진이 부단히 갈고 닦은 ‘한국성이 담긴 서예’의 진면목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자리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전시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송하진 서예가를 전주 현대미술관에서 만나 서예에 대한 생각과 예술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등을 들어보았다.

▲25일부터 서울전시에 이어 다음달 10일부터 전주에서 서예 개인전을 여는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가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공식적인 자리에서 오랜만에 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송하진 서예가(전 전북도지사·이하 송하진) : 2022년 6월말에 재선의 전북도지사를 퇴임한 뒤로 만 2년3개월만인가요? 그동안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로도 사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과 서울시인협회 고문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서예와 시 작업에도 전념했어요.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보다도 더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전시에 대해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거침없이 쓰는 서예’라고 하는데 ‘거침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송하진 : 이번 전시회의 도록을 준비하면서 제목으로 ‘거침없이 쓴다’라고 했더니 처음에 출판사에서 영어로 ‘Write Without Hesitation’이라고 번역을 했더군요.(현재는 ‘Write Without Restrictions’로 번역되어 있다) 아마도 ‘주저 없이 쓴다’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내가 말한 의미는 ‘주저하거나 머뭇거린다’는 뜻이 아니고 ‘규칙이나 법칙, 형식, 틀, 특히 과거의 인습 등에 집착하지 말라, 느낌을 만드는게 예술이니까 쓰라. 막 쓰라’ 이거에요. ‘이렇게 써야 왕희지, 구양순이 맞다가 아니라, 왜 거기에 매몰되느냐. 그냥 막 갈겨라’이걸 말하는 거예요.

▲25일부터 서울전시에 이어 다음달 10일부터 전주에서 서예 개인전을 여는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가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렇다고 마냥 쓴다고해서 거침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송하진 : 당연하지요. 법고(法古)의 과정까지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예학원에 가면 구양순체부터 가르치는데 이게 굉장히 힘이 듭니다. 한 3년을 다녔는데 맨날 그것만 쓰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조금 비뚤어져도 내가 내 글씨를 써야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법고까지의 과정을 나는 강조하지만, 아직 안 됐어도 창작도 하게 만들고 조금 어설퍼도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도전하게 하는게 좋다는 겁니다.

글 중에 추사 김정희선생이 남긴 판전(板殿)이 있는데 추사선생이 작고하기 사흘 전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근데 거기에 무슨 미적감각이 있었겠습니까. 그냥 빈 마음으로 썼기 때문에 그 글씨가 아무 욕심이나 꾸밈없이 일부러 강조하지도 않은 모습을 갖춘 것이지요. 그 또한 ‘거침없이 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한국성이라는 말을 자주 강조시던데요.

송하진 : ‘한국성’이라는 것은 결국 한국적 냄새, 분위기, 색깔, 느낌, 맛, 멋이 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의 궁궐을 묘사한 부분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성을 대표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미술의 경향인데 그 말이 왜 나왔느냐하면 궁궐을 지을 때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담백하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는 않은 ‘맑고 트였다’는 것으로 한국성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회화에서도 옛날에 안견이나 김홍도의 작품을 보면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우리네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예도 담백함 속에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형태로 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죠. 다만 학술적으로 ‘한국성’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논쟁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5일부터 서울전시에 이어 다음달 10일부터 전주에서 서예 개인전을 여는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가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한글이 주인이 되는 서예란 어떤 것입니까.

송하진 : 말 그대로 서예에서 한글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전통서예를 하시는 분들은 약간은 삐딱하게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서예는 문자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문자도 서예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한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서예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한문 위주의 ‘중국식 서예’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맛이 나게 하려면 우선은 한글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한문을 쓰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못 읽게 되지만 한글은 우리말이니까 젊은이들이 많이 알아봅니다.

거침없이 쓰는 서예, 한글이 주인이 되는 서예, 그리고 오른쪽으로 쓰는 서예, 한국성을 갖춘 서예로 발전해야지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서예는 계속 움츠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전시는 ‘송하진은 글씨를 잘 씁니다’하는 전시가 아니에요.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서예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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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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