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얼마나 더 이겨야 '문제'를 해결할까?

[이관후 칼럼] 정치가 없는 곳에서 정치를 하려 한 세 정치인의 불출마

초선의원들의 불출마, 그들이 남긴 말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이 승패의 잣대가 됐습니다.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쁘고, 국민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무너진 민생 경제와 국민 고통 속 현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는 것조차 방탄이라 매도하고, 모든 문제가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무능 탓이냐의 극한 대립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고집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국회 역시 국민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마땅히 국민과 국가의 앞날을 두려워하고 이제 지도자가 결단해야만 합니다. 상대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시위소리를 우리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이 사회의 참담함을 멈출 수 있는 건, 결국 오로지 국민 통합을 위해 권력을 손에 쥔 이가 먼저 내미는 화해의 손길일 수밖에 없습니다."(국회의원 오영환)

"지금 세계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대전환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한국 사회에도 양극화 해소, 저출생·고령화, 기후변화, 국토균형발전, 산업구조전환, 국민연금·건강보험 개혁 등과 같은 혁명 수준으로 바꿔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전환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제로섬 정치는 오히려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80년대 낡은 이념으로 우리나라를 후진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간 국회의원으로서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보려 노력했습니다. 대전환을 경고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후진적인 정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객관적인 주장마저도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 받기도 했습니다."(국회의원 홍성국)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증오정치는 정치의 목적, 싸움의 목적을 잃었습니다. 용접공 유최안, 800원 버스기사 김학의, 신림동 반지하의 홍수지, SPC 빵을 만들던 박선빈, 쿠팡물류센터의 장덕준,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홍구 등 제가 의정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은 정치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소득불안, 주거불안, 묻지마 범죄와 생명·안전에 대한 위협, 기후위기와 저출생으로 인한 소멸의 불안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증오정치는 주권자들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습니다."(국회의원 이탄희)

진영정치, 제로섬 정치, 증오정치

'출마 선언문' 중에 유명한 것은 많다. 그러나 '불출마 선언문'이 눈에 어른거리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는 이 불출마 선언문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이 세 사람의 '불출마 선언문' 일부를 길게 인용한 이유는, 우리가 그 말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작금의 한국 정치에 대해 신물이 나도록 비판을 하지만, 그나마 작은 희망이나마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정치인들 때문이었다.

현직 소방관 출신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출동하던, 남다른 책임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해 오던 청년 정치인, 경제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인이자 <수축사회>의 저자로 국가적 정책과제를 준비하던 전문가, 목청을 높이기보다는 품격 있지만 날카로운 질의로 매번 한동훈 장관을 굴복시켰던 초선 정치인. 오영환, 홍성국, 이탄희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진영정치', '미래 의제를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제로섬 정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지 못하는 증오정치'. 3명의 국회의원이 불출마를 결심하면서 우리 정치에 남긴 말들이다.

작게는 정치인 개인들이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 매 총선 때마다 정치인들의 불출마 선언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억지춘향으로 강요받은 경우다.

그나마 깊은 인상을 남긴 경우는,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 패배한 후 자당의 패배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정치를 멈춘 경우다. 요컨대 '당 주류가 서로 눈치만 살피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비주류가 '내 책임'이라고 그 짐을 떠안은 사례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 정치인의 불출마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왼쪽부터 오영환, 홍성국, 이탄희 의원) ⓒ연합뉴스

잘못은 윤 정부에 있다, 민주당이 이기면 해결되나?

우선 이들은 분명히 현재의 국가적 혼란과 민생의 파탄 책임이 윤석열 정부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태원참사와 잼버리 사태를 거쳐 참담한 엑스포 유치 실패까지,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으로 인한 초유의 정부발 경제위기까지, 갈수록 높아지는 안보위기까지, 이 정부는 모든 국가적 혼란의 원인제공자다.

그렇다면 이 혼란은 대정부 비판과 투쟁으로 '해결'되는가? 민주당 내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거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불출마를 선언한 이들 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때리면 때릴수록, 이쪽도 커지지만 저쪽도 결집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지지율은 바닥권이지만, 야당의 지지율은 여당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행위자들끼리의 1:1 경쟁, 진흙탕 싸움이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출마를 계속하고, 정치를 계속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가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 이들은 정치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기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들에게 정치란 별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어불성설이라고 할 것이다. 아마도 선거제가 병립형이든 연동형이든 민주당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생각하기로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문제가 해결되고, 민주당이 선거에서 지면 문제가 악화되는, 아주 간단한 이분법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란 그렇게 작동하는 것인가?

총선에서 가장 많이 이기고, 정권을 잃은 노무현·문재인

만약 권력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2가지 경우를 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먼저 민주당이 100%를 득표하거나, 얼마를 득표했든 제도적 효과를 통해 100% 의석을 차지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그 권력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것은 민주적 권력이 해결한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민주당이 60:40 정도로 이겼다고 생각해보자. 사실 이게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었을 때의 결과다. 그럼 지금 우리가 보듯이, 어떤 문제가 해결되던가?

정리해보자, 잘못은 윤석열 정부가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긴다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당이 놀고 있거나, 무능하거나, 의석이 적어서인가? 아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진영정치', '제로섬정치', '증오정치'다.

이 구조 하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민주당이 대선을 이긴대도, 그리고 총선에서 또 이긴대도, 나라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는 않았다.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 모두 임기 중의 총선에서 153석, 180석이라는,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여당의 의석수를 획득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의 숙원이었던 검찰개혁이 되기는커녕, 검찰에게 되치기를 당하고 정권까지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대선에서 이기고, 총선에서도 압도적으로 이겨도, 검찰개혁 하나 하지 못하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면, 다음엔 얼마나 더 이겨야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발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왜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 개편과 권력을 바꾸자고 했을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권력 아닌 정치

홍성국 의원에 제시한 국가 난제들을 보자 '양극화 해소, 저출생·고령화, 기후변화, 국토균형발전, 산업구조전환, 국민연금·건강보험 개혁'.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민주당 권력이 아니라 '정치'다. 정치가 없으면, 민주당이 대선과 총선을 모두 이겨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헌법과 정당정치와 정치구조가 그렇게 안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권력을 갖고 싶으면 이기면 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 정치는 몇 개의 의석을 더 얻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형편없더라고 그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은 만큼은 존중하고, 상대가 아무리 험악하더라도 적이 아닌 적수로 대하는 것이 정치를 보존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가 국민들에 선택받으리라는 믿음이 없으면,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서 정치를 하려 한 죄

그런 점에서 세 사람의 불출마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들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은 정치가 없는 곳에서 정치를 하려고 한 것이다. 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것은 화폐시장에서나 정치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들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합니다. 국회가 사회적 갈등 녹이는 용광로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오영환 의원)

"민주당원으로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 우리 당과 사회에 제안하는 1인 싱크탱크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더 나은 길이라 생각합니다."(홍성국 의원)

"증오 정치와 반사이익 구조로는 우리 삶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끼리 정권교체만 무한반복하면서 사람들의 삶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런 정치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우리 당의 본질을 지킵시다. 당장의 이익보다 대의와 가치를 선택하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갑시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고 전통입니다."(이탄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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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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