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발레리나의 공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기고] 편견 없이 좀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이 4월 중순에 있을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이미 지난해 12월 중순 공연기획사가 2024년 공연 라인업을 공개할 때 알려졌으나 당시에는 이렇다 할 문제 제기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4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이 공식 입장문을 내고 "침략 국가의 공연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힌 이후 일부 주류 매체들이 대대적으로 비판적인 보도에 더하여 사설까지 싣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반응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우선 관련 보도의 댓글을 보면서 러시아에 대한 일부 한국인들의 적대감이 엄청난 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한국 관중들이 소련 선수단을 하도 열렬히 환영하는 바람에 이에 당황한 미국 측에서 한국인들의 심리 변화에 관한 연구까지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2024년 3월 현재 상당수 한국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감정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0여 년 사이에 양국 관계에 어떤 심각한 사건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주목할 만한 일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말고는 없다. 6.25 전쟁 때 우크라이나가 한국을 도와 싸웠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한때 있었는데 지금 그에 대한 보은으로 한국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였고 북한과 밀착하고 있는 나라의 공연단을 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하는데, 비우호국 지정과 북-러 밀착은 그간 한국이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캠페인에 적극 호응하여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 있는 데 대한 반작용이므로 그런 주장은 인과관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스크바 로이터=연합뉴스

이번에 러시아 정부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홍보 목적으로 발레단을 보내기라도 한 것일까? 공연기획사 측에 따르면 "국내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4~5년 전 기획됐으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연기됐다가 다음 달 공연이 잡힌 상태"라고 한다. 전혀 러시아 정부가 개입되어 있지 않으며, 외교부에서 파악하고 있듯이 민간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행사일 뿐이다. 더욱이 공연 내용은 프랑스의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자하로바의 서울 공연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또한 실제로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보지 않으면 되는데 남들 보고 보지 말라든가 또는 보지 못하도록 공연을 취소하라고 하는 것은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다.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총회 결의에 140개국 이상 찬성하였으나 현재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 나라는 49개국밖에 안 되는데 이것을 국제사회의 대세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람들을 오도하는 주장이다. 49개국도 미국, 캐나다 및 유럽연합 국가들 그리고 한국, 일본 정도이다. 일본은 G7의 일원으로서 한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미국의 정책에 호응하고 있고 국내적으로 다소 거부 반응이 없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예술가들의 공연을 허용하였다. 한편, 5월에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한국인 발레리노 김기민이 러시아 발레 스타들과 함께 내한하여 공연할 예정인데 이마저도 불허해야 하는 것인가?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예술가들을 보이콧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선택일 뿐이고 우리가 이를 따라서 할 이유는 없다.

"공연이 강행되면 국내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외교적으로 문제 삼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한국 정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이 한국의 공연기획사나 예술의 전당에 대해 단순히 항의나 불만 표시를 넘어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는 표현처럼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려 한다면 이는 자기 분수를 망각한 행동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한국의 주권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지 우크라이나 정도의 나라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우리는 편견 없이 좀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엄연히 제3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민간인의 희생에 대해 도덕적 분노를 표출한다면 불과 최근 몇 개월 동안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상자 수가 지난 2년 동안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 수보다 훨씬 많은데 왜 이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는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