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간데 없고 이권만 나부껴…정치 '계파' 변질史

[이관후 칼럼] '친윤'·'친명' 정치는 왜 나쁜가?

계파정치가 나쁜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원인이 떠오른다. 선거제도나 권력구조, 정당정치의 퇴조, 미디어 환경의 변화, 전 세계적 포퓰리즘의 흥기 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의 결과이든지 한 부분이든지, 한국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 변화는 과거에 비해 '계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정치에서 계파라는 것은 원래 나쁜 것이 아닌가? 계파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 질적으로 나빠지거나 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정치에는 계파가 있다

모든 정치에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이란 대체로 특정한 사람, 곧 정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무력이나 가치만 있어서는 세력이 형성되지 않는다. 특정한 조건이 형성된 적은 많지만, 그 조건에서 항상 필연적으로 정치적 세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누가 깃발을 드느냐'는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현대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무리가 형성된 것은 대한민국 건국 때부터다. 국내정치 기반이 약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범석을 시켜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했고, 자유당을 창당한 이후로는 '족청계'라는 계파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1960년대에는 신민당 총재였던 유진산이 '진산계'라는 강력한 파벌을 형성했는데, 김영삼, 김대중이 모두 이 계파에 속해 있었다. 10년간 지속된 진산계가 사라진 뒤에는 김대중, 김영삼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철승계'도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우리에게 친숙한 '동교동계', '상도동계'가 등장한다. 이 두 세력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풍미했다.

2000년대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처음 '친노'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계'에서 '친○'으로의 언어 변화가 일어난 셈인데, 언제 처음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언어들이 짧아지는 추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친노 이후에는 '친'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것이 '친이', '친박'이다. 이어 '친문'을 거쳐서 '친윤'까지, 총 5명의 대통령이 '친○'을 형성했다. 지금 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세력도 '친명'으로 불린다.

'윤핵관'은 그 변종이라 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의 검찰총장을 지냈고,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기소하고 감옥에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당내 기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내로 진입하면서 힘이 되어 줄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래가 불확실하고, 지지세력이 있다고 해도 계파를 형성할 만큼 큰 세력은 아니었다. 그러자 익명의 '핵심관계자'들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이들이 '윤석열 핵심관계자', 곧 윤핵관이라고 불렸다.

이렇게 길게 한국정치사의 계파사를 되돌아 본 것은, 서두에서 말했듯이 정치적 세력의 형성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든지, 이례적인 일이라는 식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지만, 특정한 정치인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문제는 그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 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연합뉴스

가치와 비전이 사라진 계파가 문제다

과거의 정치적 계파에는 정치적 가치와 노선이 있었다. 1950~60년대만 해도 정치인들의 무리는 분단에 대해, 민족주의에 대해, 반공주의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각자의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 중의 지도자가 정치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1960~70년대 야당의 정치적 계파는 독재와의 투쟁 노선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서 출발했다. 근대화와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정부여당과 타협적 노선을 견지할 것인지, 강경한 투쟁을 할 것인지가 계파의 차이를 만들었다. 70년대부터 형성되어 90년대까지 존속했던 동교동계, 상도동계는 말 그대로 민주화의 두 투사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고향이 지도자와 유사하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위해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나중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을 지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계파는 달랐지만 성격은 비슷했다. 김대중, 김영삼이라는 지도자들은 대단히 특별한 카리스마와 정치적 비전, 굳은 의지를 가졌고, 이들이 한국 민주화에 가장 많이 기여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동시에 이들은 독재로부터 감시당하고, 연금되고, 정치적 테러를 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러니 이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목숨을 위협당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고문과 같은 탄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사법적 수단을 통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기도 했던, 말 그대로 생사를 같이한 동지라고 할 수 있다.

생사를 함께했던 독재 때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도 유사한 성격이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동지로 인정했고, 자신과 비전이나 가치가 일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동지라고 불렀다. 특히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필생의 목표를 위해서 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이 '친노'의 핵심이었다. 힘들게 종로에서 당선되었는데도 다시 부산에 도전해서, 노무현만 낙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까지 실업자가 되는 것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던 동지들이 친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계파가 친이, 친박의 시대에 오면서는 상당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생사를 같이 하거나 고락을 같이해서 계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권력 획들을 위한 경쟁의 과정 속에서 '친해짐'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친함'이 곧 권력이 되었다. 대통령이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형과 권력을 사적으로 나누는 그 내밀한 과정에 개입한 사람들은 '친○'으로 불릴 만 했다. 또 어떤 정치인은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말로 호가호위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과거와 같은 명예나 긍지가 아니라 '공천'이라는 실질적 보상이었다.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동교동계는 명예와 긍지만을 갖고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친노'는 2선 후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이, 친박의 시대에는 청와대 측근과 공천이 충성의 대가로 유감없이 주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중에 공천 개입이 탄핵 사유가 되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때 이후로는 '친○'에서 더 이상 정치적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친소관계가 곧 계파를 의미했고, 정치적 비전이나 가치가 달라도 정치적 이익이나 의리관계가 형성되면 금방 '친○'의 무리에 속할 수 있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당선자들은 곧잘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정당의 대통령도 되지 못했고, 정치적 권력이나 국정운영은 소수의 '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계파가 정치 수준을 말해준다

지금 친윤과 비윤 사이에 어떤 정책적 논쟁이나 토론이 있나? 지금 친명과 비명 사이에 특정한 입법이나 미래 비전을 놓고 갈등이 있는가? 예를 들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이견, 경제정책이나 균형발전에 대한 차이가 이러한 계파의 차이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 이런 질문은 사치스러운 것 같다. 최근 김포시 서울 편입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보여준 애매모호한 태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에서 나왔던 유정복, 홍준표, 서병수보다 미온적인 태도는 민주당에 계파는커녕 국민의힘과 다른 면이라도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표만 보는 기득권이 되어서, 반국민의힘이나 반윤석열조차 망설이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 주류나 윤 대통령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는 '반윤' 정치인은 오히려 유승민 전 의원 정도가 아닌가 싶다.

계파가 정치적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고락을 함께 한다면, 그런 계파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가치가 다른 세력들 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그러한 논쟁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런 세력이라면 나중에 집권을 하더라도 계파주의에 너무 물들지 않도록 자기 경계를 할 수도 있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반대의 계파도 있다. '기득권' 그 자체가 목적인 계파다. 순전히 권력을 획득해서 그것을 나누자고 하는 무리들의 계파라면, 같이 할 때는 맹목적으로 친분을 과시하고 충성하다가 헤어질 때는 노골적으로 서로를 비난한다. 지금 윤핵관이 그런 모양새다. 이런 계파의 갈등은 자리와 공천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권력투쟁의 성격을 띤다. 정치가 아닌 순전한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며, 비민주적 행태와 눈살 찌푸려지는 언사로 정치혐오를 가져온다. 여기에 정책이나 정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우리 언론이나 시민들이 언제부턴가 계파 정치를 하나의 게임처럼, 가십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선거나 정치가 민주주의에서는 하나의 게임적 요소를 갖고 있으니, 그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말할 때, 그 계파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질적이 차이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정치인들의 계파가 무엇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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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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