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장기집권 정몽규, 한국 축구가 현대家의 식민지인가

[정희준의 어퍼컷] 사과는 그만 하고 책임져야

내 말이 그 말이다. 대한축구협회라는 공공재가 과연 고 정주영 회장의 아들, 조카가 돌아가며 30년을 독점해도 되는 것인가?

1960~70년대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회장을 맡았다. 장기영, 민관식은 총리,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고, 장덕진, 박준홍은 고위 관료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처조카사위, 조카였다. 이들은 한국 축구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예를 들어 장덕진 회장은 재무부 재정차관보 시절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겸하면서 은행장들을 설득해 1969년 한 해에만 무려 9개의 은행축구팀을 창단케 했다. 갈 곳 없던 200여 명의 축구선수들에게 일자리를 준 것이다. 또 당시로선 상상이 불가능했던 거금 1억 원을 모아 축구발전기금을 조성했고,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코치를 불러왔으며, 최초의 국가대표 전용 숙소를 지은 것도 그였다.

잘 하면 누가 뭐라겠나

1980년대 경제발전이 가속화되고 재벌기업들이 등장하자 재계 인사들이 축구협회를 책임지게 된다. 1979년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취임했고 1988년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회장의 사재 출연이 중요하기도 했지만 이들에겐 여느 정치인 못지않은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우중의 뒤를 이어 정주영 현대그룹 총수의 6남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취임한다. 한국 축구의 황금시대라고 칭할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축구협회는 정치화되고 파벌 문제가 내재화되기 시작한다. 회장 취임 당시 정몽준은 재선 의원이었고 훗날 대권 도전에 나서게 된다.

정몽준 회장이 사재 출연 등 축구 발전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에 대해 축구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거스 히딩크라는 세계적 명장을 불러와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에 이끈 공이 분명하다. 그러나 '자기 돈 쓰지 않는다'라는 비판도 있어왔다. 사실 한국 축구는 1986년부터 10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면서 스폰서쉽, 중계권료, A매치 수입 등 재정적으로 가장 윤택한 단체가 된 지 오래다. 2024년 축구협회 예산 1876억원은 축구를 제외한 대한체육회 모든 가맹단체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정몽준 회장 체제가 남긴 가장 확실한 유산은 협회라는 공조직이 사조직화되고 이전보다 권위주의에 물들게 됐다는 점이다. 2009년까지 4번에 걸친 무려 17년의 장기 독재는 또 다른 장기 독재로 이어졌다. 정 회장의 사촌동생 정몽규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2013년 취임한 이후 3번에 걸쳐 12년째 협회를 장악하고 있다. 내년 4선 도전은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이미 현대가(家)가 27년 독점하고 있는데 30년을 넘기겠다는 심산이다.

바람 잘 날 없는 대한축구협회

지난 1년만 해도 그렇다. 작년 승부조작 선수들과 비리 축구인 100명을 기습 사면하려다가 여론의 공분을 사 철회하고 사과했다. 올해는 우승을 노리고 아시안컵에 출전했는데 졸전 끝 우승 실패로 또 사과했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황의조를 대표팀에 선발했다가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제외했다. 이강인이 열 살 많은 손흥민에게 주먹질을 할 정도로 대표팀 관리가 엉망이더니 최근엔 전지훈련지에서 선수와 협회 직원이 현금을 건 도박성 내기를 했다고 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렇게 시끄럽고, 국민의 공분을 끌어올리는 단체는 이전에 없었다.

한국 축구는 발전하고 있는가? 아니다. 퇴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가의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다. 정몽준, 정몽규 30년 독재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축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회장 역시 HD현대 회장이다. 정몽규 직전 회장에 이어 2013년부터 12년째 집권 중이다.

물론 한국 축구에 대한 현대가의 공은 분명하다. 울산현대, 전북현대, 부산아이파크, 울산현대미포조선, 현대제철 레드엔젤스 등 프로 구단 외에도 많은 학원팀을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축구는 공공재라는 점이다. 국가대표팀은 물론 프로팀도 국민의 성원 속에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고, 정부 소유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고, 공공재인 전파를 통해 그들의 경기가 중계된다. 프로구단 절반 이상이 시민, 도민 구단이다.

사과는 이제 그만, 책임져야

최근 대한축구협회 관련하여 벌어진 모든 사태의 책임자는 정몽규 회장이다. 도의적 책임이 아니다. 그가 실질적 결정자이자 책임자란 말이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도대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작년 비리 축구인 기습 사면 때도 분명 본인이 결정한 일이었음에도 부회장, 이사진을 총사퇴시키고 자기만 남았다. 클린스만 감독 논란 때도 자기가 '꽂았다'던 클린스만만 내보내고 자기는 남았다.

12년 장기 집권하면서 국민에게 실망만 선사하고, 한국 축구를 퇴보케 하고, 무엇보다 이렇게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면 이제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원래 '멀티 태스킹'이라는 게 쉽지 않은 거다. 수많은 국민과 직원과 주주에게 피해를 주고 '순살 아파트'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으면 기업 경영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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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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