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마신 삼다수 한 모금은, 어쩌면 반세기 전 한라산 자락에 내린 한줄기 비였는지 모른다. 국내 대표 먹는 샘물 제주삼다수가 실은 땅속에서 오랜 숙성을 거친 지하수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삼다수뿐만 아니라 제주 지하수가 다 그렇다. 10년 전쯤 눈에 띄는 연구 결과가 나왔었다. 조사 주체는 제주도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당 연구에 따르면, 제주 전체 지하수의 나이가 평균 22년, 최고 63년, 최저 2년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나이'는 지하수가 땅속에 머무는 기간을 의미한다. 삼다수의 나이는 평균 18년으로 나타났다. 비가 지하로 스며들어 18년 동안 화산암반층을 떠돌다가 인체에 좋은 성분을 머금고는 삼다수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여전히 물이 귀한 섬, 제주
어느 지역에서나 물은 귀하지만, 제주도는 특히 물이 귀한 섬이다. 현재의 상수도 시스템이 보급되기 전에는 용천수, 하천수의 물을 길어다 생활해야만 했다. 용천수의 90%가 해안가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해안가와 떨어진 중산간 지역의 마을은 더욱 물이 귀했다. 중산간 지역에는 용천수가 많지 않아 빗물을 모으는 봉천수를 사용해야만 했고, 가뭄이 들면 이 봉천수마저 말라 몇 시간을 걸어 물을 길어와야 했다.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 쓰기 위해 깊은 우물을 파내어 제주 최초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한 것은 애월읍 수산리에서였다. 1961년 11월 13일, 1개월여간의 착정 끝에 지하 73m까지 땅을 파 내려가는 작업이 마무리되었고, 같은 해 11월 30일에 실시한 양수시험 결과 하루 395톤의 지하수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제주 첫 관정이 시작되었다. 이 역사적인 첫 지하수 관정은 수십 년간 제 역할을 다하다가 지난 1998년 그 자리에 주택이 새로 지어지면서 원상 복구되었다. 수산리의 지하수 개발 소식은 중산간 지역 주민들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지하수 개발의 기폭제가 되었다.
마실 물도 귀했던 제주도는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상수도 개발사업으로 불과 20년 만에 상수도 보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혁명적인 속도였다. 현재 상수도 보급률 99%를 자랑하고 있지만, 제주의 물은 여전히 귀하다. 제주에서 이용하는 수자원 중 약 96%가 용천수를 포함한 지하수가 차지하는데, 이 지하수도 채워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제주 지하수에 대한 이상 증후는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보완계획(2022~2026)'에 의하면, 1999년 1025곳에 이르던 용천수는 2020년 646곳으로 급감했다. 매립·멸실된 용천수가 270곳,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용천수도 94곳에 달한다. 남아 있는 용천수도 수량이 크게 줄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용천수가 부지기수다. 2022년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애월읍·한림읍 일대 용천수 조사에서는 111개소 중 6개소는 멸실, 2개소는 매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2020년 이후 애월읍과 한림읍 지역에서만 8개에 해당하는 용천수가 매립·멸실된 것이다. 원인은 복합적이겠으나 지하수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용천수의 수량이 줄고, 멸실되는 사례가 늘어가는 것은 지하수 함양량에 적신호임은 분명하다.
현재 제주에서 개발돼 이용 중인 수자원은 총 6280곳에서 하루 179만3000㎥의 시설용량을 갖추고 있다. 이중 상수도는 146곳에서 46만3000㎥를 공급 중에 있고, 농업용수는 4659곳에서 91만1000㎥를 공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현재 제주지역 상수도의 유수율은 50% 이하고, 농업용수의 유수율 조사는 물론 물 공급 체계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개발로 인해 건축물과 지표 포장 면적이 확대되면서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토지 면적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화학비료 과다 사용, 가축분뇨 무단 배출과 부적정한 액비 살포, 개인 하수처리시설 부실 관리 등 지하수 오염원이 증가하여 사용 가능한 지하수의 양이 줄어드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발행한 '2022 지하수 관측 연보'에 따르면 제주 서부와 동부의 지하수 오염 수치가 북부와 남부에 비해 높아 지속적인 수질 관리가 절실해졌다. 조사 결과 서부지역의 질산성질소는 풍수기 10.2㎎/L, 갈수기 11.3㎎/L로 먹는샘물 기준인 10.0㎎/L를 초과했다. 질산성질소는 인위적인 오염이 없는 지하수에서는 1~2㎎/L의 농도를 보인다.
