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나쁜 의도로 시작한 '의대증원'은 '의료개혁' 아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공의료 강화 없는 의대증원, 재검토 필요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의대증원에 맞선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길어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의대증원을 밀어붙이고 있고, 의료계의 집단행동은 확산일로에 있다. 많은 언론들은 환자를 버리고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는 의료계의 행동을 밥그릇 지키기로 비난하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의대증원으로 이루려는 의료개혁의 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고 관련 정책적 논의도 찾기 어렵다.

한국의 의사 수 부족하다

나는 한국의 의사 수는 부족하다는 정부 판단을 지지한다. 굳이 멀리 OECD 평균 의사 수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지금도 의사 수가 부족하다. 비수도권 지역의 의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오래된 얘기이고, 수도권의 종합병원조차 의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향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의 증가는 좀 더 의사 수 부족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의사 수 부족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했는데, 이는 의사들이 과거와 달리 삶의 질을 더 추구한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엔 의사들은 주 40시간 개념이 거의 없었다. 퇴근은 오후 6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업무를 마쳐야 퇴근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에도 야간이나 주말에도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점차 의사들도 주 40시간 근무를 지키려 한다. 특히 젊은 의사들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전공의들은 수술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겠습니다' 하고 수술방을 나간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 없이 환자를 보아왔던 선배 의사들은 요즘 젊은 의사들의 이상한(?) 행태를 비판할 때 흔히 회자되는 사례다.

의사들의 삶의 질 추구가 의사 부족 가속화시켜

과거보단 줄었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린다. 종합병원에서 교수와 같은 전문의 의사들이 부족하다 보니 그 업무는 인턴, 레지던트와 같은 수련의에게 전가되어 왔다. 과거 한때 전공의들은 1년 차 초반에 '100일 당직'이라 해서 100일 동안 오프가 주어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100일 당직이 끝난 후에도 주말에 한번 오프(퇴근)를 받으면 감사해했다. 그나마 요즘엔 전공의법을 제정해서 주 80시간 이상은 근무를 못하게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도 법정 근로시간의 두 배다. 이조차 불과 9년 전에 제정되었다.

이젠 의사들도 점차 삶의 질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많은 의료기관들이 주 40시간제가 안착화되어 가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본의 아니게 환자들의 입장에선 피해가 될 수 있다. 법정 근무시간을 지키려고 하면, 퇴근 후 발생한 응급환자를 위해 다시 출근하긴 어렵다. 그러다 보니 24시간 진료체제를 유지하려면 이전보다 더 많은 의사 인력이 필요해진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는 이런 현실에서 더 늘어나고 있다. 예전엔 의사 1명이 24시간 진료가 가능했지만 이젠 그런 사회가 더 이상 아니다. 법적 근로시간을 넘어선 초과 노동을 마치 의료인의 당연한 사명감처럼 둔갑시켜 강요할 수는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의사들이 필요해졌다. 의사들도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한 진보다. 내가 의사 수 확대에 찬성하는 이유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사이 최소 5000여명의 '진료지원(PA) 간호사'가 상급종합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번 의사 집단행동을 계기로 PA 간호사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3월 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증원, 총선 전 정치적 이용하려는 나쁜 의도에서 출발

그런데 의대증원 이슈는 엉뚱한 데서 갑자기 터졌다. 정부 차원의 의대증원 논의가 거의 없다가 지난해 10월 강서구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대패하더니 불쑥 의대증원을 꺼낸 것이다. 그것도 2000명이나. 의대증원을 찬성하는 필자 역시 갑작스러 2000명 발표에 상당히 놀랐다. 의사 수 확대에 관심조차 없었던 윤석열 정부가, 지난 민주당 정부 때 추진한 400명 증원조차 의사들 편들며 반대하던 국민의힘이 갑자기 2000명 증원을 추진하다니….

문제는 왜 2000명이냐는 것이다. 2000명의 증원이 구체적으로 왜 필요한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항간에 듣기론 보건복지부는 500~1000명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실이 무조건 2000명 이상 증원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500명 정도는 의료계도 더 이상 반대하긴 어려웠기에, 불리한 총선 이슈를 덮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2000명 정도라면 모를까. 이 숫자라면 의료계는 반드시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숫자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장차관이 직접 나서서 일부러 반발을 불러내려는 듯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었다. 의료계는 예상대로 움직였고, '김건희 사법리스크'와 정권의 무능은 이슈에서 밀려났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했다.

의대증원을 찬성하는 입장이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나쁜 의도로 의대증원을 추진한다고 보기에 2000명 증원을 지지해 주기 어렵다. 더 중요하게는 의사 수 확대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어떤 의료개혁을 하려는 것인지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지지하기 어렵다. 의사 수만 크게 늘려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수효과에 기대는 건 매우 안이하다. 의사 수 부족은 의사 수를 단순히 늘린다고 메워지는 게 아니다.

의료체계 구조개혁 없는 의사 수 확대는 의료개혁 아니다

의사 수 부족의 대표적인 예가 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 문제이다. 대학병원조차 수술할 의사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의사 수를 매년 2000명을 늘리게 되면, 최종적으로 1만 5000명의 의사가 더 늘어나게 되면 해결이 될까? 나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본다. 거시적인 의사 수 부족이 응급실 뺑뺑이 현상을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나,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왜냐면 구조적 문제가 있기에 그렇다. 단순히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전체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과 개별 의료기관의 의사 수가 늘어나는 건 다른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구조적으로 전문의 인력이 부족하다. 서울아산병원의 규모는 병상 수 2700 병상에, 의사 수는 1800여명(전공의포함)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종합병원의 규모는 병상 수 2000 병상에, 의사 수는 4700명(수련의 포함)이다. 단순 비교로도 병상당 의사 수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전문의로만 비교하면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한국과 미국의 인구당 의사 수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한국 : 1000명당 2.6명, 미국 : 1000명당 2.7명, 2021년 OECD health data) 두 병원의 의사 수 차이는 매우 크다.

