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장선 '대출 권고'…"이런데도 빚 내라고?"

은행 주담대 금리 하단 하락…정부는 청년층에 빚 권고 나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하단이 3%대까지 내려갔다. 은행채 하락이 주요 원인이지만 정부 당국의 경고성 발언 영향도 있는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정부는 아예 청년층을 대상으로 빚을 더 권하는 주담대 상품까지 내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담대 혼합형 대표 상품 금리는 연 3.86~6.00%로 집계됐다. 혼합형은 일정 기간 고정금리가 적용된 후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상품이다.

주담대 하단이 3%대까지 떨어진 건 지난 9월말 이후 약 2개월여 만의 일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주담대 상품 금리도 내려갔다. 카카오뱅크의 주담대(고정형) 금리는 22일 기준 연 3.986~5.369%였다. 역시 하단이 3%대까지 내려갔다.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금리 하단이 3%대까지 떨어진 건 지난 8월 18일(연 3.940~6.569%) 이후 약 석 달 만이다.

케이뱅크의 아파트담보대출 금리는 24일 기준 연 4.06%로 3%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원인은 은행이 자금을 조달할 때 적용되는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데 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은행채 5년물 금리를 근거로 결정된다.

한국자산평가에 따르면 24일 기준 은행채 5년물(AAA, 무보증) 금리는 4.277%로 이달 1일 4.731%에서 0.454%포인트 떨어졌다. 미 연방준비은행(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멈춘 후 은행채가 하락하는 모습이다.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에 채무 관련 법무법인 광고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정부 고위 당국자의 경고성 발언도 은행의 가산 금리 인하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들이 마치 은행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12일 "국민들은 은행들이 이자 수익으로 잔치를 하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투쟁하는 것을 고깝지 않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시 이어 지난 2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리부담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업계 스스로 국민의 기대수준에 부합하는 지원방안을 마련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해 이른바 '상생금융' 압력을 금융권에 넣었다.

둘은 오는 27일 국내 주요 은행장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정부의 '상생금융' 압력이 구체적으로 가중되는 형국이다.

이에 더해 아예 정부는 국민의힘과 손잡고 주담대 인하 상품을 내놨다.

국민의힘과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당정협의를 열어 청년층을 대상으로 1년간 청약통장에 가입하면 2%대의 저리대출을 생애 3단계에 걸쳐 추가 우대하는 주거지원책 추진을 발표했다.

만 19~34세 무주택자 청년이 '청년 주택드림 청약통장'에 가입한 후 청약에 당첨되면 '청년 주택드림 대출'을 이용해 최저 2.2%(소득·만기별 차등) 저금리로 분양가의 80%까지(최장 40년) 구입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대출 후 결혼, 출산, 다자녀 가정이 될 경우 순차적으로 추가 금리 혜택까지 주어진다. 정부가 앞장서서 청년층에게 빚을 권하는 정책을 내세운 셈이다.

가계대출 급증이 멈추지 않으면서 가계부채 위험이 심각한 수준으로 커진 가운데 위험을 더 부추기는 조치가 될 우려가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1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잠정)' 자료를 보면, 올 3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전분기 대비 14조3000억 원 증가해 1875조6000억 원이 됐다. 역대 최대 기록을 또 경신했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이 1759조1000억 원이었다. 전분기 말 대비 11조7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대출 증가의 주원인은 주담대였다. 3분기 주담대 잔액은 전분기 대비 17조3000억 원 증가한 1049조1000억 원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최근 가계대출이 생계를 위한 대출이 아니라 주택 등의 자산취득 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은이 지난 24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와 소득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한국의 신규 가계부채 대부분이 주담대였다.

아울러 고소득 가구가 주담대를 주로 이용한 결과 최근 들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졌고, 그로 인해 소비가 감소했다. 대출 완화가 가계 빚만 키우고 자산 양극화를 더 부추기는 가운데 경기 침체를 더 자극한 셈이다.

이미 부작용은 구체화됐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80%를 넘을 경우 단기~중장기 성장률이 모두 떨어진다. 이 비율이 80%를 넘은 나라는 분석대상국 34개국 중 한국(100.2%)과 홍콩(95.2%), 태국(91.5%) 3개국뿐이었다. 한국이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2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월 중 가계대출 연체율은 0.35%로 전년 동월 대비 0.16%포인트 올라갔다. 다만 전월말에 비해서는 0.03%포인트 하락했다. 그러나 이는 분기말 상·매각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주담대 연체율은 0.24%로 전월말과 유사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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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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