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것으로 보았다' 그 변명의 한마디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재판부 "국가는 1000만 원 지급하라…해경 지휘부 고의성·중과실 인정 안 돼"

"씹다 뱉은 껌 다시 씹는 기분이에요. 또 누군가는 발을 뻗고 자겠네요."

세월호 참사 당시 '익수자'로 발견돼 응급처치까지 받았지만 이송 과정에서 숨진 고(故)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는 김석기 전 해양경찰청장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선고된 뒤 "뭔가 애매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씨는 법정에서 기자회견 장소까지 5분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재판부가) 그냥 내치기에는 그렇고, 그렇다고 뭔가를 주기에는 좀 미흡한 것 같고(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1단독 김덕수 판사는 10일 임 군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들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전 해경청장,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등 당시 해경 지휘부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해경 공무원들)의 과실이 인정돼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되 각 공무원들의 고의와 중과실은 인정되지 않아서 개인들에 대한 청구는 기각하는 취지"라며 "전체적으로는 이송 지연에 따른 책임을 일부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 변호인인 오민애 변호사(민변 세월호 대응 TF)는 선고 직후 <프레시안>에 "국가 공무원이 뭘 잘못해서 국가의 책임을 물을 때 (또) 국가한테 묻는 것 이상으로 개인한테 묻기 위해서는 그걸 공무원이 고의로 했거나 아니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안 했을, 그런 고의와 중과실이 인정돼야 한다"며 "그런데 (재판부가)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조 방기에 대한) 잘못 자체는 인정했는데 그게 고의와 중과실까지 볼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했는지는 판결문을 봐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 MBC <뉴스데스크> 2019년 11월 21일 자 '[단독 기획] 세월호 구조학생…헬기 못 태워 놓친 '골든타임'' 영상 갈무리.

전 씨는 선고 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익수자로 발견되었던 임경빈 환자, 아들이 왜 발견 당시에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았는지 아니 못했는지, 왜 부모에게 인도해 주지 않았는지를 그날의 이야기를 밝히는 자들이 없었다"며 "아들이 어떤 상황이었든 병원으로 이송했어야 할 중요한 시간을 장작 4시간 41분이나 허비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민사로라도 아들이 겪은 불합리한 상황을 밝혀보려 시작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참사 초기부터 사체 검안서라는 서류 2장을 가지고 안산으로 올라올 때 아들에 관한 기록도 사진도 아무것도 없다 하고, 참사 당일 진도 119 구급차, 목포 해양경찰청, 목포 한국병원을 쫓아다녀 봐도 그 누구도 정황을 알려주거나 제대로 된 기록을 주는 이가 없었다"며 "아이의 마지막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창자가 꼬여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오로지 내 아들 경빈이의 억울함만이라도 좀 풀어줘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전 씨는 특히 "헬기를 태우고 갔으면 17분, 아니 늦더라도 33분이면 나올 수 있었던 거리를 (해경 및 구조 책임자들은) 왜 그렇게 허비했는지 모르겠다"며 "저들이 고집했던, 밝혀지지 않고 있는, 그리고 '사망한 것으로 보았다'라는 그 변명의 한마디, 그 변명의 한마디를 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전 씨는 "참사의 피해자분들과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족들, 그리고 내 아이 임경빈을 위해 책임이 밝혀지고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갈 것"이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겠다. 진상규명이 되고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서 절대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이 길에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 군은 참사 당시 세월호가 선수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 지 7시간이 지난 오후 5시 40분쯤 사고 해역을 수색하던 해경 단정에 의해 맥박이 있는 채로 발견됐다. 임 군은 현장 지휘함으로 인계돼 해경 응급구조사에게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받았으며, 기록에 의하면 이때 임 군의 산소포화도는 69%, 맥박은 48이었다.

임 군이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지휘함에는 헬기가 두 차례 착륙했지만, 김석기 해경청장과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등 지휘부만 탑승한 채 이동했다. 당시 해경 통신에는 '헬기가 오니 준비해 주기 바란다'며 임 군을 헬기 이착륙장이 있는 함정 뒤편으로 이동시켰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임 군은 끝내 헬기를 타지 못했다. 임 군을 헬기로 이송시켜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가 묵살된 것이다.

이후 임 군은 세 차례에 걸쳐 다른 경비정으로 옮겨졌으며, 발견된 시각으로부터 4시간 41분이 흐른 밤 10시 5분쯤 목포한국병원 응급실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 발생 5년 6개월 만인 2019년 10월 29일 임 군의 사망 경위와 관련, 원격진료시스템을 통해 의사로부터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며 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지시받고도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헬기가 아닌 함정으로 이송해 임 군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한편, 참사 당시 초동 대응조치 미흡으로 승객 304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로 기소된 김 전 청장과 전·현직 해경 관계자들은 지난해 2월 7일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별건 혐의로 추가 기소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 전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함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각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유지됐다.

▲ 6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주최로 열린 고 임경빈 군 구조 방기 손해배상 판결 관련 피해 가족과 시민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임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가 판결과 관련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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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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