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4세기 유럽 흑사병 시대? 이대로는 소멸한다

[국회 다니는 변호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안

몇 년 전, 차별받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삶을 다룬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었지요. 그녀에 대한 차별은 일생의 것이었습니다. 어린 학창 시절엔 남자 뒤에 줄서서 급식을 받으라고 차별받고, 결혼 후 퇴사로 경력단절이 되고, 길가다가 '맘충'이라는 욕을 듣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죠. 지나가던 직장인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온갖 사회적 편견을 담은 말을 내뱉습니다. '일 안하고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 마시는 맘충'이라고.

대한민국의 현실은 합계출산율 0.78(2022년)이라는 전 세계적 신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최근 미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대한민국을 흑사병이 온 14세기 유럽과 같다고 풍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그 원인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과도한 경쟁성이 그 원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입시를 위해서 상대방을 밟고 올라서야 상류층으로 상승하는 사다리를 타는 것이고, 그 사다리를 타지 못하면 소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하류인생의 속어)'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지대한 것이지요.

이러니 남녀 간 배려는 커넝, 오히려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현 집권 여당과 이준석 전 대표의 공약이 20~30대 남성들에게 소구력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논리는 단순한 거죠. 오히려 '남성 역차별'의 원인이 되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성평등 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입니다.

이는 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매우 심각한 사회 현상이고, 이것이 지금 집권여당의 기조라는 것도 사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회 풍조 속에서 여성들이 '맘 편한 직장, 따뜻한 가정, 행복한 육아‘'라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생각이나 해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단언컨대 부정적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여성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제34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합니다.(제36조).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36조)

즉 기본적으로 성평등은 헌법적 가치입니다. 저는 헌법을 10번째로 개정하게 된다면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규정을 '여성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단계적으로 법정화해, 남성이 누리는 사회적 대우를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라고 목표규정을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성평등 격차는 거의 최악의 수준입니다. 여성고용률, 성별임금격차, 공공부문에서의 여성 참여율 등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2021년 '국가성평등보고서'를 살펴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는 여전히 남성에 비해 20%포인트가량 뒤쳐져 있습니다. (남성 77.9%, 여성 59.1%), 여성 임금은 67%수준으로 큰 틀의 변화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여성 평등 지표인 국회의원 비율도 19%수준에서 연도별 변화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흐름들이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성평등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성의 사회참여율 지표(사회계층 상승의 이면인)가 큰 틀의 변화가 없는 사회에서, 부모들의 절반은 여성을 출산할 것인데, 그 여성을 키워 사회에 내보내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사회풍조 속에서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아이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 저출산 문제의 프레임은 저출산 자체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저출산의 근본 배경이 되는 사회적 문화의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잘못된 사회제도들을 수리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육아휴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육아휴직 문제는 곧 사회모순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21년 29.3%정도 되었지만, 그 내막을 보면 사실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제도가 운용됩니다.

법상으로야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사실 남성의 육아휴직사용률은 4.1%밖에 안 됩니다. 여성들은 반면 65.2%로 대부분 사용하게 되죠. 그것도 '안정적인 여성들'만 사실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공행정, 금융·보험업업, 사업시설·지원업 등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기관이 운영되고, 대체인력을 구하기 용이한 직장에서만 육아휴직제도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거죠.

기업규모가 내려갈수록 육아휴직사용률은 더 떨어집니다. 전체 기업체 규모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의 비중이 남녀 모두 60%가 넘고, 300인 이하 사업장의 비중인 40%에 못미칩니다.(통계청 2021 육아휴직통계)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고용률이 대기업보다 높은 나라(2021년 기준, 99.9%가 중소기업, 고용률은 82%)입니다. 결국 대기업 근로자보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쓰기엔 훨씬 열악한 여건이 있다는 거죠.

이렇다 보니, 정부도 여러 차례로 법 개정을 했습니다. 배우자 출산휴가제 도입, 육아휴가제도 등 육아기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고(단축 후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 35시간을 넘어서는 안 되게 했죠), 또한 이들의 직장 복귀를 위해 사업주가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을 했죠. 또 사업주가 육아휴직자 및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 불리한 처우를 하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 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규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고용노동부에서 1297명의 표본을 가지고 조사를 했더니(고용노동부, 모성보호제도 활용 관련 실태조사, 2022), 육아휴직 평균 사용기간은 여성이 8.5개월 이지만, 남성은 5.0%에 그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도 여성은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응답(남성 응답자의 36.3%, 여성 31.9%가 이렇게 응답), 내지는 남녀근로자 모두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남성 32.4%, 여성 26.2%), 심지어 여성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전 퇴사하는 분위기여서 사용대상자가 없다는 응답도 있습니다(남 5.8%, 여 16.7%). 즉, 조사결과 남·여성 모두 40%는 사실상 사용하기 어렵다, 여성은 사용할 수 있어도 남성은 육아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30% 가량이었습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여성에게 일방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거나 형해화돼 있다는 반증입니다. 제도는 좋지만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뜻이죠. 직장에서 잘릴 각오를 하고 육아휴직을 해야 하면, 그냥 아이를 안 낳지 말지, 누가 육아휴직을 쓸 용기를 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지금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와 관련, 역시나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아예 근로자가 육아휴직 청구, 배우자 출산휴가 청구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배우자 출산휴가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자는 안(용혜인 의원 안), 중소기업은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니 임금수준이 낮거나 비정규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면 그만큼 고용유지비를 지원해주자는 안(정태호 의원 안), 아예 육아휴직 이후에 근로자를 휴직 전과 동일한 근무장소·지역에 복귀시키자는 안(윤호중·조정식 의원 안), 심지어 육아휴직을 강제로 60일을 신청하게 하자는 법안(최승재 의원 안)등 매우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 부터는 '6+6 부모 육아휴직제'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이건 비용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것이죠. 아이를 낳으면 급여가 줄어드니,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지급해 첫 달에는 200만 원에서 매달 50만 원씩 올려 마지막 6개월 되는 날에 최대 450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죠.(원래 3개월이었던 것을) 고용보험에서 이 급여를 충당하고요. 육아휴직 기간도 1년에서 1년6개월까지 연장하자는 안(박용진 의원 안도 동일)도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기간을 근로시간 단축으로 전환하면 그 시간만큼 2배로 단축시킬 수 있게끔 하겠다고 합니다.

이상의 법안들은 현재의 여러 육아휴직 사용에서의 난관들을 해결하는 좋은 취지의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실효성이 담보되려면, 더 상위의 논의들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법상 규정한 성평등의 가치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실현하고 고민할 것인가, 강제력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 말입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에서 50%의 비율은 어떻게 여성에게 할당하게 할 것인가, 여성 고위직의 임원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떠한 식으로 불이익을 기업들에게 줄 것인가에서부터, 특정 사업주의 여성 고용률을 장기적으로 살펴서, 실제 입사연도보다 10년 이후의 고용률이 높아지거나 떨어지는 경우에는 어떠한 이익·불이익을 줄 것인가 등 다양하고 촘촘한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출산문제는 성평등사회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요원할 뿐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단순한 테크닉들로 저출산 문제가 극복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아닐까요?

▲ 영화 <82년생 김지영>(김도영 감독, 2019) 스틸컷.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지웅

박지웅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 율촌의 변호사로 재직중입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국회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며 국회 입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연구하며 오랫동안 여러 입법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