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엄마일까?" 'AI 시대'에도 끝나지 않을 '굴레'

[프레시안 books] 오바마 대통령이 뽑은 올해의 책, <좋은 엄마 학교>

20년도 더 지난 얘기다. 지금은 십대 후반 아이가 있지만 당시엔 아직 '엄마'가 아니었던 나는 일곱 살 난 딸이 주인집 할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엄마'를 만났다.

피해 아동의 진술과 신체 증상은 성폭행이 일어났음을 충분히 보여주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할아버지는 완강히 부인했다. 가해자를 특정할 증거나 증인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아동의 진술이 유력한 법적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담당 경찰관은 내게 해당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저 엄마가요, 돈 때문에 저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싱글맘인 피해 아동의 엄마가 동네 유지인 집주인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그 경찰만이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집주인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 어머니의 직업인 무속인에 대한 편견, 아이 아버지와 헤어진 이혼녀라는 비난, 평소 아이를 얼마나 방치하는지...이 아동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계속 듣게 되는 정보는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얼마나 '나쁜 엄마'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직접 만나본 피해 아동은 외상후증후군(PTSD)으로 어린이집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등 온몸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지만, 이를 주목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나쁜 엄마'를 둔 아동의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가 아니라 '나쁜 엄마' 탓인가?

<좋은 엄마 학교>(제서민 챈 지음, 정혜영 옮김, 허블 펴냄)를 보면서 문득 당시 경험이 떠올랐다. <좋은 엄마 학교>는 18개월된 딸을 집에 둔 채 외출한 것이 드러나 딸의 양육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 30대 후반 싱글맘 프리다 류를 주인공으로 하는 SF소설이다.

이렇게 익숙하고 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야기가 SF라고? 이 소설은 프리다처럼 아동보호법 위반을 저지른 "나쁜 엄마"들을 가둬놓고 아이와 닮은 인공지능(AI) 인형을 돌보면서 교육을 받는 '엄마 학교'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엄마들은 기저귀 갈기, 먹이기, 재우기 등 육아 기술부터 '불가능 없음', '욕망 없음', '자아 없음' 등 사회에서 "좋은 엄마"에게 요구하는 덕목까지 테스트를 받는다. 1년 동안 이 모든 과정에서 완벽해야만 아이를 되찾을 수 있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이혼한 프리다는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했다가 "지독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귀가하게 됐다. 이웃의 신고로 아이가 혼자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된 프리다는 '아동 방임과 유기' 혐의로 기소 당해서 '엄마학교'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AI 딸 에마뉘엘을 키우게 된다.

프리다가 진짜 딸 해리엇을 되찾으려면 가짜 딸 에마뉘엘에게 사랑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프리다가 6개월간 못 본 해리엇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정신이 팔리면, 에마뉘엘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다. 반대로 프리다가 에마뉘엘에게 좋은 엄마가 될수록 해리엇에게는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커진다. 프리다는 딸 해리엇과 둘만의 애정 표현인 "은하수만큼 사랑해"라는 말을 에마뉘엘에게 하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아빠학교'도 물론 있지만 '엄마학교'에 비해 감시와 통제가 느슨하다. '아빠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은 "난 더 좋은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빠입니다"를 복창하도록 요구받는데, '엄마학교'에서 프리다는 "나는 나르시스트이고, 아이에게 위험한 존재입니다"를 외쳐야 했다. 프리다가 해리엇을 혼자 두고 외출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남편에게 있지만, 누구도 남편의 책임을 따져 묻지 않았다. '죄인'은 오로지 '엄마' 뿐이다.

시대를 특정하지 않은 이 소설은 AI 자녀라는 설정 때문에 미래가 배경으로 보이지만, 일과 자녀 양육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거나 했던 여성이라면 쉽게 공감할 '오래된 미래'의 이야기다.

프리다를 포함해 '엄마학교'에 보내진 모든 여성들의 상황은 숨은 턱 막힐만큼 안쓰럽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AI 자녀가 상용화될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류는 '오래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이란 설정이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나이 차별(특히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빈부격차 등 프리다가 겪는 불평등과 부조리는 이미 수천년전부터 계속된 문제다.

무명에 가까운 신인작가인 제서민 첸이 쓴 이 소설은 202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뽑은 '올해의 책' 중 하나였다. 스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에서도 선정한 책이기도 했다.

▲<좋은 엄마 학교>, 제서민 챈 지음, 정혜영 옮김, 허블 펴냄 ⓒ허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