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원래 대문자 'Diaspora'를 써서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산(離散)'을 뜻하는 단어였다가 점차 다른 민족들의 이산, 망명, 이주, 난민 등을 나타내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소문자 'diaspora'를 쓴다.
한반도 사람들의 초기 디아스포라 중 잘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반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던 무렵 하와이로 증기선을 타고 건너간 1세대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타국의 어려운 생활과 극심한 노동착취 속에서도 십시일반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슬프고도 감동적인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인의 디아스포라는 이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세계 700만 재외한인 이주의 역사적 모태가 된 것은 빈궁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극동지역으로 건너가 황무지였던 연해주를 개척하고 한인 정착촌을 건설한 조선인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1850년대에 이미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러시아 극동지역과 시베리아지역으로 들어간 조선인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공식적으로 조선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 말, 양력으로 1864년 초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고, 2024년은 러시아 이주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 이주 160주년은 곧 한민족의 이주사 160주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올해 러시아와 한국에서는 고려인 및 한인 이주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추진위 발대식이 열렸고, 9월에 한국의 충청남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기념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구소련 한인과 세계 한인단체가 함께 모이는 기념행사의 주제는 <글로벌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유라시아 평화와 협력>이다.
구소련의 한인 – 고려사람(고려인)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극동러시아 고려인, 유럽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고려인, 사할린 한인(일제의 강제징용으로 거주하게 된 한인으로 다른 고려인들과 역사의 궤를 조금 달리한다.), 발트삼국, 몰도바 등 희소국가군으로 분류되는 고려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흉년과 기근, 정치·사회적 혼란, 조선 강점을 노리는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반감 등은 조선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인들도 손을 놓고 있었던 미개척지 극동지역으로 월경하여 새롭게 정착하도록 했다.
초반 러시아 정부의 호의적인 태도와 일련의 지원정책이 소문나자 이후 조선 이북지역 뿐만 아니라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등에서도 점차 많은 조선인들이 극동지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는 독립운동에 뜻을 둔 사람들까지 모여 한인 이주가 급증하여 1917년 이후 그 숫자가 10만 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혹독한 기후와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지만 점차 연해주를 중심으로 개척하며 나름의 한인정착촌 건설에 성공하게 된 이주민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 아닌 '고려사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에 짓밟혀 무너진 조국의 이름으로 남겨지고 싶지 않았고, 일본에 짓밟혔던 경험이 없는 고려의 이름을 취함으로써 고구려와 발해의 기상이 살아있는 당당한 민족으로 불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인들이 개척하지 못했던 땅을 개간하여 농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러시아인과 조화롭게 살아갔고,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군에 입대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한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제정러시아 시절 <국민을 위한 총서>에도 소개되었을 정도다.
소련이 성립되자 고려인 중 일부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던 소련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탈린 정권 하에서 많은 한인들이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고,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하던 한인들이 숙청됐다.
나아가 소련정부는 17만 2000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으며 이런 상황에서 많은 한인들이 추가로 희생됐다. 현재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이들의 후손인 셈이다.
당시 뛰어난 농업기술과 근면성실함으로 개척해 낸 오지의 미개간지를 러시아인이 차지하고 다시 새로운 미개간지를 개척하기 위한 저의를 가지고 소련이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을 편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있으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와중에 간도참변 이후 러시아로 망명하여 독립의 기회를 노리던 홍범도 장군의 비극적 운명이 잔혹하고 슬픈 한인 역사와 맞물린다. 이후 성립된 소련에 대한 협력을 통해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이루려던 홍범도 장군의 열망은 소련의 배신으로 무위로 돌아가고 6000여km나 떨어진 카자흐스탄에 강제 이주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조국의 광복을 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홍범도 장군의 원한 맺힌 유해는 78년의 세월을 지나 2021년 그의 유언대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광복 이후에도 구소련 지역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고려인의 삶은 분명 엄혹한 것이었으나 특유의 능동성으로 점차 성공적으로 타국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160년이 흘렀다.
중국의 한인 - 조선족
고려인과 달리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1860~70년대 재해와 흉년을 피해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조선인들이었고, 이후 동양척식회사 등을 통한 일제의 수탈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부 지역에 정착하면서 꽤 규모가 큰 한인사회가 성립된 것이 중국 조선족의 시작이자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한 갈래이다. 이후 간도와 만주, 상해 등의 지역은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중국 땅에 남은 조선족은 민족자결권 인정을 선언한 중국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소수민족으로서의 안정적 지위를 보장 받는데 성공한다. 중국의 국민이되 뿌리를 둔 민족 전통문화와 관습을 굳건히 지켜내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현대 고려인과 조선족 그리고 한국
1990년대 한국과의 수교이후 고려인과 조선족은 북한과는 또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동족'과 조우하게 되었다. 비록 뿌리는 다 같은 한반도이지만 교류 없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서 속에 살아온 긴 세월은 한국인과 고려인, 조선족의 서로 다른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은 구소련 국가의 정·재계와 학계, 의료계 등 주류사회에 안정적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 자부심이 강하고, 한국계 러시아인/중앙아시아인으로 한반도를 '역사적 조국'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이 곧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경제적 성공을 거뒀다며 구소련 국가들에 입성한 한국정부에 경제적 의존과 지원을 바라면서 동시에 한국인을 경쟁적 대상이자 질투 혹은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한-소 수교 초반 고려인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는 부분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고려인 1세대와 그 가족을 한국으로 영구 귀국시키는 한국정부의 지원정책, 구소련 국가에서 갈수록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한국의 소프트파워 '한류'의 영향을 받으면서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에 대한 동경과 친밀감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인 특유의 자부심, 한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정서가 빠른 시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조선족은 조금 더 심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공산주의체제 하에서 철저한 중국국민으로 살아온 조선족은 민족 내 지식인 그룹 사이에 "중국 조선족은 디아스포라가 아니며 한반도 국민과 무관한 100%의 조선족이자 중국 국민일 뿐"이라는 의견과 "조선족은 한족을 비롯한 중국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는 이중적 정체성을 가지며, 문화적, 역사적 뿌리를 알아가는 민족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진핑 정부가 한족을 중심으로 소수민족 통합을 정당화하기 위해 2018년 헌법에 삽입한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조선족이 한국계라는 이점을 통해 합법적·비합법적으로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
고려인과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30년 간 지속되었고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았지만 이들이 한국사회에 완전히 녹아들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지만, 보다 어린 세대에게 기대를 걸어보면 어떨까.
외국인 거주자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2019년 국내 거주 외국인은 전체 인구 대비 5.6%를 점유했다. 202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 신혼부부 열 쌍 중 한 쌍 이상이 다문화 가정을 이룬다고 한다.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세계적 추세이고, 국제교류와 노동력 부족 현상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계선 밖에 서 있는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사회, 정서에 흡수될 수 있는 보다 포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지원정책과 우리 국민들의 전반적 인식개선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고려인 이주 160주년을 맞아 한국과 러시아에서 재외한인 전체를 아우르는 여러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마침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문화강국으로써 한국의 인지도를 제고하는 한류 붐이 지속되고 있는 시대이다. 타문화에 대한 동경,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적, 인적 교류는 인간의 연대와 친밀함을 쉽게 불러온다.
물질적 지원에서 나아가 문화라는 소프트파워와 함께 정체성 교육, 민족역사 교육 등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시간이 필요할 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모든 재외한인은 3000만 화교, 800만 명의 재외 유대인이 모두 중국와 이스라엘의 강력한 힘이 되고 있는 것처럼, 고려인과 조선족 역시 대한민국의 또 다른 경계선의 확장이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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