근거 없는 먹는샘물 취수 연장 허가
이러한 제주 지하수의 여러 경고등에도 지하수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2021년 지하수 수질 모니터링 평가체계 구축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수 1공당 지하수 이용량은 전국 평균이 2400㎥/년인데 비해 제주도는 4만2500㎥/년으로 17.5배를 사용해 전국에서 가장 많이 개발됐고 세종시보다는 42배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1년 제주 첫 지하수 관정이 생기고 2023년 현재 지하수 관정은 4777개에 달한다.
제주 지하수에 대한 고갈과 오염 등의 우려로 체계적인 지하수 관리가 필요하다는 도민 사회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재로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하는 제주도민의 물이 공수화 원칙마저 훼손되며 논란이 반복되는 사례가 있다. 한진그룹 계열사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개발 이용기간 취수 연장허가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기내용 생수 공급을 목표로 1984년 제주도로부터 하루 200t의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를 받았으며,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먹는샘물을 생산하고 있다. 제주도는 실제 사용량을 고려해 1996년 허가량을 100t으로 감축했다.
1991년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에는 먹는샘물 지하수의 개발·이용 등에 관한 규정이 없었지만 1995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다. 당시 법률에는 '광천 음료수의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지하수의 굴착·이용 허가는 지하수의 보전과 적정한 관리를 위하여 제한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2000년 1월 제주도특별법 개정으로 '도지사는 지하수의 적정한 보전관리를 위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때에는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허가를 하지 아니한다.'는 의무조항이 삽입돼 공수화 원칙이 적용됐다. 따라서 한국공항에게 먹는샘물 제조·판매를 위한 지하수 개발·이용에 관한 허가 또는 연장 허가를 내주기 위해서는 신설조항에 대한 단서조항 또는 부칙으로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개발·이용 허가를 인정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 전문 어디를 찾아봐도 그러한 근거는 없다.
이후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종전 규정에 의한 지하수 개발허가에 대한 경과조치를 부칙으로 두어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허가를 인정해주는 근거가 마련된 듯하지만, 사실 또 그렇지 않았다. 종전 규정이라 함은 이 법 이전에 시행이 되었던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말함인데 이 법이 시행 당시에 한국공항의 먹는 샘물 지하수 개발 및 이용의 연장허가는 법적 근거가 없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부칙에서 정한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에 따른 취수 연장 허가는 지난 2000년 제주특별법 개정과 함께 전면 중단 및 허가 취소를 밟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22년 동안 제주도는 법적 근거도 없이 한국공항의 먹는 샘물 지하수 개발·이용 연장 허가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주도는 한국공항의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 연장신청을 불허해야 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식의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회피하기 일쑤였다.
제주도의회는 지난 9월 22일 제420회 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제주도로부터 제출받은 '한국공항 ㈜먹는샘물 지하수 개발·이용 유효기간 연장 허가 동의안'을 재석의원 41명 중 찬성 35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이로써 제주도의회는 또다시 공수화 원칙을 훼손하고 한국공항(주)의 '한진제주퓨어워터' 제조·판매 기간을 2025년 11월 24일까지 연장을 허가했다.
지하수 보전관리의 최우선 원칙
지하수의 위기 경고등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공공자원으로써 지하수 보전·관리가 아닌 당장의 현세대가 직면한 지하수 위기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때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어떤 경우라도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기후위기와 난개발로 제주 물 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각도로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기본 전제는 법과 상식, 가치에 부합하는 지하수 보전·관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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