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언론 창간과 협업이 리영희 정신이다

[다시! 리영희] 진정한 언론의 길 제시한 리 선생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야, 분명해!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리영희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입니다. 기자가 취재하고 보도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기자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분명한 이정표가 되는 말입니다. 저는 기자 생활하면서 이 이정표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방신문에서 기자의 이정표는 달랐습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진실을 밝혀낼 때마다 누군가 그 진실을 없애도록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신문사에서는 그 역할을 사장이란 사람이 했습니다. 사장은 겉으로 편집권 독립을 철저히 지키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편집국 취재 내용을 몰래 보고받았습니다.

수년 동안 진실을 확인하고도 세상에 꺼내놓지 못한 일들이 반복되자, 저는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어 편집권 정상화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시민에게 울림을 줬습니다. 하지만 사장과 경영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합원들을 탄압했습니다. 가장 심한 탄압은 위원장을 맡았던 제게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사측이 부당하게 인사위원회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안팎으로 알렸지만 경영진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징계 사유는 기고 등을 통해 사내 문제를 외부로 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사위원들은 일방적이었고 저의 소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직 4개월을 받은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이 탄생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수강

저는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모집요강을 보고 입학을 망설였습니다. '언론인 지망생들의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지원서를 내고 면접시험을 본 뒤, 제 생각이 오만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면접은 5∼6명씩 한 조로 1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제가 속한 조에는 현직 기자, PD,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근무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실력도 출중했습니다.

운 좋게 면접을 통과해 첫 번째 등교하던 날,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의 한 마디에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진 고정관념을 깨는 것부터 탐사보도가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10년 동안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제게 생긴 고정관념, 애초 저라는 사람에게 있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저만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몰두했습니다.

탐사저널리즘 이론, 언론사(史), 데이터저널리즘, 실습 등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의 다양한 강의를 통해 제가 찾은 탐사보도의 해답은 '협업'에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지방신문사는 부서별로도 칸막이가 있을 정도로 협업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인천시 3급 공무원 비리를 취재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취재였으나 보도하려고 하니, 정치부장이 첫 번째 설득 대상이었습니다. 어렵게 설득했지만 그 기사는 결국 사장 손에 막혀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신문사 내부 협업도 하지 못하는 지역언론 환경에서 다른 회사와 협업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3개월간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 제 머릿속에는 협업이 가능한 탐사보도 전문매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염원이 생겼습니다.

▲뉴스하다 운영주체인 인천탐사보도지원센터 창립총회. ⓒ필자 제공

계속된 노조 탄압, 독립언론 창간의 씨앗으로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을 수료하고 돌아온 지방신문 기자로의 삶은 무료했습니다. 저에게는 영화와 책을 소개하는 업무가 주어졌습니다. 사측 의도는 취재에서 제 손을 떼게 하고 저에게 보도 권한을 전혀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그래도 취재와 보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노보를 만들어 그곳에 기사를 실었습니다.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에서 배운 취재기법을 활용해 구청장, 시의회 의장 등을 대상으로 한 기사에서 탐사저널리즘을 구현했습니다. 그 결과 부적격 후보자의 지방선거 공천을 막는 등 언론으로서 역할을 확실히 했습니다.

사측은 제가 노보를 통해 기자 활동을 이어가자, 노보 발행이 사규로 금하는 겸직에 해당한다며 또 징계를 운운했습니다. 이러는 사이 정직 4개월이 부당하다는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받아 징계가 취소됐습니다. 그러자 사측은 같은 사유로 재징계를 내렸고 이번엔 정직 2개월을 통보했습니다. 이때부터 독립언론 창간이라는 씨앗이 제 가슴속에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조합원 2명에게 창간을 제안했으나 처음에는 둘 다 거절했습니다. 생계 때문이었지요.

▲"독립은 고립이 아니다." 뉴스타파 김중배·김용진과 함께한 뉴스하다의 홍봄, 이창호 기자. ⓒ필자 제공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2기와 의기투합

두 번째 징계는 2022년 9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저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노조 창립 4주년인 다음 해 2월 책을 발행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노조 창립 5주년, 10주년도 아니고 4주년에 책을 낸 건 내심 의도가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뜨거웠던 노조 활동을 마무리 짓고 독립언론 창간에 힘 쏟기 위해서였습니다.

