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단독처리→거부권 행사…그들이 사생결단 하는 까닭

[최창렬 칼럼]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자화상들

여야의 기약 없는 쟁투는 이미 건강한 여야의 긴장, 반대가 아니다. 지방선거는 2년, 대선은 아직도 3년 가까이 남았는데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검투장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적대를 넘는 적개, 상습화된 반목, 일상이 된 인신공격과 매도가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의 허울을 쓴 사적이익 탐닉의 장(場)에 다름 아니다. 정치에는 최소한의 금도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질이 낮다고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래도 타협이 있었고 배려도 있었다.

'적과의 동침'이 살아있었던 게 한국정치다. 상호관용과 존중이라는 거창한 원칙이 아니더라도, 제도의 자제와 상호 배려의 규범을 준수하자는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정치를 운용하는 상도(常道)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러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야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한국정치의 공식이 이제 편하고 안온하게 느껴질 뿐이다.

상대에 대한 극한의 발언과 극단적 인식을 드러내는 게 공천에도 유리하고 언론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 품격 있는 발언은 짐이 될 뿐이다. 국회의원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구조가 되고 전설이 된 한국정치이기 때문이다.

적대 정치가 국회의원 개개인의 안위에 별 영향도 주지 않는다. 당 지도부에 잘 보이고 지역구에 부지런히 얼굴 알리면 될 일이다. 역사의식과 이래선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 따위는 별로 득이 되지 않는다. 강성 지지층에게 욕만 먹고 문자폭탄 받기 일쑤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수와 각종 특혜, 9명의 비서들, 보장된 4년 임기.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상층으로 발돋움한다. 이쯤되면 국회의원은 사생결단하고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라디오, TV, 유튜브, SNS 등 자신을 알릴 무수히 많은 매체들을 통하여 특정 정파에 대해 가시 돋친 독설과 저급한 엽기적 발언을 하면 주목을 받고, 또 그래서 방송 섭외 1순위가 된다. 좋든 나쁘든 인지도가 치솟고, 선거 때가 되면 특정 정파의 '인재영입 1순위'가 된다. 지역구가 아니라도 비례대표라는 안락한 자리가 기다린다.

배지를 달면 보은해야 한다. 원내 입성 전에는 나름 품격을 갖췄던 인사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울리지 않는 비난과 혐오를 쏟아낸다. 그러다 정치 입문 한 달 만에 일약 지도부가 될 수도 있다. 강성 지지층이 주목하기 때문이다.

나름 염치와 양식이 있어서 극단적 발언은 삼가고, 논리와 합리, 이성과 품위를 갖추려하면 여지없이 뒷방 신세가 된다. 중도층은 없다. 양극단에 위치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다.

이슈는 수도 없이 쏟아진다. 이 중 얼마나 시민의 생활과 관련이 있을까. 이를 위해 그 많은 세비를 받고 9명의 보좌를 받는 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 좋은 의원회관에서 4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반정치'를 강화시킨다. 그 베이스캠프가 여의도에 똬리 틀고 있다. 매일이 바쁘다. 각자의 인생과 삶을 위해 모두는 바쁘다. 그러나 선출된 자들은 조금은 공적인 업무로 바쁘고 고민해야 한다.

사법리스크, 해병대원 순직 사건 외압 의혹과 특검, 여사 특검, 여당 대표 특검, 방송관련법 들. 하나같이 사활적(fatal)이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당사자들이 아닌 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자신의 충성과 실력을 보일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민생은 어차피 이들에게 영역 밖이다. 민생을 논하고 자기성찰을 보이면 오히려 차기 공천이 위험해 질 수 있는 역설이 작동하는 게 한국정치 아니었던가.

독재 대 반독재의 권위주의 시절 때도 이러진 않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가. 여당과 협의 없는 야당 단독 법안 통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양당의 비난 성명, 그리도 국회 재표결, 다시 부결. 전범(典範)이 되다시피 한 '정치'라고 일컫는 행태의 작위들.

누군가는 이 고리를 끊는 과감한 행동과 선언을 해야 한다. 자기를 버리는 자가 이긴다. 이순신 장군의 말이다. 장부생세 용즉효사이충 불용즉 경야족의 약미요인 절부영 오치야(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 若媚要人 竊浮榮 吾恥也. 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임을 받으면 충성을 다 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를 지어도 족하다. 만약 힘 있는 자에게 아부하여 뜬 영화를 탐낸다면 부끄러울 뿐이다).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 4법'인 교육방송공사법(EBS법) 개정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 된 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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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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