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진정된 후 책임은 정부의 몫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을 생각하며…

4.10 총선을 불과 한달 여 앞둔 이 시점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정부와 의사 집단 간 '강 대 강' 대치는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심각할 것이다. 정부가 포문을 연 이 전쟁은 누가 승리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큰 상흔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집단적 사직에 의해서 진료나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례들이 쌓여가면서 의사 집단에 대한 악마화가 진행중이다. 더욱이 최근 몇 일은 의사들에 대한 행정적 조치 방안들이 발표되면서 실타래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의 의사들이 병원 내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시급한 의료 수요로 볼 때 역부족인 것은 사실이다. 과연 이 사태가 언제 진정될까. 의대 학생들에 대한 증원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거두었고 현 정부에 대한 국정 운영 지지율은 높아지고 있건만, 향후 10년 이상의 의료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도 없이 고래 싸움이 된 현 상황은 누구의 등이 터질지 불 보듯 뻔하다. 그저 운 없이 나와 내 가족의 등이 터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서 대다수의 국민은 '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5일에 보도된 세계일보·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84.6%로 절대적으로 높았고,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해도 증원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3.2%였다. 한편 <연합뉴스>에서 메트릭스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2000명 증원에 찬성한다'와 '2000명 보다 적게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84%정도로 나타났다. 어찌되었건 증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증원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의사수가 부족하다라는 인식과 그중에서도 필수진료과 의사가 모자른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그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공공선을 위하여 반드시 개혁해야만 하는 의제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민들의 지지가 크다. 집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직업적 사명의식을 벗어던진 비윤리적 존재로써의 의사 집단과 국민의 생명과 의료 시스템을 지켜나가는 대리자로써 정부의 프레임이 공고해지고 있다. 온갖 영역에서 '자유'를 부르짖어 온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에 대한 책임까지 거론하며 의사들의 공적 책임의식을 비판하였고, 국민들은 이에 많은 동의를 보내고 있다.

의사는 언제부터 지금의 의사의 의미를 지녔을까? '한국 의사의 역사적 정체성 형성'(여인석, 2021)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의료인은 사회적 신분이 높지 않은 중인 계층이었고 이는 과학기술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하였다. 당시 의료적 기술은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전문자격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제도화 된 것은 1900년에 공포된 '의사 규칙'을 통해서이다. 국가가 의료행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역사적 사실로써 당시 동아시아 전통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다. 이것이 전문직으로써 의사였으며, 특권적 지위가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후로 지금까지 의사로써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100여년 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국민들이 요구하는 의사에 대한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전문직으로써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추기 위한 교육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끝맺음 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17일째 이어지고 있는 3월 7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사태에 대해서 좀 더 담담한 눈으로 보자면, 위의 논문의 내용과 같이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치료하는 전문가로써 시대에 따라서 그 평가가 오히려 박했다. 지금의 관심과 국민들의 분노는 오히려 이례적이고 과열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는 어떠한 직업과 성공에 대한 분위기와 가치 부여에 관한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의사 외의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의도치 않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는 학업적 경쟁의 산물로써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갖는 존재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치료자로써 소임을 다하는 이미지보다, 고액 연봉에 대한 선망, 고도의 지식 집단으로써 대한민국의 극소수에 해당된다는 인식 등이 뒤엉켜 의사 본인의 지향과 상관없이 우상도 되고 악마도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다. 한 국가 내에서 의사와 국민 간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상호 간 서로 책임지지 못할 무거운 말들이 너무나 가볍고 쉽게 전달되는 상황이다. 현 정부는 상처입은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직업적 카르텔을 혁파하는 투사로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 집단 역시 정부가 안고가야 할 국민이자 설득과 합의라는 토대에서 먼 길을 함께 가야할 직역이다. 현 정부는 그간 노동계를 대하듯, 여성계를 대하듯 이번에는 의사 집단에 낙인을 부여하고 게임의 룰을 반강압적으로 바꾸고 있다. 필수 의료를 어떻게 늘릴것인가 라는 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할 주체는 마땅히 정부이다.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의대 증원과 관련 이슈에 우리의 눈과 귀를 빼앗기면서 중요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확실히 적어짐을 느낀다. 첫 번째는 저출산 수치이다. 모두가 알면서 모르는 듯한 최저의 저출산 수치는 그 끝을 알기 어렵다. 매년 학생 수가 줄어간다는 뉴스를 보며 젊은 사람들이 왜 애를 낳지 않는가 라는 식의 인상 찌푸림의 수준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마치 의사는 왜 저렇게 이기적이야 라는 식으로 저 이기적인 인간들 때려잡자는 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의 합의와 그것을 위한 토론, 숙의라는 숙성의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부작용이 날 수 밖에 없다. 단시간에 고도의 성장을 일구어 낸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앞뒤좌우를 살피며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이라는 명확한 지점을 설정하여 때로는 설득으로 때로는 기다림으로 나아가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두 번째는 의사 집단의 이기주의만 처벌하면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지금의 이 상황이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하면 나아지게 할까 라는 고민과 설득이 엿보이는 정책 싸움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악마화 된 의사집단을 응당 처벌하겠다는 말이라도 안나오면 다른 정당은 뭘하는 거냐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 현 상황을 뒤집을 만한 정책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싸움판에 끌어들여진 국민들은 의사들에 대한 정부의 처벌만 있다면 내 삶이 나아질 것처럼 감정적 댓글과 정부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책임은 정부의 몫이어야 한다. 의사들이 느낀 자괴감, 막막함,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회복시키는 역할은 정부가 지고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비단 나 뿐 만일까. 복지국가 건설을 약속하며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한 영구의 윈스턴 처칠을 떠올려본다. 그는 2차 대전의 포화속에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헌신을 필요로하는 동시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어록 중에는 이러한 말도 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짖는 개를 볼 때마다 돌을 던지면 절대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한다구요."(1923년 12월 3일 런던에서의 연설 중)

정부는 대의된 권력자로써 어느 한 영역을 악마화하는 이 사태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성찰하여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본질적 어려움을 풀어가려는 어렵고 힘든 길을 가기보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의 지지만을 얻어내는 지금 상황에 대해서 당장 수시간 내로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예약된 진료 또는 수술을 받지 못해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국민들에게 무조건 의사의 탓으로 돌릴수만은 없다. 그리고 책임있는 자세로 중장기적 대책 마련과 이후 국민들간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려는 다양한 정책으로 나아가야 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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