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훈도 지정학적 여건도 깡그리 무시한 윤석열의 '통일 전략'

[기고] 무식한 게 아니고 무지한 게 옳을지 모른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광복절 축사에서 제시한 통일방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74년 전 10월 1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채택하고 실천했던 것이다. 국제법의 원칙은 침략을 당한 나라는 침략군을 영토 밖으로 몰아내고 나면 거기서 전쟁을 멈춘다. 제1차 걸프전쟁에서 보았던 것처럼.

6.25 전쟁에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던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군을 쫓아 가다가 38선에서 진격을 멈추려고 했다. 한반도 전체의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이승만은 대한민국 육군에게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이종찬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민국 육군 제3사단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북진했다. 유엔군은 할 수 없이 따라서 북상했고, 중공군의 참전을 불러왔고, 초산에서 대패하고 38선 부근까지 후퇴했다. 그리고 2년 넘는 휴전협상 기간 동안 중부전선에서 밀고 당기며 진행된 전투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사망했다. 한국전쟁에서 1950년 6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사이에 사망한 군인들 숫자와 그날 이후에 사망한 군인들 숫자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통계를 확인해 보고싶다.

유엔군사령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군에게 38선을 돌파를 명령한 이승만 대통령의 뜻도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한반도를 통일하자는 것이었다. 김일성도 한반도 통일에는 뜻이 같았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뿐이다.

신냉전시대로 불리는 지금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1950년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북중러 연대와 한미일 연대가 대치하고 있다. 한미일 연대에는 나토가 가담하고 있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련과 중국은 한미일 연대가 북한지역을 장악하고 두 나라와 접경하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나토 가맹국가와 접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것에서 우리는 그 증거를 보고 있다.

상황이 1950년과 달라진 것이 하나있다. 북한이 통일을 포기한 것이다. 광복이래 남북한 정치인이 내놓은 한반도 정책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역사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한 최초의 정치인이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이 통일을 포기할 때만 성립한다. 완전히 포기한다고 하기는 좀 아쉬우면 약 500년 정도 미루는 것도 괜찮다. 이 지구 상에서 사회주의 단일정당 체제 국가와 다당제 의회민주주의 체제 국가의 정치와 제도의 차이가 소멸되는 데 그 정도 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될 때까지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나라가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길은 없다. 통일노력은 전쟁을 수반할 수 밖에 없고, 평화유지는 두 나라의 공존 상태를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통일이나 공존이냐는 전쟁과 평화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하는 문제다.

지금 한반도에서 통일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매년 몇 차례씩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고, 북한 내부 붕괴 시에는 신속하게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소위 '참수작전'이라는 것을 침공계획을 세워놓고 실행연습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전에 북한과 소련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는 협정을 체결한 것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와 언론은 마치 북한과 소련이 대한민국을 침략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것은 동반자관계다. 김정은이 아무리 그것이 동맹에 준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푸틴은 냉정하게 동반자 관계인 것을 분명히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7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있다. 동반자관계보다 더 높은 단계의 협력관계다. 거기에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부대를 영토 내에 두고 있고, 앞서 말한 것처럼 해마다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그 훈련 내용에는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작전이 포함되어 있다.

인접한 두 나라, 각기 상대방의 영토로 자국 군대를 진격시킨 경력이 있는 두 나라 중에, 한 나라는 세계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세계 6위의 자체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군사훈련을 하고 있고, 상대방 지도부를 제거할 군사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을 연습하고 있고, 두 나라가 자기 나라의 체제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다른 한 나라는 통일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있고, 침공에 필요한 도로를 파괴하고, 군대가 진격할 통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장벽을 세우고 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제3자가 판단한다면 지금 한반도에서 침략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라고 말하겠는가? 대한민국이겠는가, 북한이겠는가?

북한은 대한민국을 침략했지만, 대한민국은 북한을 침략한 적이 없다는 입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위에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상황이 될 때만 침공하겠다고, 침공계획을 합리화하고 있다. 돼지 얼굴에 립스틱을 바르는 격이다.

어떤 상황이 정권이 붕괴하는 상황인가? 대한민국에서는 건국이래 정권이 붕괴하는 사태가 여러 번 일어났다. 4.19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휴전선까지 비워놓고 자국 군대끼리 싸웠던 12.12 때. 그런 때 북한군이 대한민국 지도부를 제거하고,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수립하겠다고 남침했더라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환영했을까?

북한이라고 다르겠는가? 혹시 내부에 정변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북한 국민들이 할 일이다. 그 틈을 타서 대한민국 국군이 북진을 하면 북한 주민들이 두 손을 들고 나와서 환영할까? 북한군은 모두 항복하고? 그건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정책을 세우는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환상이고 망상이다. 현실은 그런 상황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 영토로 진격하면 누구라도 나와서 정권을 장악하고, 온 군대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게 된다. 대한민국 군대의 북한 영토 진입은 그 나라에 새로운 독재자가 나타나는 것을 도와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대북심리전을 실행하고 있다. 확성기를 통해서 북한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수행 활동이다. 보수언론의 방송에서도 '대북심리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심리전도 전쟁의 일환이라면 대한민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휴전협정 위반이거나, 휴전 상태를 종식하고 전쟁을 재개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북한 내부붕괴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탈북민 풍선날리기 방조, 대북 확성기 방송이다. 이 불장난이 확대되어서 전면전으로 발생하면 대한민국에서는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북한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시킬 수 있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침 의사가 없다는 뜻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남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한반도에는 두 나라가 병존하고 있는 상태라는 선언을 하고, 통일이라는 정책 목표를 폐기하고, 남침시에 긴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남북연결 철도와 도로를 단절하고, 남침할 때 군대가 진격할 통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방벽을 세우는 등의 행동은 남침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 북한의 평화공존 제안과 대한민국의 북진통일 정책 중에 어느 것이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지금 한반도에 살고있는 우리 민족의 안전과 평화와 발전과 행복에 바람직한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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