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산업·업종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초록發光] 연결 사회에서 분절된 대응?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얼핏 나만의 독립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타인, 사회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삶은 타인의 노동 없이는 영위되기 어렵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일하는 곳(사무실, 공장, 도로 곳곳), 이동을 위해 사용하는 대중교통 혹은 자동차, 식당에서 구매하는 음식들, 상점에서 구매하는 식료품과 옷가지, 소통을 위한 통신 등 모든 것은 타인의 노동 없이 내가 사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만 자연과도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 필요한 원료와 연료는 모두 자연에서 확보되는 것들이고, 그 시효를 다해 폐기되는 쓰레기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각 가정에서 버리는 비닐과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는 물론 기업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포함한 각종 대기오염물질과 폐수·폐기물들이 돌아갈 곳은 결국 자연이다. 이 쓰레기들이 축적된 자연은 또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혹한, 폭우, 폭설, 가뭄, 산불, 그리고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재난은 인간과 자연 간의 선순환적인 연결이 깨진 결과이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일정한 시간을 특정 기업(들)을 위해 일을 한다. 나의 일은 일한 만큼의 임금(보수)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품이 유통되고 사용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자연에 위해가 되는 온실가스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생산-소비-폐기는 연결된 하나의 사이클이다. 광업, 제조업, 서비스업, 운수업, 유통업 등 각종 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그것이 자연에 끼치는 위험은 개인 실천 차원에서 1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종이 타올 대신 손수건을 이용하는 노력으로만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위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의 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하다.

'생산의 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연결된 것만큼이나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산업과 산업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산업을 보자.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업체들은 가솔린이나 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생산을 줄이고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구동 원리의 변화만으로 친환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철강업체로부터 철강을 납품받아야 하는데, 이 철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생산된 철강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자동차업체에 기초소재를 납품하는 석유화학업체의 생산과정과 생산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발전산업은 이들 모든 산업의 생산과 생산품의 활용 과정에 핵심 전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교통 문제와 맞물린다. 전기차 운행 과정에서는 내연기관차만큼의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많은 전기 수요는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마구 쏟아진 전기차로 도로가 꽉 찬다면, 또한 사적 교통수단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권이 제약된다면, 그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은 하나의 기업, 하나의 산업 안에서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적인 기업별 노사관계와 노동배제적 경영 관행은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노·사 모두의 시야를 '기업 안'으로 가두고, 주요 의사결정은 경영진들만의 테이블로 제한시킨다. 이는 노동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나서는 것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이와 결부된 노동 전환을 지체시킨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 재구성

정부는 4.10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을 반영하여 기존의 정책 기조를 수정·집행하여야 하는데, 그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를 재정비하는 것을 특히 우선순위로 잡아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정부의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로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둔다고 하였다. 이 위원회는 정부 부처 장관과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하여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같은 법에서 정한 기본원칙(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 과정에서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은 축소되었고, 특히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재구성하는 일은 비단 본위원회 구성의 민주성 확보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 계획과 그 시행은 전국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산업·업종수준에서도, 지역 수준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의제는 산업·노동·사회·지역정책 모두를 포괄하고 있고, 관할 범위는 전국과 지역, 산업·업종과 기업 등으로 중층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자 박태주·이정희는 2022년 펴낸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아래 그림과 같은 중층적 거버넌스의 상을 제시한 바 있다. 본위원회 산하에 업종별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그 업종별위원회에서 지자체(광역·기초) 수준의 사회적 대화와 산업·업종별(필요한 경우 기업 차원의) 단체교섭과 경영 참여를 관할하는 것을 말한다.

마침 4월 25일부터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이 법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기존 산업의 침체 및 실업 등 일자리 위험에 대응하여 선제적으로 근로자의 고용안정, 일자리 이동 및 노동 전환을 지원함으로써 산업전환으로 인한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과 노동 전환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산업전환인가에 대한 논의 없이 노동전환을 지원한다는 것은 한편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참여를 통해 어떤 전환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수준의 종합적인 거버넌스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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