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향신료 전쟁'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최재천의 책갈피] <향신료 전쟁> 최광용 글, 한겨레출판사

어린 시절 세계사를 배울 때 '지리상의 발견' 대목에서 '정향'이나 '육두구' 같은 향신료 이름을 처음 만났다. 한번도 맛본 적이 없는 고약한 한자 이름으로 된 향신료를 기억하기란 난해했다.

지리상의 발견은 둘로 나뉘어져 있던 지구를 하나로 연결했다. 비로소 지구가 하나가 됐다. 철도가 상징하는 산업 혁명은 인간을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게, 공간을 넘나들게 만들었다. 인터넷은 24시간이라는, 지구의 자전이 가져오는 시차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시절 배웠던 교과서 내용이 톡톡 튀어나온다. 지리상의 발견이 인간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꾸만 되새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리상의 발견은 제국 전쟁이요, 향신료 전쟁이요, 포교 전쟁이었다.

요 몇 년 들어 큰 아이 덕분에 향신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뚜껑을 열어 냄새도 확인해보고 맛도 기억하려 애도 써본다.

1980년대 초 스리랑카 지사로 발령받은 이래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향신료의 역사와 매력에 빠진 최광용 선생이 <향신료 전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렇게 정리해준 게 고맙고 '독립연구자'라는게 마음에 든다.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는 자유무역주의자였다. 당시 영국은 경쟁 가능한 아일랜드 상품의 수출을 법으로 막고 있었다. 버크의 논리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얼마든지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세계는 모두가 무역을 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넓은 시장에 합당한 넓은 아량을 베풀자."

이런 버크의 논리가 미중 양국의 패권 전쟁, 경제 전쟁에 의해, 혹은 중국 시진핑 주석의 패권주의에 의해 국제정치적으로 변용된다. 지구가 다시 둘로 쪼개지고 있다.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 2012년 2월 당시 시 부주석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이다.

"태평양은 매우 커 중미 양국을 다 담을 수 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했던 말이다.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했던 말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역사가 반복되는게 아니라 인간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일까. 요즘 시대가 결국은 '지리상의 발견' 시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향신료 전쟁> 최광용 글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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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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