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공안 심문? 중국 젊은 세대 '명절 잔소리' 탓 귀성 포기

빈부 격차 커지며 '체면' 중시 문화도 부담…춘제 전후 역대 최대 규모 90억 명 이동 예정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직업이 뭔지, 얼마나 버는지 알고 싶어 하죠. 만약 결혼했으면 애는 언제 낳을 건지 물어볼 걸요. 정보 기관의 심문을 받는다고 상상하시면 돼요."

중국 남부 선전 출신으로 마케팅 관련 일을 하는 캐시디 유(32)는 한국의 설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 연휴인 춘제(10~17일, 이하 현지시각)에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대신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5일 보도했다. 방송은 그가 올해 특히 가족과 이웃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그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가족들은 항상 중매인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데 춘제엔 관련한 호기심과 탐색이 특별히 심해지며 어떤 질문도 너무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엔 집에서 보내는 춘제가 좋았지만 이젠 "여행을 떠나 더 조용한 휴일을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후샤오우 중국 난징대 사회학과 교수는 BBC에 "중국의 전통적인 가족 관계는 개인적 경계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연장자들의 과도한 관심과 고압적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젊은이들이 춘제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는 도시화와 사회적 이동성 증가로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약화됐다고 지적하며 대도시로 이주한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개인주의적 생활 양식과 대도시 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해 가족과 대화할 시간이나 의욕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2022년 연구에 의하면 18~30살 사이 젊은이들은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친척과 교류하는 빈도가 낮다.

코로나19 위기감이 잦아들고 젊은 세대가 명절을 가족 행사가 아닌 그저 '장기 휴가'로 여기게 되며 올해 춘제 기간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수요도 급증할 전망이다. 4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관광 업계 내부에서 올해 춘제 연휴에 "5년 만에 가장 뜨거운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관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성을 판이라고 밝힌 한 베이징 주민이 자신은 이번 춘제를 부모가 있는 호주에서 보낼 예정이고 다른 친구들도 해외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중국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명절을 보내지만 올해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명절을 즐기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부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미엔즈(面子), 이른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젊은 세대에 더욱 부담을 안기고 있다. BBC에 따르면 중국 동부 항저우에서 프리랜서 제품 관리자로 일하는 유메이링(29)은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아래 올해 춘제엔 최근 구입한 새 차를 타고 고향에 갈 예정이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주는 용돈, 선물, 옷차림 등 모든 것이 평가된다.

그는 "과거엔 춘제 땐 사는 선물이 거의 비슷했다. 모든 사람의 생활 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단순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빈부 격차가 커져 명절에 고향에 가면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춘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올해는 부모님께 얼굴을 보여 드리고 싶어 남편과 함께 귀성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BBC는 중국 경기가 둔화된 상황에서 온라인상에서 단순히 "돈이 없다"는 이유로 춘제 귀성을 포기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귀성을 택했더라도 폭설로 교통이 마비돼 이동이 쉽지 않았다. 이번 주 초 후베이, 후난성 등 중국 중동부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려 열차가 지연되거나 운행 중단되고 눈 쌓인 도로에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6일 결빙으로 인한 고속도로 교통 정체가 이날부터 해소될 것을 기대하면서도 8일까지 강설이 예보돼 교통, 철도, 항공 여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후난성에서도 향후 강설에 대비해 길에 소금을 뿌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번 춘제 기간 귀성, 여행을 포함한 중국 국내 이동 수요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달 중국 교통 당국은 이번 춘제 연휴 전후 40일간 연인원 90억 명이 이동할 것으로 봤다.

▲한국의 설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 연휴인 춘제를 앞두고 8일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의 한 기차역이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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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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