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119년만에 복원…24일 개관식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던 수원 화성행궁이 119년 만에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됐다.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복원사업이 완료되면서 1989년 시작된 화성행궁복원사업이 35년 만에 마무리됐다.

이에 수원시는 오는 24일 화성행궁우화관 바깥마당에서 '수원 화성행궁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을 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이재준 시장이 화령전 운한각에서 정조대왕에게 화성행궁 개관을 고하는 고유제로 시작해 인사말, 우화관 현판 제막식, 복원된 시설 관람 등으로 이어진다.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수원시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 자리(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1789년(정조 13년) 화성행궁을 건립했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가 임금이 수원에 행차할 때는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궁실(宮室)로 이용됐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신도시 수원화성의 행정을 도맡았던 관청이자 화성유수부를 굳건하게 지킨 장용영 군사들의 군영이었다. 수원화성 축조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화성행궁은 약 600칸 규모로 정궁(正宮) 형태다. 정조가 훗날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머물고자 만들었기에 화성행궁 규모와 격식이 궁궐에 버금간다.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최대 규모다.

19세기 말까지 궁실이자 관청으로 제 기능을 했던 화성행궁은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1911년에는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은 경찰서로 사용했다. 1923년 일제가 화성행궁 일원을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하면서 화성행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989년 10월 '수원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이 위원회의 노력으로 경기도립병원은 철거되고 화성행궁복원사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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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경기인천취재본부 박진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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