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학비 벌려다 첫날 추락한 20대, 8번째 사망자였다

[인권의 바람] 디엘이엔씨 건설현장에서 강보경 씨가 일하다 죽었다

20대의 고(故) 강보경 노동자는 석사졸업 후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2023년 7월부터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디엘이엔씨(구 대림건설)에서 건설 하청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8월 11일 아파트건축 현장 6층 높이에서 창호작업을 하던 첫날 추락해 사망했다.

디엘이엔씨는 e편한세상 아파트 시공사로 알려진 대기업 건설사다. 그러나 회사는 안전교육도, 안전모도, 안전벨트를 걸 안전고리도 없이 일을 시켰다. 디엘이엔씨에서만 7번째 사고이자 8번째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사측이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아 죽은 것이다. 그리고 디엘이엔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다 중대재해 발생기업이 되었다.

고 강보경 노동자처럼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하는 청년들은 흔하다. 스타벅스에서, 서브웨이에서, 올리브영에서... 필자인 나도 커피숍에서 알바 노동을 하고 있다. 고 강보경 노동자는 아마도 높은 대학원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건설 일을 선택했을 것이다.

고 강보경 노동자 유가족은 고인의 일뿐 아니라 디엘이엔씨의 모든 중대재해 근절, 그리고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는 싸움을 결의했다. 취지에 동감하고 유가족의 결정에 존경심을 느끼는 한편, 한 명의 청년 노동자로서도 고 강보경 노동자의 일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역 3번출구 D타워 인근에서 열린 고 강보경 노동자의 추모제 모습.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제공

학생들의 삶을 위협하는 높은 등록금과 낮은 최저시급

앞으로도 계속 대학생들의 삶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대학 총장의 70%는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입장이고 이 중 41.7%는 당장 내년부터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은 계속해서 등록금을 인상하려 할 것이고, 물가는 언제 잡힐지 모른다.

특히 등록금이 인상되면 국가장학금 2유형에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등록금부담은 단순히 1~2% 오르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 국가장학금 2유형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해도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 대학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발적인 물가인상률, 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생활비 지출은 늘어난다. 그런데 최저시급은 역대 두 번째로 낮게 인상됐다.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당장 내년에 대학을 다니려면 청년들은 지금보다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 물류센터 일용직을 지원하는 주기도 짧아질 것이다. 고 강보경 노동자처럼 건설일용직노동을 선택하는 대학생도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강도가 강해지면 산재가 발생하기 쉬워진다. 꽤 많은 아르바이트 사업장들은 법정 휴게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인간적인 휴게시설은 고사하고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쿠팡과 같은 물류센터에서는 과로와 더위로 사람이 죽어간다. 건설 현장의 산재 사망은 매년 3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8월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9천86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19일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밤샘논의 끝에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 높은 시급 9천860원, 월급(209시간 기준) 206만740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산재사망은 청년의 문제, 중대재해기업 처벌이 청년을 살리는 길

물론 학생들 스스로 등록금 인상과 규제완화에 반대하고, 국가에 물가를 잡으라 요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대학 학생사회에서 등록금투쟁을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직종은 다르지만 고 강보경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청년노동자들에게 '산재가 내 일'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현실로 느끼게 한다. 강보경 노동자 이전의 7명의 산재사망자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있다. "산재사망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유족의 발언이 가슴에 와 닿았다.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참사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고 강보경 노동자의 사고는 산재가 학생을 포함한 모든 청년노동자들의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는 학생들을 공부만 할 수 있게 두지 않는다. 청년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학생이기도 하고 노동자이기도 하다.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현장으로 가는 학생들, 청년들이 여전히 많다. 산업재해가 청년 문제가 아닌 양 말해왔던 정부와 기업의 눈속임은 고 강보경 노동자의 죽음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모든 일하는 현장이 안전하도록 만드는 것이 청년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정부는 더 이상 노동자와 청년을 구분하며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실시해야 한다. 기업이 안전 의무를 다하도록 관리감독해야 한다. 그것이 청년을 살리는 길이다.

▲지난 9 경기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100여 명이 '중대재해 처벌법 개악 저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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