의사 수를 늘리면, 서울아산병원의 전문의도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전체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과 특정 병원의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서울아산병원이 몇 명의 의사를 고용할지는 전체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게 아니다. 건강보험 수가 구조하에서 재정적 여력에 달려있다. 매출은 비슷한데, 인건비만 2배 늘릴 순 없을 터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의사 수를 늘린다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 수 증원에 더해 의료체계의 개혁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의사 공급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것도 매우 중요

의료인력 수급에 있어 더 심각한 문제는 불균형이다. 2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아산병원조차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했다는 뉴스는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병원에서도 특정 분야의 필수 중증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없다. 이것은 신경외과 의사의 부족 문제가 아니다. 현재 신경외과 의사들은 많지만, 정작 뇌혈관 수술을 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대다수 신경외과 의사들은 좀 더 편하고 보수도 많은 척수 수술을 전공한다.

이런 현상은 거의 모든 진료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젠 소아과 의사도 부족하지만, 소아 중환자를 전공하는 소아과 의사들은 매우 드물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보단 부인과를 더 선호한다. 2교대로 힘든 응급의학 전공은 기피하고 미용 성형 분야로 진출하려는 의사는 줄을 섰다. 기초의학과 예방의학 전공자는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의료 공급 불균형의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단지 숫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민의 의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의료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선호에 따른 의료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불균형, 미스매칭이 점차 심각해져고 있다. 시민에겐 꼭 필요한 분야인데 의사들은 기피하고 시민의 건강과는 직결되지 않은 분야에는 의사들은 몰리고 있다. 그 결과로 예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로 나타났을 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단순무식하게 의사 수 늘리는 것 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 잘 보이질 않는다.

공공의료 강화 시각 없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 정책

지금 의료체계에서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불편과 불만은 우리 의료체계가 시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의료, 그것이 곧 공공의료다. 우리가 의료는 공공(익)성을 갖고 있다고 할 때 그 공공성이란 국어사전 그대로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된 성질'을 뜻한다. 공익성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성질’이다. 의료의 공익성이란 시민들의 공공의 이익, 즉 건강권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의료체계는 시민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의료체계의 공공성이 약한 것이다.

의료개혁은 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의사 수 확대는 공공성을 강화할 때 의미가 있다. 공공성 강화 없는 의사 수 확대는 의료체계의 문제점만을 악화시킨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공공의료 논의를 찾기는 어렵다. 정책 과제에서 공공의료 자체가 사라졌다. '공공의료'는 '필수의료'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고, 그 필수의료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의사 수 확대와 함께 필수의료 패키지를 내놨지만, 그것으로 필수의료가, 공공의료가 강화되기란 어려워 보인다.

필수의료 패키지 중 가장 중요한 지역의료강화를 보자. 지역의료 강화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지역의료가 강화될까? 주요 내용은 국립대병원을 중추적으로 육성하고 전달체계를 확립하겠다는 것과 지역의료 인재 전형으로 40% 이상을 지역에서 선발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정도다. 그러면서 2000명의 의대증원 대부분을 비수도권의대에 할애했다. 그런데 그런다고 의사들이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일하려 할까? 지금도 비수도권의대생의 상당수는 수도권 출신이다. 아무리 지방에 더 많은 의사를 배정한들, 그들은 수도권 출신으로 채워질 것이고 졸업 후에는 모두 수도권을 몰릴 것이다. 필수의료 패키지가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이유다.

의사 수가 부족하고, 반드시 필요한 전문 분야의 의사 수를 양성하려면, 또 의사들이 기피하는 지방에서 근무를 하게끔 하려면 매우 정교하고 목적 의식적으로 의사를 양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수단으로 제시된 것이 그나마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였다. 공공의대는 공급이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 의료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교육을 목표로 제안된 것이고, 지역의사제는 해당 지역에서 일정한 근무를 의무화하자는 정책이었다. 그나마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충분하진 않지만, 올바른 방향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강화를 하겠다면서도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는 쏙 빼놓았다. 도대체 무슨 수로 지역의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수가제도 개혁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의료서비스의 양을 보상해 주기보다는, 의료의 질을, 가치를 중심으로 보상해 주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가치 기반 지불제도 도입은 의료서비스를 양으로만 보상하면서 발생한 발생한 의료체계의 비효율과 낭비를 개혁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정도에만 머물게 아니라, 전면적인 확대를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총선 후 국회, 정부, 의료계, 시민이 함께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자

공공의료 강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 의대증원은 의료개혁이 아니다. 더구나 의대증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윤석열 정부의 아집으로 밀어붙일 문제는 아니다.

의대증원은 필요하다. 문제는 의대증원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어디 분야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정확히 추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지, 필요한 분야에 근무할 수 있게끔, 구체적인 의료개혁의 내용을 만드는 것에 있다.

필자는 이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4.10 총선 후에 말이다. 의료계도 2000명은 과하다고 판단하지만 수백명 규모의 증원은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의사 수를 얼마나 정교하게 산출하고 제대로 양성할 수 있을 것이냐에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의사 수 확대를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자. 정부의 일방적 추진과 의료계의 집단반발이라는 양자 간의 갈등이 아니라, 국회와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각자의 정책을 제시하고 토론하고 합의해 가면서 의대증원 문제를 해결하자. 총선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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