책은 창간을 제안한 2명의 기자와 함께 공저로 잘 마무리됐습니다.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홍봄 기자는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2기에 도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수강하는 과정에서 독립언론 창간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는 긍정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다행히 홍 기자는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수업에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탐사보도와 협업에 대한 홍 기자의 마음가짐이 저보다 더 뚜렷해졌습니다. 저와 홍 기자는 독립언론 모델을 뉴스타파로 잡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가 한창이던 4월 중순께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검찰 예산검증 협업을 요청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던 창간일은 9월이었으나 김 대표는 7월로 당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창간일을 앞당기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운영주체를 비영리 독립언론 형태로 설정했기 때문에 당장 정회원 100명을 모집하고 창립총회를 열어야 했습니다. 한 달 반 만에 어렵사리 정회원을 모두 모집했고 6월 1일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창립선언문에서 인천·경기지역 최초의 독립언론으로서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탐사보도를 근간으로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설립은 척박한 지역언론의 새로운 희망입니다. 매일 신문을 일률적으로 찍어내기 위해 보도자료를 쫓아다니고 정관재계의 입을 주목하는 저널리즘은 과감히 버리겠습니다. 권력과 자본 감시는 탐사보도의 뿌리로 생각하고 지역 정치인, 관료, 기업가, 토호세력 등을 항상 지켜보겠습니다. 특히 언론인까지도 감시의 대상으로 삼아 언론인과 정관재계 유착을 뿌리 뽑겠습니다.'

우리는 공모를 통해 비영리 독립언론 매체명으로 '뉴스하다'를 선정했습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하다'는 명사에 붙어 다른 동사를 만들어 내는 접미사 '-하다'가 되기도 합니다. '뉴스하다'는 제자리에 멈춘, 고여 있는 사물의 이름이 된 듯한 '뉴스'라는 말에 '-하다'가 붙어 새로운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운영주체인 비영리민간단체명은 '인천경기탐사저널리즘센터'로 확정했습니다.

▲뉴스하다 첫 아이템인 '인천시 광고 홍보비 전수 분석' 연속 보도. "지역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언론과의 유착'을 끊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직접 그 문제 속에 있었잖아요. 저희 스스로에 대한 선언이기도 해요." (미디어스 인터뷰 중에서) ⓒ뉴스하다

대망의 독립언론 창간 첫 프로젝트

저와 홍 기자는 창간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인천시 홍보예산 해부'를 선택했습니다. 단 한 번도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였습니다. 홍보예산으로 인천시가 지역 언론을 어떻게 '랩독lapdog'(애완견)으로 만드는지 보도했습니다. 특히 유정복 인천시장이 측근인 언론인에게 어떻게 홍보예산을 나눠주는지 보도했습니다. 인천시는 보도 이후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언론인에게 홍보예산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역 언론인들은 뉴스하다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내 수백 개 언론사에 인천시가 얼마씩 홍보예산을 나눠주는지 최초로 보도해 경각심을 일으켰습니다. 지역사회 여론을 만드는 리더들은 독립언론 탄생을 응원했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검찰 예산검증 프로젝트

2023년 7월 뉴스하다, 경남도민일보, 뉴스타파, 뉴스민, 부산MBC, 충청리뷰 등 6개 언론사와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공개센터 등 3개 시민단체는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을 탄생시켰습니다. 7∼9월 잠을 뒤로하고 분석한 결과 뉴스하다는 '국정감사 우수검사 격려금' 지급, '소맥 49병 폭음' 등 영수증 조작 최초 공개, '연말·퇴임 전 몰아쓰기' 보도 등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협업이 이뤄낸 성과입니다.

지역언론사에 몸담았을 때는 상상도 못 하는 결과입니다. 서로 무엇을 취재하는지 감추기 바빴지, 알려주고 함께 취재하자는 제안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협업을 통해 2∼3명이 취재하던 내용을 10명, 20명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확인한 덕분에 더 큰 진실을 캐낼 수 있었습니다.

공동취재단은 협업을 통해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냈고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2023년에만 민주언론상 보도부문 특별상, 올해의 데이터기반 탐사보도상, 올해의 좋은 보도상 등 3관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3개 시민단체는 2023년 리영희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협업은 공동취재단을 리영희 선생 말씀에 아주 가깝게 해줬습니다. 다시 한번 리영희 선생 말씀을 되뇌입니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야, 분명해!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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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 페이지 검찰특수활동비 자료를 정리하고있는 홍봄·이창호 기자.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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