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괴롭혀도 당당한 '공장의 전두환', 힘센 자는 수단이 많다

[류하경의 불온한 사건첩] 노동 편 ① 노동자의 무기

노동 사건을 많이 하는 편이다. 노동 사건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해보고자 한다. 우선 노동자가 무엇인지, 노동자의 무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서문처럼 써본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학습되지 않고, 학습하지 않아 깨어나지 않은 노동자, 그래서 굴종하는 노동자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내가 현재 수행 중인 사건의 에피소드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깨어나 싸우는 노동자 A의 일을, 그렇지 않은 노동자 B가 한번 도와줬다. 사용자 C가 이를 알고 B를 쥐 잡듯 잡았다. B는 A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다 없던 일로 해달라고 난리를 친다. A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이제 그만하겠다고 한다. B는 제 고통이 A의 탓이라 하고 A는 모든 이의 고통, 이 혼란이 자신 탓이라 여긴다. A가 전화 와서 "다 그만두고 싶어요" 흐느낀다.

재판만 하려고 했는데 속에 천불이 나서 안 되겠다 싶었다. A의 편이 꽤 많다고 한다. 우선 그 중 대여섯 명을 골라 특공대를 만들기로 했다. 고립되어 점점 약해져 가는 A를 다시 몇 년 전 처음의 강렬한 노동자, 아니 두발로 선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재판도 이길 것이고 이곳에는 노동조합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먼저 특공대가 C를 형사고발, 노동청에 신고해서 C가 무너지는 모습을 노동자들에게 전시하고 싶다. '자 보시오. 당신들이 두려워 떨며 굴종하던 이 공장의 전두환이 엎드려 기는 모습을. 이 모든 것은 노동자 서로의 탓이 아니고 사용자 C의 탓임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전화 통화를 마치며 A에게 이렇게 일렀다. "위원장님 사람은 이기적이잖아요. 약해서 그래요. 멍청한 건 겁이 나서 그렇고요. 그런데 또 뭉쳐지면 변합니다. 겪어봐서 아시잖아요." A는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적이 있고 앞서는 기질과 꼼꼼한 실력으로 위원장까지 했다. 그런데 노동조합 상급단체와의 갈등, 조합원들의 단합 부족으로 그 노조는 와해된 상태다.

노동법은 비정규직들 앞에서 멈춘다

다음은 대학 때의 일이다. 제대 후 학내 청소노동자들 노동환경 실태조사 활동을 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라는 곳에서 했던 노학연대 사업의 일환이었다. 노동자들은 화장실 빈칸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계단 아래 한 평 남짓 창고에 쪼그려 앉아 휴식했다. 통장에 찍히는 급여는 간신히 최저임금을 맞추는 수준이었고 실제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실급여는 최저임금보다 적었다.

고용형태는 간접고용 즉 학교가 미화업무 전체를 하청업체에 도급을 주고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사실상 중간착취 당하면서도 고용은 불안정한 형태였다. 학교가 내려주는 돈을 하청업체가 수수료로 상당금액 챙기고 남는 돈을 노동자들에게 내려주는 형식이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면 그게 해고가 되는, 또는 학교가 하청업체와 계약을 안 해줘 버리면 노동자들 전체가 통으로 거리에 나앉게 되는 그런 구조가 바로 간접고용 형태의 비정규직이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은 이런 비정규직들 앞에서 멈춘다. 하청업체 사장은 휴일에 노동자들을 불러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청소를 시켰다. 근로계약 외 사적 이용이므로 불법이다. 하청업체 관리자 반장이라는 자들은 수시로 노동자들을 추행하고 희롱했다. 반말, 욕설, 폭언은 예삿일이었다.

서너 달 남짓 그렇게 노동자들을 만나고 다녔을까. 건물마다 노동자들을 찾기도 어려웠다. 휴게실이나 대기실이 따로 없거나 지하 깊은 곳, 계단 틈 등이어서 그랬다. 노동자들은 다른 건물 노동자와 소통할 수 없었다. 학교와 업체가 엄히 금하고 있다고 했다. 단결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여차저차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실태조사를 하던 중 함께 하는 학생들이 몇몇 더 모였다. '살맛'이라는 노학연대 모임을 만들었고 각 단과대 건물을 나누어서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학생들은 점심 때 찾아갔다. 가장 긴 휴게시간이어서다. 찾아가면 꼭 점심을 나누어 주신다. 그렇게 점심을 하루에 두 어번 먹는 경우도 있었다. 밥을 먹으며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 정서적인 교감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각자는 1대1이어서 영원히 져요"

'어머니'라 부르고 서로 믿음을 쌓으면서 자연스레 노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학교와 하청업체에 대항할 수 있어요', '각자는 1대1이어서 영원히 져요' 이런 대화가 시작되었다. 무르익던 즈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노동자가 하청업체 사장 교회청소를 거부하자 사장이 그를 캠퍼스 내 아주 후미지고 오가기 힘든 곳으로 배치시킨 것이다.

