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움켜쥔 PT 트레이너가 무혐의? 검·경의 생활은 그런가

[정희준의 어퍼컷] 성추행 PT 트레이너 불기소 논란

헬스장에서 PT(personal training, 개인 훈련)를 받던 여성이 남성 트레이너(관장)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고소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 여성은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시작과 동시에 너무 거침없이 몸 이곳저곳을 만지기 시작"했고, "제 엉덩이를 손바닥 전체로 움켜잡더니 주무르기 시작"하자 추행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곧바로 "원래 이렇게 만져요?"라는 항의와 함께 나와버렸다고 한다. 합의금은 커녕 아직 환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같은 동네에 사는 관장을 마주치게 되면 자신이 피해 다니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고 (전형적인 성폭력 가해자, 피해자의 모습이다.) 결국 고소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불기소 처분이 나오자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재수사를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작정하고 성추행

CCTV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보면 고의에 의한 성추행이 명백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 '과한 신체접촉'이라고 언급했는데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작정하고 성추행'한 것이다.

피해자에 따르면 트레이너는 "근육량 측정을 위해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체지방 측정이든 근육량 측정이든 몸에 손댈 일 없다. 그 트레이너는 자신이 마치 의사인 양 처음 만난 고객의 신체 부위 이곳저곳을 움켜쥐고 주물렀다. 근육량 측정? 그걸 왜 자기 손가락으로 하나. 엄마손도 아니고.

최근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부산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피트니스 사업을 하는 복수의 옛 제자들에게 문의했다.

- 대부분의 업장들은 매뉴얼이 있다. 특히 헬스장 PT의 경우 남성 트레이너와 여성 고객으로 짝지워지는 경우가 많아 신체 접촉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효과적 지도를 위해 여러 가지 '큐잉법(행동을 위한 지시)'이 있는데 그 중 '터치 큐잉'은 고객과의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불가피한 경우에 하되, 당연히 사전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손가락 두 개 끝부분이면 충분하고 손을 빨리 뗀다.

필자가 과거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컨디셔닝, 골프, 축구 등을 가르칠 때에도 신체 접촉의 필요성은 없었다. 골프 수업 때 상체 회전이 잘 되지 않는 여학생의 경우도 허리벨트나 그 고리를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움켜쥐거나 쓰다듬으면 성추행이다. 잘 했다고 어깨 두드리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근육이든 체지방이든 측정을 위해 엉덩이나 허리살을 움켜쥘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한 제자는 "만질 일 없는데요"라면서 "설마 엉덩이를 주물렀겠어요" 믿기지 않는 듯 말한다. 동영상에 움켜쥐고 주무르는 모습이 나온다고 하니 "특이하네요" 혀를 찬다.

지방과 근육 등 체성분 검사를 위해 주로 인바디검사를 하는데 본인이 알아서 신발 벗고 올라가면 된다. 보다 정확하게 하려면 줄자나 스킨폴드 캘리퍼를 쓰면 될 일이다. 엉덩이를 만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요즘 신체 접촉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점장이나 대표들은 직원 교육 때 이를 특히 강조한다고 한다. 문제의 트레이너는 본인이 관장이었기에 고객을 쉽게 본 듯하다.

나는 이 인터뷰를 보며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했던 윤창중이 생각났다. 워싱턴 방문 때 현지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쥐어 논란이 됐다. 단순한 접촉(touch)도 아니고, 두드림(tab)도 아니고 움켜쥐었다. 그래서 당시 '윤 그랩(grab)'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결국 성추행 행위로 인해 사퇴했다.

경찰, 검찰은 그들의 일상이 성추행 가득해서 무혐의 처분했나?

세상엔 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은 어디든 있다. 문제는 이런 명백한 성추행을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경찰과 검찰이다. 이들은, 동의 없이 엉덩이를 주무르긴 했지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만한 말이 없었다, 개인 PT라서 신체적 접촉이 불가피하고 고의가 없어 보인다, 헬스장이 개방된 구조였고, 이제까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철에서 말없이 성추행하고, 입 다물고 엉덩이 움켜쥐면 별 탈 없을 거라는 것인가? 개인 PT 때, 개방된 공간에서 몸을 이곳저곳 마구 주물러도 된다는 것인가? 이제까지 문제 제기한 사람이 없으면 앞으로는 문제 제기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인가?

어찌 이런 결론이 가능한가? 경찰과 검찰은 그들이 일상이 성추행이어서 그런가? 한 제자는 "이게 어떻게 성추행이 아니죠?"라며 기가 막히다는 듯 말한다.

"그 사람들 생활이 그런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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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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