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틀 노래가 사라져 간다

[음악의 쓸모] 방송 심의, 이제는 바꿔야 할 때

"PD님, 이 곡들 방송 가능한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한 곡만 틀 수 있을 것 같네요.ㅠ"

출연하고 있는 방송사 PD와의 대화 내용이다. 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대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여섯 곡 문의하면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방송에서 틀 수 없다. 방송사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아예 심의를 넣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원래 계획했던 노래 가운데 한 곡도 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틀고 싶었던 노래가 방송사 DB에 없으면 결국 차선을 택하게 되고, 그마저도 안 되면 차차선, 차차차선까지 갈 때도 있다. 위와 같은 대화를 반복해 주고받으면 서로 민망하고 아쉬워진다.

노래를 발표하려면 정부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사가 불량하다고, 퇴폐적이라고, 반사회적이라고 불허하면 노래를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당연히 창작자의 세계는 제한됐고 위축됐다. 1996년, 정태춘의 외롭고 지난한 싸움 끝에 음반 사전 심의 제도는 사라졌다. 외로웠던 이유는 정태춘의 편에 선 음악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하는 음악인도 있었고, 오히려 "너 이상한 노래하려는 거잖아?"라며 핀잔을 주는 선배 음악인도 있었다. 세상에서 고립되는 기분이었다고 훗날 그는 말했다.

정태춘은 자신의 일곱 번째 앨범 [아, 대한민국](1990)을 당시 문화공보부 산하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제작했다. 음반은 카세트테이프로만 제작해 음반점이 아닌 대학가와 각종 시위 현장에서 판매했다. 2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현행법에 정태춘은 위헌법률심판제청으로 맞섰다. 말도 못 하는 고립감 속에서 그는 싸웠고, 그 고독한 투쟁 끝에 사전 심의 제도는 철폐됐다. 수많은 음악인이 혜택을 본 것은 물론이다. 표현은 자유로워졌고,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전심의 철폐와 맞물려 한국의 인디 씬이 형성된 건 상징적이다.

하지만 방송사 심의는 남았다. 노래는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방송을 통해 알리기 위해선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방송사의 심의가 없어져야 한다는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심의 기준을 두고 논쟁할 순 있어도 나 역시 욕설이나 심한 표현이 담긴 노래가 방송에서 나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 물론 심의하는 위원들의 연령대가 높고, 보수화돼 있고, 누가 심의를 하느냐에 따라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방송사 심의는 필요하다. 각 방송사는 자체 심의 규정을 두고 방송에서 틀 수 있는 노래들을 걸러낸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심의 방식이다. 인디 레이블 대표 A는 레이블에서 새 음반이 나오면 음반을 들고 '지금까지는' 방송사 심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직접 방송사를 돌았지만, 지금은 이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생겨났다. 그가 직접 심의를 받으러 다닐 때는 CD 몇 장과 출력한 가사지, 심의 신청서, 영어 가사일 경우엔 이를 번역한 가사지를 추가로 준비해야 했다. 이 준비물을 준비하는 품과 방송사를 오가는 시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앞서 심의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생겼다는 건 이 일이 그만큼 번거롭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정도 수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디 음악인의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대중음악 환경과 직결돼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디 음악인 B는 '채산성'이란 표현을 썼다. 방송사 심의를 받는 건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데, 그런 수고를 한다고 해서 방송사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트는 경우는 아예 없거나 지극히 적을 것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K팝과 발라드, 트로트 정도를 빼고는 다양성이란 게 사라진 방송사의 지금 모습을 꼬집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한두 번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방송사의 힘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방증이며 지금 방송사를 바라보고 있는 인디 음악인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손해를 보는 건 전부다. 이득을 보는 건 (대행사 정도를 빼고는) 아무도 없다. 방송사의 입장에선 틀 수 있는 노래가 적어진다. 심의를 신청하는 음악인 수는 점점 적어지고 있다. 거대 방송사야 알 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다양한 노래를 틀고 싶은 PD 입장에선 답답해진다. 음악인의 입장에선 적은 수일지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노래가 들릴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 '그러면 심의를 받아'란 쉬운 말은 다시 도돌이표가 된다. 나 같은 초대손님 입장에서도 답답할 뿐이다. '음악전문가' 자격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지만,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매번 PD와 맨 처음 대화를 반복해야 한다.

이 주제는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난 K팝 일변도의 방송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이 방송에서 들리길 원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성'이라는 나의 바람은 심의를 받는 구조에서부터 막혀버린다. 원고를 쓰기 전에 음악인과도, 레이블 대표와도, 방송사 PD와도 얘기해 봤다. 누구도 방송사 심의를 없애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심의 방식에 고민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 레이블 대표나 나는 심의 방식을 온라인으로 바꾸면 훨씬 더 간단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PD는 방송사 입장에서 과부하의 우려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처럼 각자의 입장이 있지만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에선 공감했다. 방송사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심의는 존재했을 것이다. 작은 변화는 있었겠지만 큰 틀에선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변화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1980년대엔 당연하게 생각했을, 가사를 출력하고 방송사를 직접 찾아가 접수하는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2024년의 대한민국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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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2000년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음악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겨레신문 대중음악 전문 객원기자로 일했고,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과 멜론 <트랙제로> 전문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글 쓰고 말하고 있습니다. <케이팝 세계를 홀리다>를 썼고,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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