학생 수십 명이 피해 노동자와 함께 학교 안에 있는 하청업체 사무실로 항의하러 쳐들어갔다. 사장은 지인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몇 마디나 나누었을까 아직도 고자세인 사장에게 언성을 살짝 높이자 사장은 그제서야 주위 학생들의 성난 눈을 둘러보더니 상황을 의식했다.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한 자세로 바꾸더니 해당 노동자에 대한 배치 처분을 철회하겠다는 합의서에 날인했다. 사과문도 건물마다 부착하기로 했다.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건물마다 붙은 사장의 사과문을 노동자들은 출퇴근 아침저녁으로 보며 웃는다고 했다.

분위기가 많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퇴근 후 학교 밖 공간에서 학교와 업체 몰래 우리는 모이기로 했다. 50명 가량 오셨던 것 같다. 많은 수에 놀랐고 노동조합 결성 의지에 놀랐다. 학생들은 책을 여럿 읽으면서 세미나 같은 것들도 한 이후에 '의식화'되었다고 자평한다. 그런데 이 '어머니' 노동자들은 수십 년 하층 노동자였기 때문에 '계급', '노동3권', '노동조합'에 관한 몇 마디 설명에도 직관적으로 깨어났다. 그리고 의지와 행동력은 누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주도권은 노동자들 스스로 잡고 있었다.

한두 달이 지난 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OO대학교 분회가 정식 명칭이다. 노동조합 출범식은 대학 대강당에서 하기로 했고, 초청장을 대학 총장, 하청업체 사장들에게도 보냈다. 당당하게 양지로 나가야 상대가 겁을 먹는다. 대강당에서의 노동조합 출범식은 성대했다. 누구 하나 방해자가 없었다. 괴롭히고 추행을 일삼던 '반장'직책의 남성 노동자 한 명이 노동자들 앞에서 사과하고 자신도 노조 가입을 부탁하며 비굴하게 굴었다. 노동자들은 그를 조합원으로 받았다.

노동조합은 그 후 대학의 실질적 참여 하에 하청업체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급여가 오르고 노동조건이 좋아졌다. 그리고 최저임금 미달의 60여 명 분 체불임금도 몇 억 원어치 받아냈다. 노동자들은 작고 큰 투쟁의 성과를 맛보며 매번 '진화'했다. "돈보다도 인간 대접 받게 된 게 가장 좋아"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 2011년 3월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청소·경비 노동자 합동 파업. ⓒ연합뉴스

"지키라고 관철할 힘이 없다면 법은 흰 종이에 쓰인 검은 자국일 뿐"

노동자는 깨어나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린다.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가 의심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고 드라마 <송곳>의 구고신은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하던데 우리 사회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왜 부자를 위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할까. 노동자들이 왜 노동운동하는 노동자들을 이해하지 못할까.

그 원인은 개인의 허위의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우리 현대사가 낳은 레드 콤플렉스에 크게 기인한다. 국가에 불만을 제기하면 '좌익용공'이 돼 공권력에 의해 처벌받고, 공동체 내에서 권리와 분배를 강하게 주장하면 '빨갱이'가 돼 왕따를 당해 왔기 때문이다.

표현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자기검열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보수주의 위정자들이 외치는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자본가·기업가들의 자유일 뿐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다. 헌법 제21조 표현의 자유 주체가 노동자가 되면 그것은 반사회적 국가 전복행위가 된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실질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헌법 제33조 1항(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은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주체를 분명히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그자는 사내에서 '송곳'이 되어 미움 받는다. 사회적으로는 국가 성장을 가로막는 이기적 분열종자가 된다.

이러한 선동이 노동자에게도 내면화되는 것이다. 생물로서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안정과 안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한국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고 자본가의 자유다. 노동자의 자유 확장은 자본가의 자유 축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유를 추구하면 자유민주주의 부정세력이나 친북좌파가 된다. 의심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믿게 된다.

단순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중 반수 이상이 깨어 행동하지 않았거나, 존재를 배반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노동자 개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문제, 교육의 문제, 언론의 문제 등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여하간 우리는 그러한 상태이지 않은가. 서민·노동자들의 종착지는 결국 스스로 정치적인 힘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란 좁게 의회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 즉 '내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유의미한 권력을 확보하는 행위 및 이를 행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필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런데 노동자들, 노동조합 앞에서 주제넘게도 두어 번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법은 흰 종이에 쓰여 있는 검은 자국에 불과합니다. 안 지키면 그뿐, 지키라고 관철할 힘이 없으면 그뿐입니다. 그렇다고 소송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잘나 봤자 한낱 인간일 뿐인 판사에게 신의 결정을 구해야 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법적 구제절차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절실한 최후에 잡을 수 있는 줄이어야 한다. 힘센 자들은 정글에서 다른 수단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지배자들이 더 가지려고 빼앗고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더 자주 이용한다. 법 절차도 현실에서는 서민·노동자들의 무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헌법 전문에는 아직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래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한다"고. 앞 문장이 수단이고 뒷 문장이 목표다. 노동자들의 무기는 무엇인가. 다음 칼럼에서는 지난 10여 년에 걸친 삼성 노조투쟁, '80년 무노조 신화'라고 하는 삼성을 바꿔낸 노동자들이 했던 일들, 발견한 교훈을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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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자전거와 수영과 강아지를 좋아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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