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중심의 무역보호주의 확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무역 상대국 다변화, 외교채널 확보 등 지렛대 마련해야

미 무역대표부(USTR)가 3월 29일 2024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 NTE)'를 발표했다. 본 보고서는 미국의 통상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각 국가의 분야별 정책을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있어 일종의 경고성 보고서라 할 수 있다.

미국과 깊은 통상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이나 중국은 특히 이 보고서의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무역장벽 보고서는 중국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이는 디지털 분야에 있어 미국의 통상정책에 뚜렷한 변화를 보여 주목해 볼 만하다.

미국, 디지털 통상규제의 무역장벽 범위 축소

미국은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디지털 무역장벽에 관한 언급을 대폭 축소했다.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보고서는 미국이 개별 국가의 디지털 규제를 어느 정도 수용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무역이 급속히 확대되고, 디지털 통상에 관한 국제 거버넌스에서 미국은 시종일관 디지털 분야의 '자유주의' 기조를 유지했다. 국경 간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을 저해하는 데이터 현지화 규정을 반대해 왔다.

이에 따라 디지털 통상 관련 미국이 포함된 양자 또는 다자 협정에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과 데이터 현지화를 강제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디지털 자유주의 기조가 다소 완화된 것이다.

다음으로 앞서 언급한 자유주의 기조 완화와 연결되는 것으로, 디지털 분야에 있어 국가의 규제 권한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보고서 서문에는 개별 국가는 공공목적을 위한 규제 이행에 관한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과연 무엇이 "합법적 공공정책"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은 없다.

미국은 최근 참여한 디지털 통상 협정에서도 이를 예외 규정의 성격으로 포함한 바 있다. 이번 무역장벽 보고서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면서 향후 미국의 디지털 통상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을 암시했다.

일반적으로 통상갈등은 명확한 규정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규정이 모호할 때, 해석에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합법적 공공정책", "국가안보", "국가 이익" 등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 예이다. 이들은 그 용어의 범위를 확정할 수 없고, 해석이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에 대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니, 향후 국제통상의 첨예한 갈등 유발 요소가 될 것이다.

중국의 디지털 주권주의와 경쟁 구도

중국은 2012년부터 사이버주권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디지털 분야의 규제 권한 확보에 관한 목소리를 냈다. 2017년 '사이버보안법'이 제정되면서 이 법에 근거하여 국가 안보와 이익을 목적으로 한 국내 규제의 합법성과 주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은 중국과 미국이 결국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모양새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장벽 보고서는 여전히 중국 정부의 디지털 관련 정책과 법률이 미국의 디지털 관련 기업의 시장접근을 제한한다고 보고 있다. 다른 무역 상대국의 디지털 무역장벽은 완화하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실 현행 국제통상의 규범적 측면에서 보면, 중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요 데이터 핵심 데이터 등의 국외 반출에 대한 규제에 대해 WTO 규범 위반이라고 판단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WTO 규정에 이에 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 예외 규정이 있긴 하지만, WTO 규정에서 말하는 국가안보는 전쟁이나 테러 등 물리적 위험에 따른 국가안보 위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한 '반도체법(CHIPs Law)'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다른 무역 상대국의 측면에서 보면 명백한 무역장벽일 수 있지만, 경제안보를 이유로 이를 국내에서 정당화, 합법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어느 국가의 법적 근거가 더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서 국제사회로부터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두 국가 모두 법률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중국은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제한하는 핵심 그리고 중요 데이터의 명확한 범위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들 데이터의 해외 반출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객관성이 충분하지 않다. 자국 산업 보호에 일색인 미국의 관련 법규 또한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이바지할 뿐 과연 공공의 목적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주권 강조는 곧 무역보호주의

국제통상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개별 국가의 주권 강조는 곧 무역보호주의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의 무역장벽 보고서에 한국의 무역장벽이 완화된 것처럼 보인다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에 비해 완화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디지털 무역 관련하여 망사용료 법안, 데이터의 국외 반출 제한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제재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의 주요 통상 상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공식적으로 무역장벽에 관한 '주권'을 명시했다. 앞으로의 국제통상환경은 무역보호주의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의 통상환경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외교채널 확보가 필요하다. 보호무역주의는 결국 국제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 없는 이유로 만연된다. 이 때문에 국제규범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역 상대국의 다변화와 함께 외교채널 확보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다자나 양자 통상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무역보호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채널과 레버리지 확보가 중요하다. 특정 국가의 횡포는 다자 체제를 통해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수 있고, 양자 체제를 통해서 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한 국내 법률 정비와 대응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 보호무역주의 합법성은 국내법에 있다. 자국법에 근거하여 무역 상대국의 무역장벽을 조사하고, 제재, 자국법의 역외적용 등에 관한 법적 근거를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미국, 중국, EU 등의 국가들은 이미 마련해 놓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후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부터는 필요하다면 '선제공격'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등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통상은 한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인데 이를 너무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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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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