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반란, 윤석열은 진압했나

[정희준의 어퍼컷]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vs. "살려는 드릴게"

검찰총장 때도 그랬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한마디로 '무자비한 정치'를 해왔다.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를 무릎 꿇리고 이준석은 내쫓았고 자신이 꽂았던 김기현도 걷어찼다. 윤 대통령에겐 '병력'이 있었기에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었다. 초재선 의원들이 스스로 홍위병이 되어 선배 정치인들 모욕주고, 연판장 돌리고, 의원총회에서 대놓고 원내대표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은? 공천이 '우주의 진리'인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실세 비대위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지를 철회했다'는 기사를 가지고 한 위원장을 흔들려던 이용 의원의 도발도 결국 진압됐다. ''친윤' 이용 향해 쏟아지는 당내 비판(문화일보)'에서 보듯 보수언론이 나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결국 민심도 한 위원장 쪽으로 기울었다.

한동훈의 반란

한 위원장은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정치적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관섭 대통령실장의 비대위원장직 사퇴 요구를 거부한 직후 기자들에게 이를 확인해줬다.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사실을 직접 드러낸 것이다. 이후 "할 일을 하겠다,"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당은 당의 일 하고, 정은 정의 일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을 면박 주듯 했다.

나아가 친윤 핵심 이철규 공동인재영입위원장에 대해 "내 스태프"라고 평가 절하했고, 김경율 사천 논란엔 지도부와 사전 협의를 했다고 반박했으며, 갈등 해결을 위한 김경율 사퇴와 관련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일축했다. 그러니까 대통령실의 압력과 요구를 모조리 거절하고 반박하고 잘라버린 것이다.

윤석열은 반란 진압했나?

23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천시장에서 만남과 한 위원장의 90도 인사를 두고 갈등은 봉합됐을 뿐 아니라 서열을 다시 확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1. 한 위원장은 대통령을 하차 지점에서 영접하지 않고 엉뚱하게 눈발 날리는 현장에 외롭게 홀로 서 있었다. 둘의 만남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맹추위 속에 벌세운 것이다.

2. 한동훈이 폴더인사에 대통령은 그 '어깨 툭' 인사를 했는데 눈 마주친 건 1초나 될까? 인사말도 "어, 그래"였다. 이렇게 윤석열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한동훈에게 확인시켜 준 것일까?

3. 내가 보기에 한동훈의 폴더인사는 승자의 배려다. 대통령의 체면은 살려준 것이다. 이번 갈등에서 대통령의 상처는 크다. 치욕적이다. 반면 한에게 윤은 나이 많은 선배다. 장관도 시켜줬고 비대위원장에도 앉혀줬다. 폴더인사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4. 윤 대통령은 싫은 사람 안 만나고, 불편한 자리 안 가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곧, 직접 만남에 나섰다. 자신에게 대들었고 망신을 준 부하다. 자신의 전매특허인 쫓아내기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왜 만나기로 했을까. 치욕을 만회하고 자신의 권력을 만방에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가원수으로서의 의전' 외엔 없었기 때문 아닐까?

5. 무엇보다 윤은 한을 용서했을까? 한동훈은 서천시장 만남 직후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 "'한동훈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는 발표를 철회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한동훈, "내가 니 시다바리가."

한동훈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다. 사법시험도 윤 대통령처럼 9수 만에 된 게 아니라 대학 다니면서 합격했다. 정치에 뛰어들었으면 당연히 성공해야 하고 대권을 쟁취할 결심은 이미 섰을 것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는 한동훈에게도 해당된다.

한동훈의 이번 반란은 "나는 당신 꼬붕 아니다"라는 메시지다. 영화 <친구>의 대사 "내가 니 시다바리가"를 던진 것이다. 검사 시절엔 상사였던 윤석열을 도와주긴 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비서실장을 보내 물러나라고 통보하듯 한 것도 한동훈의 자존심을 긁었을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도 기분 나쁘지만, 한 달도 안 돼 "너 나가" 하는데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윤석열,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윤석열은 큰 상처를 입고 일단 물러섰다. 치욕이다. <달콤한 인생>의 대사처럼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를 되뇌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묘수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무자비한 사람이다.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벼락출세 시켜준 문재인도 배신한 사람이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가족까지 멸문지화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엔 쉽지 않다. 민심은 물론 보수언론도 자기 편이 아니다. 그래서 예의 그 '캐비넷' 이야기가 떠돈다. 검찰을 동원할 거란다. 그런데 한동훈도 검사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한에게 줄을 서는 듯하다. 명분도 없고, 병력도 없다. 결국 힘이 없는 것이다.

지금 판돈이 제일 커진 사람은 한동훈

많은 이들이 총선 전후로 양쪽이 큰 싸움을 치를 것으로 예상한다. 누가 이길까? 권력이란 게 나눠 가질 수도 없고,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 한동훈에겐 어려운 싸움이다. 첫째, 한이 상대해야 할 사람은 윤 대통령 뿐이 아니라 사실은 '윤석열 부부'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총선 결과다. 국민의힘이 불리한 현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는 '언터처블'이 된다. 부동의 대권주자가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동훈의 판돈이 제일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총선승리의 전제는 바로 공천이다. 대통령실과의 진검승부는 불가피하다. 자기 사람 심으려는 대통령실에 양보하면 '윤석열 아바타' 한동훈의 정치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다.

마리 앙투와네트? 루이16세 걱정부터 해야

판세가 이미 한동훈에게 기울었다는 징후는 여럿 있다. 첫째, (총선 승리가 전제이긴 하지만) 민심은 물론 보수언론도 한동훈 편이다. 둘째, 대통령 임기말까지 공천 걱정 없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인기 없는 대통령을 소 닭 보듯 할 것이다. 셋째,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다. 원래 취임식 다음날부터 레임덕 시작이다. 넷째, 온갖 수를 써서라도 한 위원장을 내보내려 하겠지만 윤 대통령의 수는 한 위원장에게 다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낸 게 바로 '지지 철회' 기사다. 본전도 못 건지고 망신만 당했다.

윤석열은 이미 늙은 사자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고 하지만 국정지지도가 이렇게 낮고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유했다가 난리가 났다. 지금 앙투와네트가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루이16세가 되지 않을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살려는 드릴게."

이 둘이 20년 넘는 선후배 관계로 인간적 신뢰가 남다르다며 갈등은 봉합됐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30년 직장생활 같이 하고 원수 된 사람들 많다. 무엇보다 그건 검사라는 공무원 생활 때 이야기다. 이들은 지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치의 링 위에 올라 있다. 이번 갈등의 시작부터 서천시장에서의 만남까지를 한동훈의 입장에서 요약하면 이렇다. 내 할 일 한다. 예의는 갖추고. 영화 <신세계>의 대사다.

"살려는 드릴게."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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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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